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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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무스님
출가 놓고 어머니와 갈등
정진모습 보며 감화

스님들 대부분은 자기가 태어 난 곳에 있는 사찰로 출가를 하지 않고 아주 낯선 곳을 출가지로 선택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 까닭을 나름대로 판단하건대, 어느정도 수행이 익을 때 까지 모든 반연에 대한 ‘쉼표’를 찍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고, 고향이라는 곳에서 수행한다는 것이 첫 출가자에게는 심적으로 많은 부담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수행자는 미리 사찰과 은사를 정해놓고 가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무작정 원하는 사찰에 찾아가서 출가뜻을 밝히고 그곳에서 받아 주면 바로 행자 생활이 시작되기도 한다. 요즈음은 부모의 허락이 있어야만 출가가 가능하지만 옛날에는 허락 없이 출가를 했다가 소식을 듣고 찾아오는 부모님 중에는 삭발 염의한 모습을 보고 ‘뜻대로 하소서’ 하는가 하면 어떤 부모님은 집으로 가자고 강권 하기도 한다.

선원에 있을 때 일이다.

무무스님은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딸이었다. 서울 명문대를 졸업하고 남들이 부러워 하는 명문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가 방학때 동료와 함께 해인사에 갔던 것이 출가의 인연이 되었다. 그때 마침 많은 대중들이 법당에 모여 큰 스님의 법문을 듣고 있는 모습을 먼 발치에서 볼 수 있었고 또 간간히 들려오는 큰 스님의 법문은 이해 하기 어려운 단어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단순히 스님들을 모아 놓고 강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 무무스님은, “내 속에 알음알이를 만드는 그놈이 누구인고”라는 소리에 귀가 번쩍 열렸다고 한다. 그 후 많은 불교서적을 섭렵했고 방학이면 큰 스님을 찾아 참선하는 법을 배우더니 더 이상 학교에 남아 있을 의미를 못 느껴 출가했다고 한다. 물론 출가는 부모 동의없이 했다. 다 큰 딸이 어느날 부모님께 한 마디 말도 없이 직장을 버리고, 그것도 기독교 선교사가 아닌 불교의 출가수행자로 사찰에 있다는 것을 알아 내고 그 딸을 데리고 가려고 무척 애썼던 무무스님의 어머니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다. 어쩜 이것은 스님으로 출가한 딸과 기독교 집사인 어머니와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보이지 않는 종교갈등이었다.

한사코 자기 길을 가겠다고 어머니와의 만남조차 거부하고 몇날 며칠을 산으로, 다락방으로 숨어 다닌 무무스님은 산을 내려가는 어머니를 먼 발치에서 지켜 보아야 했다. 또 그 어머니는 딸의 선택이 잘못되었으니 그냥 두고 갈 수 없고 꼭 데리고 가겠다고 사하촌에 방을 얻어놓고 며칠을 잠복하면서 딸을 찾아다녔다. 모녀가 같은 종교였다면 변한 딸의 모습에 반쯤 마음을 접고 딸의 의사를 존중해 줄 수도 있었겠지만 그 어머니는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무무스님은 “어머니를 만나게 되면 출가 생활을 못할지도 모르니 대중스님들은 저를 위하여 무조건 없다고 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한동안 온 대중들은 무무스님과 그 어머니 신경전을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딸을 내놓으라고 소란을 피우던 그 어머니가 며칠을 그렇게 하여도 딸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자 지쳐서 내려갔고 무무스님 또한 곧바로 그 곳을 떠나 다른 사찰로 거처를 옮겼다. 자기로 인해 다른 대중스님들 정진에 피해가 가면 안된다고 하면서 말이다. 무무스님이 떠나 간 뒤에도 그 어머니는 몇 차례 사람을 앞세워 찾아 왔고 올 때 마다 혹 딸을 만나 데려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찬 눈빛이었지만 번번이 소식조차 접하지 못하고 돌아가곤 했다.

얼마 전에 들은 이야기이다. 무무스님의 어머니는 결국 스님을 찾아냈지만 몰래 찾아 가서 스님 정진하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예경을 올렸다고 한다. 또 지금은 독실한 불자가 되었다고 한다. 한마디 법문도 없었지만 정진하는 딸의 모습이 너무나 거룩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화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스님들마다 나름대로 출가의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지만 무무스님 만큼 힘든 출가를 한 스님이 또 있을까 싶다. 종교가 다른 어머니가 핏줄의 정으로 행사하는 압력을 지혜롭게 대처하고 묵묵히 침묵으로 삭히면서 한치도 굽히지 않고 밀고 나아가는 무무스님의 수행력, 어떠한 것을 표현하지 않아도 종교가 다른 어머니 마저도 그 앞에서는 많은 것을 느끼면서 얻는 것이 아닐까.

정진으로 얻은 그 힘으로 어머니 마음을 헤아렸고 또 내 속에서 알음알이를 만드는 그 놈을 알 때까지 결코 내가 정진하는 곳을 어머니께 알릴 수 없다며 깊은 산중에서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 놓지 않았으며 또 그 어머니에 대해 누구에게도 한마디 말하지 않았던 스님이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일년이면 반년을 묵언으로 정진하는 무무스님의 표현은 바로 소리가 아니고 느낌, 그것이 아닐까.

■세원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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