불기 2568. 10.23 (음)
> 종합 > 기사보기
정화스님 (2)
맨발의 자유인 답게


처음먹은 마음 끝까지



그는 공원 앞에서 엿장수를 한 경험이 있다. 엿장수 이야기는 선대의 노스님이 출가하시기 전에 몇 해 한 일, 또 만행 삼아 엿장수를 심심치 않게 한 다른 스님의 일화 등이 있다. 나도 엿장수라면 빠질 수가 없는데..... 하하하, 엿장수 가풍이라 할 수가 없는가 보다.


지금은 등에 지고 다니는 엿장수가 없다. 짤랑짤랑 하늘을 향해 몇 차례 큰소리 내는 가위질이라야 제격이다. 손수레에 끌고 다니는 엿장수도 드물다. 포터 짐차나 소형차를 엿장수로 쓰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바뀌었다.


고물상을 겸한 엿 집, 그게 이삼 십 년 전까지 엿장수들의 풍속도이다. 함께 잠도 잔다. 엿을 고는 새벽에는 신참들이 나무 불을 지핀다. 침을 손에 발라서 엿을 늘인다는 이야기는 엿을 늘이는 방에 들어가 보고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엿을 늘일 때에는 벽에 달린 지게작대기 같은 나무에 엿을 휘감는다. 몇 차례고 늘이기를 계속하면 노란 엿이 흰 엿이 된다. 삼각으로 엿을 모으기 때문에 그 틈에 공기 구멍이 생긴다.


엿장수를 하는 이는 방랑기질이 좀 있다. 늙은 엿장수들의 한(恨) 섞인 이야기 속에 그런 말이 들어있다.


“자네들, 젊어서 착실하게 잘 살게. 늙어지면 나처럼 외로와. 엿장수는 천생 역마로 사주팔자가 나왔어. 허허허“



정화 스님이 왜 엿장수를 했는지 모르나, 공원 입구에서 작업복 차림으로 엿장수를 하다가 학창 시절 은사를 만나게 되었다.


“아니? 지난번 듣자니 입산 출가를 했다더니만...... 이제 엿장수를 시작했어?’


“예.”


정화당은 이때도 아무 부끄러움 없이 넘겼다.


한 스님은 지금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생이 되어 일을 한다. 돈을 버는 게 목적이 아니다. 하심(下心)하고 인욕(忍辱)하는 걸 익히기 위해서다. 택시 기사로도 있다. 아마 보살의 가지가지 모습인 것 같다. 정화당은 한군데 오래 머무는 법 없이 이곳저곳 옮아 다니지만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산다.


사경(寫經)을 통해서 유식을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강원에서 신심이 나서 사경을 하다보니 알고싶은 게 생겼다. 유식은 원효기신론 소(元曉起信論 疎)를 사경하다가 빠져들었다. 10년 동안 구사론 유식론을 한다는 정설을 깨고 독학으로 구사 유식의 산맥을 파헤쳤다. 그리고는 금강 광맥을 찾았다. 지금 유식을 강의할만한 스님은 많지 않지만 정화당은 확신이 선 목소리로 강의한다. 막힘이 없이 어느 부분이나 자세하게 설명하고 또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발심(發心)해서 도를 성취해야겠다는 생각이 난다.


그의 학교 선후배로 스님 된 이가 몇 사람이 된다. 물론 정하지 않았어도 좋은 전통으로 내려온 셈이다. 한 선배는 졸업식 무렵 학교를 찾아간다. 교실에 들어가서 모이라고 해놓고는,


“여러분, 내가 정말 좋은 진로를 말해주겠소. 출가 입산들을 하시오. 세상에 할 일은 이 일 뿐이오.”


그렇게 권하기도 한다. 후배들과 묻고 대답 하면서 출가를 권유하는 데 생각이 있는 이는 뒷날 선배의 뒤를 따른다.


맨발의 청춘! 영화의 제목만이 아니다. 정화 스님은 맨발의 청춘으로 산다. 양말 신기를 거부한다. 그의 거친 발은 맨발의 청춘 탓이다. 양말을 신지 않으면 좋은 점이 많다. 무좀예방이 된다. 양말을 빨지 않아서 비누를 쓸 필요가 없다. 땅을 딛는 감촉이 좋다. 양말을 부지런히 신는 스님은 우리나라밖에 없다. 정말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인지 모르나 부지런히들 신는다. 중국, 대만의 경우, 비구니들도 겨울에 양말을 잘 신지 않는다. 더운 인도 태국 스리랑카 등은 물론이고 중국, 일본도 우리만큼 양말을 잘 신지 않는다. 우리는 획일성 그대로다. 양말을 신지 않는 이는 인사받기 바쁘다.


“아니, 양말을 왜 안 신지요?”


나도 요즘은 그런 인사가 싫어서 신고 지낸다. 한때는 맨발의 청춘 한 회원(?)이었다. 톡 튀는 게 싫어서 여름에도 양말을 신는다. 무좀이 있어도 신고 지낸다.


정화 스님은 누가 뭐라거나 말거나 양말을 신지 않는 배짱이 좋다. 다른 일도 마찬가지로 초지일관 밀고 나간다. 뜻이 굳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는 주지나 상좌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게 한다.


“그렇지요.”


하고 싫지 않은 표현을 하나 하룻밤을 자고 나면 어느새 사라지고 만다. 잘 도망치는 게 특기라면 특기다. 욕심이 없는 정화 스님에게 그런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송충이가 솔잎을 떠나서 살수가 없듯이 자유를 떠나서 정화 스님이 어찌 하루인들 지낼 것인가. <끝>

2000-07-05
 
 
   
   
2024. 11.23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