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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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스님
생각도 푸짐하고 인심도 푸짐
자기희생 아끼지 않는 ‘큰언니’

우리 사회에 있어 맏이의 개념은 참으로 크다. 책임감이 있고 모든 일을 통솔력 있게 주관하고 이끌어 가는 반면, 늘 받기만 하는 막내들에 비하면 마음도 참으로 넉넉하다. 항상 자신 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관용과 덕을 흠뻑 베풀며 다른사람들에게 있어 마음의 귀의처역할을 하기도 하고 기댈수 있는 언덕이 되기도 하는 맏이, 부모가 없는 집에서는 부모 역할을 하면서 모든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이행하는 맏이. 절집에 있어서도 맏이의 역할은 대단하다.

현수 스님은 속가집에 있을 때도 맏이였으며 절집에 와서도 맏이였고, 강원생활을 할 때는 아예 ‘현수’라는 불명은 뒤로 하고 ‘백씨(伯氏) 스님’으로 통했다. 어느 처소에 가나 우리 모두의 영원한 백씨 역할을 싫은 기색 없이 해내는 스님이 현수 스님으로 항상 열린 마음의, ‘큰 언니’였다. 만나면 늘 푸짐하다. 자신에게는 참으로 인색하지만 아우들에게는 영원한 물주 역할을 해주고, 무엇을 요구하기 전 먼저 눈치를 채고 이것저것 챙겨주는 모습은 오랫동안 자연스럽게 익혀온 맏이만이 갖는 장점이다.

스님이 어디를 가나 맏이 역할을 해야하는 것은 우리들에 비해 늦은 출가 때문이다. 아버지가 안 계시기에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모두 끝내고 나서 동생의 영향을 받아 출가 했다고 한다. 스님은 자기밖에 모르는 철부지 아우들의 눈에 차지 않는 모든 행동들을 너그러이 보아주었고 때론 정말 친언니처럼 걱정해 주었고 나무라 주었다. 예나 지금이나 아직도 스님의 그런 역할은 끝나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 사람을 좋아하는 스님의 성품 때문에 늘 누군가가 스님을 찾아가서 이것 저것 상담을 한다. 그 찾아 가는 한사람 한사람을 정말 진심으로 맞이해, 내 일처럼 상담에 임해주는 큰언니의 역할은 정말 자기 희생이 아니고는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너그럽기 때문에 적당히 대충 하고 넘어 갈 수 있는 스님이라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그렇지 않다. 참으로 예리하고 날카롭다. 적당히 넘겨버릴려 하면 어느새 스님은 그것을 끄집어 내고 지적해 주며 고쳐 줄려고 애쓰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이러한 성품 때문에 많은 스님들이 현수 스님을 의지한다.

현수 스님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마음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한다. 그러면 스님은 이야기 하나 하나에 내 일인 듯 함께 고민하고 또 기뻐한다.
지식인이라고 자랑하는 스님들을 부끄럽게 하는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늘 ‘나는 공부도 못했고 아는 것이 없어 남들에게 무어라고 이야기해 줄 수 없다’고 은근히 자신을 감추어 가는 모습을 보면 그 속에서 겸손과 부처님 가르침대로 정말 ‘중답게’ 살려는 스님의 진실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느 해였던가, 경상도 어느 두메 산골에 있는 암자에서 기도정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갔던 적이 있다. 손님 접대를 위해 방앗간에 내려가서 만들어 왔다는 쑥찰떡을 내놓았는데 참으로 맛이 있어 이후에도 경상도에 가면 그 떡 맛을 혹시나 볼수 있을까 하고 기웃거려 보기도 한다. 번잡한 서울에 살면서도 스님 내면에 자리한 토속적인 향수를 늘 풍겨 주었는데, 산중 골짜기 암자에서 만난 스님의 모습은 제 옷을 제대로 입은 듯 한결 잘 어우러져 보였다.

손수 텃밭을 가꾸고 하루 사분 정근으로 자신의 깨침소리를 들을려고 열심히 정진하는 모습앞에 나도 모르게 숙연해졌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스님은 그 생활을 오래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허물어져 가는 암자를 기도와 정진으로 반연을 만들어 제법 제 모습을 찾아 가도록 만들어 두었더니 돈 꽤나 나오는 암자로 착각한 본사의 명령을 거역 할 수가 없어 나와야 했다고 한다

스님이 나온 뒤 암자의 주지는 몇 차례 바뀌었고 스님마다 제 임기를 제대로 채우지 못했다고 한다.

편안하게 그저 얻어지는 것으로 착각한 본사의 주지직 이권다툼이 싫어 몇 년 나름대로 불사하고 기도한 도량을 말없이 건네 주고 나오면서 스님은 아까워 하거나 욕심내지 않았다. 부처님 도량 허물어져 가는데 먹물 옷 입고 부처님 밥 먹는 수행자가 어찌 내 등 따뜻하고 배부른 것만 찾겠느냐고. 나머지는 또 인연 있는 스님의 몫이라고 했던 스님.

아무리 가난한 절이라도 열심히 목탁치고 기도 잘하고 정진 잘 하면 먹는 걱정 할 것 없다고 늘 말해주던 스님, 기도의 힘도 정진의 힘도 없이 부처님밥을 그저 먹으려고 했던 몇 차례 바뀐 암주 스님들의 모습은 이 시대의 우리 불교계가 치료 해야 할 고질병 같은 것은 아닌지. 스님은 지금 동화사 가는 길목에서 다시 시작하고 있다. 스님을 만나고 오면 고향에 다녀 온 것 같은 푸근함과 넉넉함을 느낀다. 내 마음의 고향집을 끊임없이 만들어 주는 스님이 곁에 있다는 것은 정말 신나는 일이다.

■세원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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