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로 미소로 꾸지람으로
학인들에게 끊임없는 사랑

운문사 하면 먼저 대강백이신 학장 명성 스님을 떠 올리고 그리고 나면 학장스님 곁에서 수레의 두 바퀴 역할을 해 내는 두 분 스님이 저절로 떠오른다. 한 분은 지난호에 얘기한 일진스님이고 또 한 분이 흥륜 스님이다.

흥륜 스님은 내 외전을 두루 갖춘 분이기는 하지만 운문사 외에는 살기를 원치 않는 분이다. 한번은 은사스님의 권유로 성라암 주지직을 잠시 맡았지만 결국은 오래 살지 못하고 ‘나는 운문사가 좋다’ 하시고는 운문사로 홀연히 내려 가셨다.

‘흥륜 스님’ 하면 굉장히 보수적이고 현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분이라고 운문을 나온 대부분의 스님들은 평가를 한다.

강원이 어떤 곳인가. 수행자로서 반드시 거쳐야 할 기본 교육기관이 아닌가. 각자의 사찰에서 그 사찰에서 익혀온 온갖 습의들을 다시 뭉쳐서 곧은 수행자로 길러내는 곳이 아닌가. 흥륜 스님은 학인들에게 경(經)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한시도 한곳에 머물러 버리지 않고 눈에 보이는 곳, 도량 곳곳에서 수행자로서 약간이라도 흐트러진 모습이 발견되면 그때 그때 고쳐주고 나무라시는 분이다. 때론 너무하다 싶고, 이 정도면 상식으로 이해 가능한 일같은데도 흥륜 스님한테는 용납이 안된다. 좀 개방된 스님들은 더러 불만을 말하지만 그것도 잠시 일어나는 불만일뿐, 아무도 흥륜 스님의 그런 모습에 반감을 가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스님은 사심이 없고 오로지 대중을 위해서 그러지,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평소에 보고 느끼기 때문이다. 만약 흥륜 스님의 행동이 학인들의 귀감이 되지 않았다면, 흥륜 스님의 충고에 다들 귀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스님은 학인들의 뒤치닥거리를 손수 하시면서 잘못된 부분들을 잡아주는데 누가 반감을 가지겠는가. 또 소임 잘 살고 공부 잘 하는 학인들에게는 끊임없이 사랑을 주시는 분이다.

나는 스님께 직접 공부는 배우지 못했지만 후배들 말에 의하면 스님은 경(經)뿐 아니라 사서삼경까지 두루 섭렵하신 분이라 그분의 강의시간은 훨씬 감칠맛 나는 시간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스님은 보기와는 달리 정치에도 관심이 많다. 시사 월간지를 구독하시고 신문의 정치면도 빼놓지 않고 읽으신다. 겉으로 풍기는 이미지만 가지고 보수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어쩜 가장 현대적이며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계시지만 그것을 앞으로 내세워 자랑하시지 않으신 분이기에 아마 그리 느낄 것이다.

스님은 특히 나이먹은 학인들을 더 좋아하신다. 나이 먹어 어렵게 공부하는 모습이 더 대견스럽고 또 어린 학인들을 잘 다독이면서 살아간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이다.

또 스님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일반 음식점에 들어 가지 않는다. 한번은 서울역근처 찻집에서 잠시 뵈었는데 차을 마시러 오신 것이 아니고 점심을 먹기 위해 들어오신 것이라고 하시고는 쪼랭이속에서 도시락이 아닌 빵과 김치를 꺼내시는 것이었다. 그것을 드시는 스님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외계인 바라 보듯 했지만 스님은 아랑곳 하지 않고 요기를 하시고는 대학원 강의를 듣기 위해 그 자리를 떠나셨다.

스님이 길을 나설 때 시자는 으례 김치병을 챙겨드린다. 혹 요기라도 하실 때 드시라고 말이다. 요즘 대부분 스님들은 음식에 큰 구애를 받지 않는다. 길가다가 배 고프면 적당한 음식점에 들어가 스님으로서 위상이 떨어지지 않는 음식을 챙겨 먹기 마련이다. 누가 흥륜 스님 처럼 김치병 넣고 다니면서 허기진 배를 채우겠는가. 이렇게 스님은 가식 없이 몸에 배인 수행을 학인들에게 보여주기 때문에 흥륜스님은 우리 모두의 귀감이 되는, 보배 중의 보배라고 할 수밖에 없다

스님이 은사스님의 간곡한 권유로 서울에서 잠시 주지소임을 사셨을때 그때 나는 공부를 한답시고 뒷방에서 신세를 좀 진 적이 있다. 서울 살림이 어떠한가. 매서운 곳 아닌가. 돈 없는 시골 학인이 서울 올라와 공부하고 싶어도 거주할 곳이 없어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흥륜 스님은 있는 방 모두를 공부하겠다는 학인들에게 내 주고 교통비까지 주셨다. 다른 서울 절에서 찾아 보기힘든 ‘진풍경’이었다. 당시 공부한답시고 모두들 아침 밥 먹으면 학원으로, 학교로 다 나가면 절에는 스님 혼자 남아 이것 저것 꾸려 나가야 했는데도 스님은 후학들 양성에 운문사에서나 서울에서나 변함 없이 덕을 베푸는 분이시다


옆에서 늘 지켜주시고 챙겨주시고 때론 호된 꾸지람으로 귀가 번쩍 뜨이게끔 해 주시는 분, 그런 분이 계시는 운문 도량. 그 도량에 주석하시며 비구니계, 나아가 불교계에 큰 자리매김을 하시고 있는 흥륜스님. 스님의 해박한 강의를 오래오래 들으며 살면 얼마나 좋을까.

■세원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