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신장 같은 6척 장신
제방 선원 다니며 정진
강원(승가대학) 초급과정인 <치문경훈> 면학편 고산 경덕사 운법사 ‘무학십문병서’는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 가르침중 하나다. 강원을 졸업할 무렵 차후 진로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중천스님을 찾아갔더니 이 ‘무학십문병서’를 들어 말씀해 주셨다. 무학십문의 첫째는, 不修學(불수학)이면 無以成(무이성)이라(계 정 혜 삼학을 닦지 않으면 불도를 이룰 수 없다), 둘째, 不折我(불절아)면 無以學(무이학)이라(나를 꺾지 않으면 배울 수 없다), 셋째, 不擇師(불택사)면 無以法(무이법)이라(스승을 가리지 않으면 법을 얻을 수 없다), 넷째, 不習誦(불습송)이면 無以記(무이기)라(외워 익히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다), 다섯째, 不工書(불공서)면 無以傳(무이전)이라(쓰기를 공부하지 않으면 전할 수 없다), 여섯째, 不學詩(불학시)면 無以言(무이언)이라(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할 줄 모른다), 일곱째, 非博覽(비박람)이면 無以據(무이거)라(널리 보지 않으면 전거典據를 댈 수 없다), 여덟째, 不歷事(불력사)면 無以識(무이식)이라(일을 경력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아홉째, 不求友(불구우)면 無以成(무이성)이라(벗을 구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 열번째, 不觀心(불관심)이면 無以通(무이통)이라(마음을 관하지 않으면 도를 통할 수가 없다).
나의 학인시절 강원 분위기는 지금과 사뭇 달랐다. 그때 학인들은 거의가 10대에 출가했고, 동진 출가자들도 많았다. 20대 중반이후 출가자를 ‘늦깎이’라 했다. 그런데 요즘은 평균 출가연령이 32세라 하니 예전에 비하면 손자와 할아버지쯤의 격차이다. 그러니 그때와 지금의 강원분위기나 패기는 마치 활화산과 화롯불처럼 그 차이가 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부시간에 경전 독송하는 소리가 비오는 날 개구리 우는 것처럼 그칠 줄을 몰랐다. 새벽3시부터 취침시간까지 잠시도 한눈 팔 사이가 없었다. 단체생활의 고단함과 상 하반의 위계가 고부간의 시집살이보다 더 했다. 먹을 것이 귀한 시절인데다 무쇠라도 녹일 한창 때이다 보니 대중공양 중 가장 반가운 것은 찰밥 공양이나 떡 공양과 같은 먹는 공양이었다.
어느 날 도반들과 시장기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돈을 걷으니 1,000원 정도 되었다. 절에 살면서 가야에 있는 중학교를 다니는 아이에게 번데기를 사다달라고 부탁했다. 사온 번데기가 서너 되 는 족히 되었다. 용탑선원의 골방에 모여 번데기를 끓여 한참 정신없이 먹고 있는데, “이게 무슨 냄새야” 하면서 문이 벌컥 열렸다. 다들 벼락이라도 맞은 듯 혼백을 놓고 쳐다보니 신장처럼 눈을 부라리고 있는 스님이 다름아닌 중천스님이었다. 중천스님은 제방의 선원을 찾아 정진을 하셨는데, 그 정진하는 모습이 절구통처럼 요지부동이던 고참 수좌였다. 키가 6척 장신에다 눈이 유난히 커서 부릅뜨면 화엄신장 같았다. 평소에도 무척 어려워하고 있던 터라 이제 죽음이다 하고 모두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는데 기차화통 같은 목소리로 “무엇들하고 있는 게야?” 재차 물어왔다. “배가 고파 번데기 좀 사다 끓여먹는 중입니다” 했더니, 갑자기 “으하하하, 못난 놈들. 그래 배도 고플 게다. 번데기 몇 개 먹는다고 시장기가 가시냐” 하더니 주머니를 뒤적이다 돈 5,000원을 꺼내주면서 “무어 맛있는 것 좀 사먹어” 하고는 다른 말이 없이 문을 닫고 뒤돌아 섰다.
중천스님에게는 또 하나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서울발 부산행 열차에서 있었던 일이다. 옆자리에 탄 사람이 줄담배를 태웠다. 보통 피우는 담배연기도 고약하지만 생담배 타는 연기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까지도 고약해 한다. 그런데 이 사람은 담배에 불을 붙여놓고 한참동안 해찰을 부리며 생담배를 계속 태웠다. 주의를 몇 번이나 주었는데도 막무가내였다. 이놈이 매우 고약한 놈이구나 싶어 버릇을 고쳐 주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서 중천스님은 홍익요원(기차에서 간식거리를 파는 사람)에게 담배 한 갑을 사서 한꺼번에 대여섯 개비씩 불을 붙인 다음에 생담배 타는 연기를 그 사람 코앞에 대고 있었다. 그러자 그 사람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스님 이게 무슨 짓입니까 하면서 화를 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당신이 먼저 예의에 벗어난 짓을 했지 내가 먼저 했어 하고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았더니 그 사람이 기가 질려서 그럼 우리 기차에서 내릴 때까지 담배 피우지 맙시다 했단다. 스님이 말만 가지고는 안되고 가지고있는 담배를 모조리 창밖에 버린다면 그렇게 하지 했더니, 그 사람은 하는 수없이 함께 담배를 창밖에 버렸다.
스님은 강원도 낙산사주지를 잠시동안 한 적이 있다. 낙산사는 많은 사람들이 주지를 하고 싶어하는 절이다. 그런데 얼마 후 수좌가 정진 이외에 달리 할 것이 없다면서 주지직을 그만두고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말 그대로 ‘무소유의 일탈’이다. 스스로에게는 가차없이 매서운 경책을 하면서도 후배들의 일탈과 호기를 책하기 전에 너그러움과 자상함으로 감싸는, 늘 향기로운 분이 중천스님이다.
■정취암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