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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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주스님
용돈 보내달라는 그림편지
스승과 제자사이 신뢰확인

절 집에서의 스승과 제자사이는 스승 제자 사이 이상의, 속가의 부모, 자식관계가 부여하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스님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흔히 쓰이는데 이 말은 ‘스승 없이 함부로 머리를 깎을 수 없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즉 아버지 어머니도 없는데 어찌 자식이 생길 수 있을까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부모 곁을 떠나 출가를 하면 내 머리를 깎아 준 스승은 바로 절집의 부모이다. 나의 정신적 지도는 물론이고 물질적 배려까지 은사가 해 주시고 있다. 그래서 은사 스님과의 인연은 어쩌면 부모와의 인연 이상으로 더 소중한지도 모른다.

출가하여 한동안 은사 스님의 배려가 없으면 공부하기는 참 어렵다. 자상한 은사 스님들은 상좌에게 이것 저것을 챙겨주지만, 그렇지 못한 스님은 이름만 걸어 놓고 홀로 살아가라는 식으로 무방비 상태로 둔다. 무섭고 어려운 은사 스님 보다는 자상하고 무엇이든지 의논할 수 있는 은사 스님들은 상좌와의 관계가 원만하다.

도반 중에 정말 은사스님과 마음을 열어 놓고 지내는 스님이 있다. 강원시절 이야기이다. 종주스님은 한철의 용돈이 부족해서 인지 은사 스님께 용돈을 좀 달라고 편지를 드려야겠다고 했다. 은사스님께서는 많이 주었다고 여기실지 모르지만 종주스님한테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다른 스님 같으면 은사 스님께 또 손을 내미는 것이 힘들어 그냥 지낼텐데 종주스님은 그러지 않았다. 평소에 남들 앞에 드러내놓고 감정 표현을 잘 하지 않는 스님인데도 꼭 은사 스님한테는 자기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는 스님이다. 어느 날 용돈이 떨어진 종주스님은 정말 편지를 썼다. 나는 그 편지 내용이 몹시도 궁금해 한번 읽어보자고 했더니 종주스님은 스스럼없이 보여주었다. 편지는 상식을 뒤엎은 그런 내용이었다. 당연히 “존경하옵는 은사스님께 올립니다” 하고 서두를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 말들은 모두 생략하고, 모든 내용을 압축한 듯한 큰 나무 한 그루 그림이 전부였다.

어리둥절해 하는 나에게 스님은 설명을 했다. 이 나무는 대추나무이며 열매는 대추이고, 대추안에 돈을 써 넣은 것은 내가 남에게 빌려쓴 돈이 이렇게 대추 영글 듯이 영글어 있으니 빨리 보내 달라는 뜻이라고 했다. 은사 스님이 이 뜻을 아실까 물으니 이렇게 말했다.

“사실 용돈 더 보내달라는 것이 뻔뻔스러운 일이라 말로 구차하게 무어라고 설명할 수 없으니 그림을 그려 보내는 거예요. 제 간절한 뜻을 이해하신다면 보내주실 것이고, 이해를 못 하신다면 안 보내주시겠지.” 엉뚱하면서도 유머스러운 스님의 행동에 한바탕 웃었지만 과연 은사 스님이 용돈을 보내주실까, 아니면 버릇없는 놈이라고 호통을 칠까 하는 궁금증은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그런데 그 편지를 보낸 며칠 후 은사 스님은 그 그림 한 장을 무난히 해독하셨는지 종주 스님이 요청한 용돈을 보내주셨다. 종주스님과 그 은사 스님과의 관계는 보지않아도 얼마나 신뢰하고 믿고있을까 하는 것을, 그 그림 한 장으로 모두에게 보여준 셈이었다.

종주스님은 자기 법명을 이렇게 소개한다. ‘종바리 종자에 술 주, 종주’라고. 술을 마시지 말라는 절집의 계율을 염두에 두고 하는 그의 위트덕분에, ‘종주’라는 법명을 들은 사람은 누구든지 쉽게 잊어 버리지 않는다.

또 학교 공부를 할 때 나는 종주스님의 학구열이 그렇게 대단한 줄 몰랐다. 내가 책상 앞에 끙끙거리고 있을 때, 스님은 적당히 하고 놀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졸업 후에도 학문보다는 다른 쪽을 택해 정진하겠지 했는데 스님은 졸업을 하자말자 아무도 몰래 일본 유학 길에 올라 나름대로의 학문의 길을 다졌다.

나는 스님이 유학갔는지도 몰랐다.

어느해 초가을이었다. 코스모스가 그려진 엽서 한 장이 일본에서 왔다. 코스모스 꽃을 유독 좋아하는 내가 가을이 되면 생각이 난다고, 만약에 한국에 있었다면 찾아 가서 같이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길을 걷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이 엽서로 대신한다고 하며 당분간 일본에 있을 예정이라고 했다. 수소문해 본 결과 종주스님이 일본에서 몇 년째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스님은 남들이 다 원하는 강사직이나 논문을 앞세워 자기의 명성을 다지는 것이 아니고, 그대로 산중으로 돌아가더니 지금은 은사 스님 시봉을 하면서 정진을 하고 있다. 제자를 편안하게 해 준 은사 스님의 노후를 지키겠다는 그 마음은, 그림 한 장을 해독하시고 용돈을 바로 보내주신 은사스님의 덕망을 알기 때문일 거라고 믿는다.

나는 가끔 상좌들이 용돈을 요구할 때 종주스님의 ‘용돈 그림 일화’를 들려준다. 그때의 그 모습이 참 부러워서 나도 이다음에 상좌를 두면 그런 이심전심의 관계를 유지해야지 했는데 나는 좀처럼 그런 은사가 되지 못하고 있으니 종주스님은 여전히 내 가슴에 부러운 존재로 자리하고 있다.

■세원사 주지
2001-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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