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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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범 스님
뿌리깊은 나무같은 스승
언행일치의 삶 ‘모범’

아직도 마음속으로부터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세 어른이 있는데 그 중 한 분이 종범(宗梵)스님이다. 스님은 일찍이 이십대 중반에 통도사 승가대학 강주(講主)를 역임하였고, 조계종 중앙 상임포교사로 전국 곳곳을 누비며 법음을 전하는 일에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한 때는 한국의 부루나 존자라는 별칭이 주어지기도 했다. 지금은 중앙승가대학에 오래도록 몸담고 계시면서 후학양성에 몰두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내 마음속에 평생 지워지지 않는 스승의 사표(師表)로 남아 있다. 상세히 다 기억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분명한 것은 후학들에게 했던 말씀 그대로 지금까지 언행일치의 삶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통도사 강주 소임을 보실 때 “난 앞으로 20년간은 포교만 할거다” 라는 말을 자주 하셨는데 지금까지 한치의 어긋남이 없는 것으로 안다. 그렇다고 학문을 게을리 하신 것도 아니다. 언행일치의 삶이 어디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인가.

몇 년 전 주변 스님들과 함께 스님을 찾아뵈었는데 그때 걱정스럽게 하시는 말씀이 “요즘은 일반 신도들에게 비쳐지는 스님들의 위상이 수행자로 인식되기보다는 기능인, 종교적인 직업인으로 보여지고 있어. 도시 사찰에서 의식이 중심이 되어서 그런지 몰라도 선원 같은 수행공간에서는 수행자인데 도시에 오면 기능인이야. 일본불교가 그렇잖아. 그래서 스님들에 대한 존경심이 없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마 누구나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 승가대중 모두 함께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닌가 한다. 한국불교가 수행불교냐 의식불교냐 아니면 통불교냐를 이야기하기 이전에 말이다.

입산을 해서 일정 기간의 습의과정이 지나면 은사스님을 정해야 한다. 비로소 평생 사제지간의 인연을 맺는 중요한 선택의 순간인 것이다. 그런데 법력이 우선 하는 게 아니고 다른 상황 논리에 의해서 정해지는 경우가 있다. 상좌의 얼굴을 제대로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상좌를 거느린 스님이 있는 반면 한 상좌도 제대로 교육시킬 여유가 없어 평생 상좌 인연이 없는 스님들도 많다. 상좌 복이 많아서 부러움의 대상(?)인 스님들도 있고 상좌로 인해서 곤혹스러운 경우를 당하는 스님들도 있다. 그런데 사제지간의 연이 법이 아닌 다른 이유에서 맺어지게 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어록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제의 인연은 법의 전수과정에서 맺어진 관계였다. 조용한 침묵 속에서 미소로 전법이 이루어 졌는가 하면 스승 앞에서 육체가 지닌 모든 가치를 집어던지므로써 법을 구했다. 그런데 요즘 우리 현실은 법이 우선하기 보다는 다른 목적에서 너무도 쉽게 건당을 하고, 그러다 보니 묘한 상황논리에 의해서 거룩하게 이어지던 건당의 의미가 다르게 해석되는 것에 자괴감을 느낀다.

스님은 상좌가 대여섯은 족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곁은 늘 쓸쓸하다. 맑은 물에는 원래 고기가 살지 못하는 것인지 몰라도 스님은 필요에 의해서 상좌를 곁에 두려고 하지는 않는다. 모두 공부 핑계로 스님 곁을 떠났는지는 몰라도, 나 역시 스님 상좌들과 똑같은 처지면서도 이런 말을 하는게 우습지만, 맑고 찬물에서 사는 물고기가 바보 취급을 받는다면 어떻게 봐야할까.

행자 교육을 할 때 계단(戒壇)의 스님들이 은사스님께 참한 상좌를 두었다고 하자 스님께서 “요즘은 상좌가 아니라 상전입니다. 시봉을 받는 것이 아니라 상전 모시듯 하고 살아야 합니다” 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셨다. 함께 웃고 말았지만 어떻게 보면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 중노릇이고 또 가장 어려운 것이 중노릇 아닌가 한다. 적당히 눈치껏 살면 가장 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고, 제대로 수행을 할라치면 가장 어려운 길이 절집 생활이다.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옷이 먹물 옷이요, 가장 무거운 옷 또한 먹물 옷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내면적으로 더욱 힘들어지는 것은 단 한가지 이유, 공부와 수행을 등한시했기 때문이다. 스님께서 6년 전 이런 제의를 해오셨다. “너 이제 나랑 함께 살지 않을래? 지금 경전공부든 수행이든 어느 한 가지에 전념하지 않고 이 생활이 지속된다면 너 40대에 많이 힘든다. 봉은사에 살만큼 살았으니 나하고 경전이나 보면서 같이 살자. ”여섯 해가 지난 지금 그때 스님의 애정 어린 말씀이 너무도 고맙고 눈물겹다.

한 보름전 스님께서 오랜만에 오셨다. 생전에 스님 법문을 들었던 돌아가신 분이 마지막 유언으로 종범스님을 꼭 모셔서 영가법문을 청하라는 뜻을 받들어 상주들이 간곡히 부탁을 해왔다. 그래서 스님께서 쉽지 않은 발걸음을 하셨다. 마지막 임종의 순간에 스님 얼굴을 떠올렸다니, 그리고 유언이 스님의 영가법문을 듣고 이 세상 인연을 끊겠다는 것이 스님의 법력이 아닌가.

그 흔한 자가용도 스님은 없다. 웬만하면 장만하셨을 법도 한데 꼭 대중교통을 이용하신다. 영가법문을 마치고 일주문 밖까지 모시고 가는 길에 가을 학림의 강의 요청을 했더니 “나 이제는 못하겠다. 다 잊어버렸다.”고 하신다. 멋진 거절이다. 뒷모습에서 세월이라는 두 글자를 떠올렸다. 스님을 생각하면 우뚝 솟은 봉우리가 아니라 폭풍우와 모진 비바람을 견뎌낸 뿌리깊은 나무가 연상된다. 비바람이 멎고 떨어져 흩어진 낙과들을 보며 더욱 깊이 뿌리를 내리는 나에게는 커다란 그늘이다.

2000-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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