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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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스님
언제나 책상앞에 앉은 모습
겸손하고 인정많은 스님

동국대 교수 혜원 스님은 아주 아주 어릴 때 출가한 동진출가인이다

5살때 은사스님이 어머니인줄 알았고 법당에 계신 부처님이 아버지인줄 그렇게 알았단다. 남부럽지 않는 은사스님의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어린 시절을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 못지 않게 밝게 자랐다. 그래서 혜원스님은 재능과 특성을 마음껏 발휘하도록 도와주신 은사스님의 은덕을 늘 잊지않고 지금도 고인이 되신 은사스님을 위해 기도한다. 우리 나라의 50년대는 어떠했는가. 아니, 절집의 50년대는 어떠했는가. 공부보다는 먹고 살기 위해 동냥을 다녀야했던 시기였고, 또 염불이나 익히고 절집 공부가 전부였던 시대였는데 스님의 은사스님은 혜원스님에게 학교공부까지 할 수 있도록 해 주셨다.

절 집에서는, 절집 공부 외 다른 공부를 하는 것은 세속으로 가기 위한 준비 작업이라고, 당시 어른스님들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동진출가 스님들 대부분은 단계적인 학교공부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경우가 허다했다. 혜원스님의 은사스님은 그래도 생각이 열린 분이 아니셨는가 생각이 든다. 또 혜원스님의 재능이 탁월했고, 남다른 영특함이 보였기 때문에 유학도 보내고 박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하신 것 같다.

내가 강원을 다닐 때 혜원 스님은 이미 모든 이력을 마치고, 명성여고 윤리학 선생으로 아이들에게 부처님 말씀을 전하고 있었다. 내가 강원을 졸업하고 내원사 선원에 있을 때는 대학에 출강을 하고 있었다. 나와는 다른 길을 가는 그런 도반이었다. 그러나 길은 다르게 가지만 우리는 자주 편지로 서로의 생각과 안부를 전하고 서로 시간이 맞으면 가까운 곳으로 여행도 하는 지기(知己)였다. 가끔 보내온 편지에서 스님은, 자신의 공부도 중요하지만 철저한 보시행을 하기 위한 포교를 강조했고, 서울로 올라온 나에게 학교 공부를 할수 있게끔 많은 배려를 해 주었다. 사실 그때만 하여도 혜원스님에 대해서는 겉으로 나타난 외형적인 모습과 가끔 만나 나눈 정담이 전부였지, 알 것 모를 것 다 아는 그런 도반의 관계는 아니였는데도 스스럼 없이, 먹고 지낼수 있는 것 외에 교통비, 때론 용돈까지 주셨다. 그때 혜원스님이 기거했던 세검정 소림사에는 나뿐만 아니라 학원이나 학교 다니는 스님들이 함께 기거했는데 혜원스님의 적지 않는 배려를 입고 있었다.

서울인심이 시골인심보다 매서운 곳임에는 절집의 서울 인심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혜원스님은 공부하겠다는 스님들에게 이 정도도 해주지 못한다면 절집밥을 먹을 자격이 없다고 하면서 성의껏 베풀어 주었다. 혜원스님은 외모에서 풍기는 여성스러움과는 달리 의욕이 아주 강하고 추진력도 있으며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다. 스님은 교수라는, 사회적으로 직책높은 명함을 가지고 있지만 그 직책을 과시하거나 남용하지 않는다. 배운 만큼 고개 숙이고 겸손할 줄 아는 스님, 인연이 되면 어떤 사람이건 꼼꼼히 챙기고 자기 것 인양 마음 아파할 줄 아는 스님이다

나는 혜원스님의 학문의 깊이는 잘 모른다. 또 어떤 모습으로 교단에 서서 강의를 하는지는 잘 모른다. 헌데 몇 해전 일이었다. 청소년지도자 교육이 있어 한달 가량 스님의 토굴에서 신세를 졌던 일이 있다. 잠자는 시간과 일어나는 시간, 그때는 그것이 왜 그리도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스님이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이 일정치는 않았지만 대부분 밥 먹는 시간외에는 책상 앞에서 다음날의 강의 준비와 번역에 몰두하고 있었다. 또 내가 아침에 일어 나 보면 어느새 일어났는지 여전히 책상 앞에 앉아있다. 도반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아침준비까지 완료해 놓고 기다리고 있으며 혹 내가 불편해 할까봐 공부하는 틈틈이 나를 챙겨주었다. 도대체 잠을 몇 시간 잘까 궁금해 하루는 잠자는 시간 일어나는 시간을 몰래 체크 해보니 겨우 4시간정도 자는 듯 싶었다. 나도 부지런한 사람,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고 자부했는데 혜원 스님의 하루 일과를 보고는 부지런하다고 자부하던 내가 부끄러웠다.

스님은 잡문을 잘 못 쓴다고 누누히 말하고 또 글을 여기저기 잘 게재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가끔 보내오는 스님의 편지를 읽노라면 누가 시인인지 수필가인지도 모를 만큼 가슴에 와 닿는 내용이 많아 무디어져 가는 내 시심의 밭에 큰 자양분 역할을 하기도 한다. 꿋꿋하게 자기자리에서 최선의 모습으로 오늘의 불교, 아니 내일의 불교를 다듬어 가고 있는 그 모습, 후학들을 위해 무언가 힘이 되겠다는 그의 서원은 오늘도 한치의 게으름을 용납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달려온 시간이 무겁다고 때론 아우성칠 줄 알고, 세월만큼 무르익지 않는 학문에 대해 회의도 느낄 줄 알고, 불교 안팎의 문제에 분노를 표현할 줄도 아는 스님이 혜원 스님이다. 그러한 스님이 굳세게 버티고 있는 한 우리 불교의 앞날은 밝을 것임에 틀림없다.

■세원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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