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존경하는 선덕

법명 밝히기를 꺼려하여 그냥 ‘모모(某某) 스님이라고 해둔다.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고 이야기의 내용이 중요하다. 나는 모모 스님의 언행을 통해서 그를 닮아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간혹 밤중에 산길을 가다가도 그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마음 속으로 대단히 존경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스님을 처음 뵌 것은 내가 해인사 율원에 몸을 담은 시절이었고, 스님은 선원장을 맡고 계셨다. 인간적이라는 게 마음에 와 닿았다. 정말 나는 그런 스님이 좋았다.

“지묵 스님, <전등록>에 이런 말씀은 …내 가방 끈이 짧아서 잘 몰라요. 하하하”

모른다고 쉽게 말씀하신다. 어른 티를 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백련암 방장 스님을 뵙고 대화한 내용을 들려주는 등 늘 솔직한 말을 해주셨다. 참선공부에 관해서도 스님이 아는 건 대체로 드문드문 들려주셨다. 문답한 내용이 지금이야 잘 생각나지 않지만 그때 당시는 너무나 실감이 나서 두 귀가 쫑긋 섰다고 느낄 정도로 열심히 들었다.

한번은 선방에서 산행을 가는 날이었다. 결제 후 한달 보름이 지난 날로 반 살림 날이면 으례히 가고, 7일 용맹정진 후에도 꼭 산행을 한다. 이때 일이 터졌다. 자세한 내용은 말할 수 없으나 일처리에서 선원장스님이

“안 된다면 안 돼!”

하고 강하게 반대하셨다. 완강하게 말을 꺼내면 일단 밀어붙이시는데 그게 참 묘하다. 다른 스님이 밀어붙였다가는 소동이 날 일인데도 선원장스님의 말에는 모두 쥐 죽은 듯이 잠잠해진다. 주변 분위기를 아주 엄숙하게 끌고 가는 나름대로 노하우가 있다.

그래도 이런 완강한 주장이 한철 90일 중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다.

모모 스님의 주위에는 좌우보처(左右補處)로 든든한 스님들이 턱 버티고 있다. 삼국지에서 유비 덕인(德人) 곁의 관우 장비 같은 중량급 장수가 옹호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게 다 통솔력이고 덕화(德化)가 아닌가 한다. 스님을 모시고 살기를 바랬지만 그 이후로는 한번도 뵐 수가 없었다.

모모 스님은 내게 당신의 약점을 드러내 보여서 신뢰가 간다. 몸이 아픈 기색이 보이면 약으로 산해진미 공양을 시켜주신다. 아아, 그런 형 같으신 스님이 쉽질 않는데… 후배 앞에서 당신의 약점을 내보이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선원 방함록의 최초 창간이랄까 출발은 모모 스님이 주축이 된 걸로 안다. 총무원이 주관해서 발행해 오던 결제 방함록은 그때부터 해인총림 선원으로 그 발행처가 옮겨졌다. 당시 소란스런 총무원을 싫어해서 결제 수좌 만의 방함록이 독립되어 나오게 된 것이다.

또 한번 모모 스님을 저울질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소란스런 총무원이 넘어지고 수좌 만의 가풍을 살린다고 해서 총무원장, 그 이하 요직 부장을 조계사 주지를 포함해서 선방 스님들이 소임을 산 때가 있었다. 모모 스님도 총무부장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여름에 물에 헤엄치러 들어갔다가 빠져서 입적한 휴암 스님은 그때 조계사 주지 겸 재무부장이었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오래가지 않았다.

“총무원에서 일하시는 스님네가 정말 존경스럽다.”

하야(下野)의 변(辯)치고는 의외였다. 법문 중의 이사불이(理事不二) 세계는 공염불(空念佛)인가. 누구나 현상계에서는 역시 약할 수밖에 없다는 걸 다시 확인시켜준 셈이다. 총무원 스님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선방에서는 총무원을 우습게 여기고,

“총무원이 썩어 빠졌어!”

“사판승은 무엇을 하는 작자들이야!”

때로는 지대방 안에서 이렇게 입방아를 찧는다. 그러나 정작 맡아서 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모모 스님 역시 스스로 부족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사(理事)는 정말 하나 되기가 힘들구나.”

행정 능력은 기초부터 다져진 이가 아니면 안 된다. 평생 수좌로 참선만 하고 지낸 이에게 총무원 일은 어울리지 않는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야말로 대충대충 업무를 보게 된다. 공부인은 공부만이 능사(能事)이다.

모모 스님은 역시 요지부동한 자세가 기억에 남는다. 앉은 자세, 선 자세, 걷는 자세 등 모두가 위엄이 있다. 공양을 할 때에는 시선이 밥 하나에만 집중된다. 목석 같다.

나도 그런 자세를 유지하려고 하면서 큰방 발우 공양 시간에 모모 스님이 늘 머리에 떠오른다. 인상이 깊은 탓일 게다.

숲 속에 들어서도 모모 스님의 향기가 있다. 20년 가까운 세월, 모모 스님의 훌륭한 인품은 늘 내 곁에서 그림자처럼 따랐다. 하여튼 모모 스님은 마음으로 존경하는 선덕(禪德)중 한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