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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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진스님
냉정함과 따뜻함 조화
늘 흐트러짐 없는 모습

종진스님은 대강백이면서 율사이시다. 이 분 문하에서 수학을 한 스님들의 말에 의하면 어찌나 엄하고 깐깐한지 그 분 앞에서는 저절로 주눅이 든단다. 나는 그 분을 모시고 수학할 기회가 없어서 그 엄함을 실감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86년, 현재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스님이시면서 해인사 방장이신 법전 큰스님께서 해인사 주지를 하실 때의 일이다.

종진 스님께서는 율원장 겸 총무를 맡으시고 내가 회계 소임을 보게 되었다. 해인사는 통상적으로 오전 7시부터 8시 30분까지 종무회의를 한다. 종무회의는 그날 그날의 업무지시와 결제를 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종진스님이 총무를 하시면서부터 오전 7시부터 사시마지 법요식 시간까지 종무회의를 하기가 다반사였다. 스님은 지난 하루 동안에 발생한 사중의 대 소사에 대하여 꼼꼼하게 체크해 가지고 와서 낱낱이 지적하면서 각자의 소임을 독려했기 때문이다. 날마다 듣는 잔소리(?)이다 보니 다들 질려했다. 그런데도 주지스님은 묵묵히 듣고 계시다가 마지막으로 “총무스님께서 이렇듯 사중의 대 소사를 늘 챙기고 살피시는데 다른 소임자들도 각자 소임에 솔선하라”는 말씀을 반복하실 뿐이었다. 당시 우리는 종진스님을 ‘독일의 게슈타포’라고 불렀다. 또 되도록이면 마주치지 않으려고 피했다. 한번 마주쳤다 하면 승행(僧行)에서부터 소임의 나태함에 이르기까지 곤욕스러울 정도로 지적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그냥 습관적인 잔소리가 아니고 사리에 딱 맞으니 입도 뗄 수 없었다.

스님은 한철이 지나고난 후 총무 소임을 그만두고 율원장만 하시게 되었다. 처음 얼마동안은 그렇게 속이 편하고 홀가분한 수가 없었다. 날마다 듣던 지적을 받지 않아도 되는 해방감을 며칠째 만끽하고 있을 때 보이지 않는 틈이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나중에는 사소한 일부터 큰 사고까지 줄을 이었다. 그제서야 비로소 그분의 큰 모습을 느끼게 되었다.

가끔씩 율원장 스님이 거처하시는 처소에 들르면 늘 가사장삼을 단정히 수하시고 꼿꼿하게 앉아 경을 보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삼복에도 그 모습은 변함이 없다.

“더우실 텐데 가사장삼을 벗고 계시지 그러십니까?” 하면 빙그레 웃으시면서 “수행자가 덥거나 춥거나 한결 같아야지요. 더구나 경을 보는데 흐트러진 모습을 해서야 되겠습니까”하시며 도리어 인자하게 일깨워 주신다. 소임을 보는 위치에서 한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고 업무를 지시하고 지적하던 때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 철저한 수행자 만이 가질수 있는 냉정함과 따뜻함을 동시에 보여주시는 대표적인 분이 바로 종진스님이라 할 수 있다.

한번은 대구 근방에 볼 일이 있어 종진스님을 비롯한 몇 분의 스님들과 다녀오게 되었다. 점심시간을 놓쳐버려 하는 수 없이 식당에 가서 공양을 하게 되었다. 국수 한그릇들 하자고 해서 국수를 시켰더니 국수에는 조갯살을 넣는단다. 율사 스님을 모시고 갔는데 모른체 하고 먹을 수도 없고 해서 의견들이 분분하다가 국수와 수제비로 나누어 시켰다. 국수에는 조갯살을 넣고 끓이지만 수제비는 풋호박만 썰어 넣는단다. 그때 누군가가 “역시 조개가 들어간 칼국수라 맛이 일품이구만. 그런데 수제비 맛이야 율사처럼 쫀쫀하지” 했다. 그때까지 아무 말이 없으신 종진스님께서 웃으시면서 그 말을 받아 “율사가 쫀쫀한게 아니고 수제비가 쫀쫀하구만” 해서 좌중이 한바탕 웃은 적이 있다.

율사란 계율 지키는 것을 수행의 근본으로 하는 이들을 지칭하는데 사실은 율사가 따로 정해진 것이 아니다. 출가수행인은 누구나 사미계와 보살계, 구족계를 필수적으로 받아야 하고 그것을 지켜야 한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때 청천벽력 같은 절망감으로 슬픔에 빠져있던 제자들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후 저희들은 무엇을 의지하여 수행해야 합니까?” 그 물음에 답하여 부처님께서는 어떠한 다른 것도 의지하지 말고 계를 의지하여 수행정진할 것을 당부하셨다. 흔히 계라는 의미를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하는 제약적인 금계만을 생각하는데, 계는 섭율의계와 섭선법계가 있다. 섭율의계는 오계, 십계, 보살계, 구족계 등 행동과 의지를 제약하는 금계이고 섭선법계는 삼귀의, 육바라밀, 팔정도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흔히 말하는 율사의 의미가 금계만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고 출가수행하는 모든 수행자가 율사이다.

이번 호부터 3개월간 ‘스님이야기’를 연재하는 수완스님은 1973년 해인사에서 정원스님을 은사로 득도하고 승가학원 재단사무처장, 중앙승가대 총동문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경남 산청 정취암 주지로, 현대불교문학회 회장과 조계종 제12대 중앙종회 의원을 맡고 있다. <마음 빈 하늘> <이내의 끝자리> 등의 시집을 펴냈다.

2001-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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