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6 (음)
> 종합 > 기사보기
천재 스님
책 한권 외우는 일 예사


일본서 공부하며 환속



스님을 알게 된 때는 치문반 시절이었으니까 한 스무 해가 넘는다. 그가 천재가 되기까지 내력은 잘 알 수가 없다. 처음 태어나면서부터 천재였는지 아니면 후천적인 천재인지는 잘 알 수가 없다. 다만, 단식을 두세 차례 성공하고부터 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다.


물만 매일 마시고 지내면서 맑은 정신을 유지한 결과 놀랍게도 불망지(不忘智)에 가까운 기억력이 되살아났다는 것이다. 보통 일주일에서 보름 정도 단식을 마친 그는 얼굴에서 환희심에 찬 미소를 잃지 않게 되었다. 번뇌라고는 한 티끌도 없는 모습이었다.


T.V 프로에서 천재 소년 등을 본 적이 있으나 실제로 함께 지내보기는 처음이었다. 책을 한 권 외우는 것은 예사였다.


서장(書狀)을 한 권 끝내는 날에는 서장을 천수경 염불하는 속도로 무척 빠르게 외우기 시작한다. 아침부터 그렇게 부지런히 외운다. 옆에서 보기에도 놀라울 정도였다.


얼굴도 준수하게 생겼고 체격도 건장한 편이었다. 군산에서 학교를 다닐 때에는 야구 선수였다고 한다.


무슨 마군(魔軍)의 시샘이 그리도 많았는지. 착하고 천재인 그에게 마군이 늘 대기하고 있는 듯 하였다.


무위법(無爲法)에 들려는 찰나, 그때마다 길을 가로막고 방해하는 마군중(魔軍衆)이 나타났다는 불보살의 본생담 이야기와 비슷했다.


그가 어느 날 가야산으로 아무 생각 없이 사라진 때에는 대중들이 산을 헤매며 찾느라고 부산스러웠다. 수색작업을 하다가 한 스님은 바위에서 미끄러져서 부상을 입고 등에 엎혀서 절로 내려왔다. 그는 산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면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이렇게 떠났다. 시계를 책상 위에 풀어놓은 채로 그냥 떠났다. 이틀 후 그를 발견하였을 때에는 바위 아래서 좌선을 하고 묵묵히 앉아 있는, 도심(道心)으로 가득 찬 모습이었다.


이제 보니 대중이 괜히 소란을 피운 것인지도 모른다. 공부를 하려는 순수한 생각 밖에 없는 그를 세속법으로 이러니 저러니 하고 왈가왈부 야단친 셈이다.


그게 그의 특성이었다. 막힘이라곤 전혀 없었다. 옳으니 그르니 하고 따지는 걸 떠난 게 천재의 머리인가 본다. 시시비비는 이미 그의 마음에서 사라져 버렸는지도 모른다.


“순천 송광사 보조국사의 도량에 가서 참선을 해야 하겠다.”


이런 생각이 들자 이번에는 웃옷과 신발을 벗은 채 걸어서 출발을 하였다. 미친 스님이 아닌가 하고 비구니 스님이 버스를 타고 가다가 버스에서 내려서 신발과 웃옷을 갖추어 주었으나 그는 또 그걸 오래 유지하지 못하였다. 런닝 셔츠 바람에 맨발로 걸어갔다. 아마 부처님께서 살아 생전에 맨발로 걸어다니신 걸 생각한 것일까. 세상을 걸림 없이 사는 법을 어느새 익힌 그는 그렇게 지냈다.


“중이 가사 장삼도 갖추지 않고 제 발우도 없이 방부를 드릴려구 왔어?”


송광사 주지스님으로부터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는 할 수 없이 다시 해인사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 일로 해서 강원생활을 계속하지 못할 뻔하였다. 은사스님이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서 대중공양을 내고 대장경을 한질 기증하고 해서 간신히 넘겼다.


강원을 마치고 바로 중강(仲講) 스님이 되어 명강의를 하게 되었다. 학인들로부터 스승인 강주(講主) 스님에 못지 않다는 평을 받았다. 뛰어난 머리가 주위를 놀라게 한 적이 적지 않았다.


이번에는 도서관에서 일본어를 독학으로 공부하여 동경대학에 거뜬히 입학하였다. 모두가 혀를 내두르고 한 동안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실력이 남달리 우수해서 장래가 촉망되는 그런 스님이었다. 하나같이 찬탄을 해 마지 않았다.


법상 위에서 상단 법문을 하신 성철스님께,


“법문을 하신 분은 누구십니까?”


하고 법담을 던진 이가 바로 이 천재 스님이다.


“왜? 이성철이다, 이놈아. 몰랐냐?”


하고 성철 스님이 급히 이 말을 던지고 법상 위에서 내려오신 적이 있다.


천재 스님에게 왜 그리 마군중이 많았을까. 그가 장학생으로 박사과정을 거뜬히 마치고 귀국할 때에는 이미 양복이 그의 어깨 위에 드리워져 있었다. 독일 아내를 둔 거사의 모습이다. 동양 문화에 흠뻑 빠진 그의 아내 역시 일본에 유학 온 독일 여학생이었는데 경제적으로 천재 스님에게 스폰서 역할을 하였다나 어쨌다나.


종립 대학 강단에 설 때에는 너무 일찍 빠른 출세 길에서 역시 왕따를 당하는 격이 되었다. 지금은 독일에서 지낸다던가 어떻다던가 하는데 하여간 아까운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2000-07-19
 
 
   
   
2024. 11.26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