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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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스님
30여년 올곧게 화두참선
효심 지극하고 진솔한 선승

현진 스님은 10대 중반에 전남 해남 대흥사로 출가하였다. 출가이래 30 여년 동안 좌복 위에서 화두 참구만을 올곧게 해온 수좌 중의 진국이다. ‘현진’이라는 법명을 쓰는 이들이 너무 많아서 호를 ‘노은(老隱)’이라고 하는데 도반들은 속명인 만수라는 호칭으로 많이 부른다. 도반들이 이제 나이도 들었는데 주지도 하고 상좌도 두라고 하면 무슨 객적은 소리냐고 화를 내며 말도 못 붙이게 한다. 주지나 상좌가 수행에 무슨 보탬이 되냐는 것이다. 몸뚱이 하나 지탱하고 수행하기도 바쁜데 또 다른 업을 지어서 번거로움을 더한다면 섭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거다.

근래에 상당수의 스님들까지도 전통적인 불교수행과는 상관도 없는 별의별 잡되고 삿된 행법들을 어설프게 익혀가지고 최상의 수행법인 양 기만하는 것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는다. “무슨 기공이니, 관법이니, 활법이니 하며 설치는 놈들부터 시작하여 남방선이다, 티베트선이다, 요가수행이다, 심령술이다 하여 온갖 잡것들이 요사비사한 말로 현혹시키며 혹세무민하고 있다”고 우려하며, 만약 이대로 가다가는 수좌들마저 수행관이 제각각이 되어 어지러워진다면, 장차 한국불교는 지난 수십년 동안 겪은 종단분규보다 더 심각한 질곡에 빠지게될 것이라고 걱정한다.

현진 스님은 수년전 제주도 난곡선원의 무문관에서 정진했었다. 그때 스님의 모친이 돌아가셨는데 부음을 알리느냐 마느냐로 도반들이 고민을 했다. 윤리적 측면에서는 분명히 알려야 되겠지만 생사해탈을 위해 목숨 걸어놓고 정진하는데 우리가 그 선정을 깨서야 되겠느냐 하여 결국 알리지 않았다. 장례 기간 내내 현진 스님의 속가 친지들이 스님의 행방에 대한 물어왔지만 연락이 안된다고만 대답했다. 사십구재도 청량사에서 도반들이 모셨다.

현진 스님은 모친에 대한 정이 남다른 사람이다. 가끔씩 그는 “우리 오보살님 젖을 12살 때까지 먹었어”하며 향수에 젖기도 했다. 1년 후 무문관에서 해제를 하고 나오고서야 모친이 돌아가신 것을 알게 되었다. 도반들에게야 고맙다는 말을 했지만 그 아픈 마음이야 오죽 했겠는가.

2년전 인도의 부다가야에서 현진, 함현, 원타 스님 등과 함께 정진을 했었다. 인도에서 결제에 들어가기 전 파키스탄의 간다라 지역에서부터 시작하여 실크로드를 따라 불교유적지를 답사했다. 중국의 돈황과 티베트의 라사를 경유하여 네팔, 스리랑카와 인도 여행을 했다. 부다가야에서 동안거 결제를 마치고 또다시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를 한달동안 트래킹했는데, 그때 현진 스님의 놀랍고도 감동스런 모습을 보게되었다. 한국을 떠나 이듬해 다시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 한시도 돌아가신 모친의 왕생극락 발원을 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들리는 사원마다, 전각마다 모든 불상과 불탑 앞에서 지극한 마음으로 모친의 왕생극락을 기원했다. 히말라야 산중에는 옴마니반메훔 이라고 쓴 원통이 마을 입구 길 양편으로 줄지어 세워져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손으로 돌리면서 기도를 하게되어 있다. 스님은 지나는 마을마다 매번 원통을 돌리며 발원했다.

해인사는 결제때가 되면 매달 음력 보름날과 그믐날 포살법문을 한다. 한 25년 전 포살법문 때 화제가 된 사건이 있었다. 율주이던 일타 스님께서 포살법문을 하셨는데 낭랑한 목소리로 물 흘러가듯 계를 설해 그 모습만 보아도 잠시 해이해졌던 마음이 저절로 추스려졌고 새로운 신심이 솟곤 했다. 하안거 결제 포살법문을 듣기 위하여 수백 대중이 대적광전에 가득히 운집하였다. 이때 율주 스님께서 대중들에게 몇가지 질문을 하게 된다.

“여기 모인 대중이 청정합니까?”(3번)
이에 대해 아무 대답이 없으면 대중이 묵연한 연고로 청정한 줄 알고 내가 계를 설할 것이니 잘 받아 지닐지니라 하고는 목차에 따라 계를 설하게 된다.
그런데 그날 율주 스님께서 “여기 모인 대중이 청정합니까?” “여기 모인 대중이 청정합니까?” 하고 두번째 물었을 때 갓 스물 된 수좌 하나가 일어서면서 “여기 청정하지 못한 비구가 있습니다” 했다. 바로 선원에서 정진하던 현진 스님이었다. 율주스님께서 “청정하지 못한 비구는 발로참회 하시오”하자, 현진 스님은 청정하지 못한 이유로, 목욕하는 날 마을에 내려가서 술과 고기를 먹고 여자의 손도 잡았다면서 참회했다. 율주스님은 내가 20여 년간 포살계를 설했지만 오늘처럼 그 죄를 발로참회하는 수좌는 처음 보았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율주 스님이 어린 수좌에게 당했다(?)며 후일담이 재미를 더하였다.

달밤이면 술 생각이 곡우 날 나무에 물오르듯 한다며 술병을 통째로 비우고도 밤새도록 좌복에 앉아 정진을 하는 선승. 사이비 수행자들이 사이비 수행관을 최상승 수행인 것처럼 판치는 요즘 세태에 분노하는 선승. 섬세한 감성과 지극한 효성을 가진 담백하고도 진솔한 선승이 바로 현진 스님이다.

■정취암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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