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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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현스님
20여년 선방 정진
문화환경 수호 앞장

“불전 놨어?!!”
승속을 막론하고 함현스님을 찾는 사람들이 듣는 제일성이다. 그를 찾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질문이 아니고, 그 자신 어느 절 어느 법당이고 간에 참배를 할 때 잊지 않고 꼭 챙기는 것이 불전 내는 일이다. 함께 참배하는 사람들에게도 다들 불전 빠뜨리지 말고 꼭 내라고 당부한다. 충주 관음사와 제천 고산사의 중창불사를 도깨비 장난처럼 뚝딱 해치우고 언제 그랬냐는 듯 훌쩍 떠났다. 말 그대로 운수납자다.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어릿광대 같은 순수한 열정뿐이다. 항상 떠날 준비를 먼저 하고 머무르는 사람이다.

제방선원을 찾아 20여년간 정진을 하던 그가 수년전에 선방 문고리를 놓고 홀연히 한국을 떠난적이 있었다. 불교 유적지가 있는 곳이라면 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만행을 다녔다. 동남아 국가들은 물론 인도 전역을 세 바퀴나 돌며 샅샅이 찾아 다녔다. 또 실크로드의 남, 북로를 따라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스리랑카, 중국, 티베트, 네팔 등 발길 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 다니는 동안 그 형색이 거지와 구분이 안될 정도였다. 그가 몇 년 후 바람처럼 한국에 다시 나타났을 때, 그 몰골을 본 나는 숨이 넘어가기 직전까지 웃고 또 웃었다. 도대체 한국인이 아니었다. 한국에서도 상영한 적이 있는 중국 영화 ‘붉은 수수밭’에 나오는 가마꾼 얼굴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또 어찌 보면 태국 사람 같기도 했다. 그후 함현스님은 그 얼굴을 지금까지 가지고 산다.

제천 고산사에서 살 때의 일이다. 오후에 세 시간 동안은 자유 정진을 했는데, 울력을 하거나 산행을 주로 했다. 이교도의 방화로 인하여 소실된 어떤 사찰의 타다 남은 잔재들을 그냥 버리기 아까워 가져다 화목으로 썼다. 일정한 크기에 맞추어 자르고, 쪼개는 작업을 하다보면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들처럼 숯가루로 범벅이 되곤 했다. 살림을 맡고있는 함현스님에게 요구를 했다. 광부들도 석탄을 캐고 나오면 돼지고기하고 막걸리를 먹어서 탄가루를 씻어낸다는데, 숯가루 펄펄 날리는 장작을 패면서 돼지고기까지는 안 먹더라도 맥주라도 한 깡통씩 마셔야 되는 것 아니냐고. 함현스님이 어느 날 신도들에게 저 숯 광속에서 정진하는 수좌들 목 좀 씻겨 주라고 농담조로 말했더니 정말로 한 신도가 명절 때 선물로 받은 거라며 나폴레옹 꼬냑 한 병과 시바스 위스키 한 병을 가지고 왔다. 숯가루를 씻는데는 이것이 최고라고 하면서 말이다. 함현스님이 가라사대 “꼬냑은 내 약이니까, 너거들은 위스키 먹어라. 으-음 역시 꼬냑은 좋은 약이야” 하면서 자기만 한 잔씩 했다. 며칠 후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우리는 위스키와 꼬냑의 내용물을 서로 바꾸어 놓았다. 함현스님은 이 사실도 모르고 계속 “음, 역시 꼬냑은 좋은 약이야” 하며 마셨고, 우리도 “그래, 꼬냑은 좋은 약이지” 하며 맞장구를 치곤 했다.

함현스님의 인솔하에 2년전 도반들과 인도 등지를 다녔다. 그는 불교 유적지라면 어느 곳이든지 빠뜨리지 않고 데리고 갔다. 어떤 날은 하루종일이 걸려 찾아갔는데 벽돌조각 몇 장만 굴러다닐 뿐 유적지라고 하기에는 어설픈 곳도 있었다. “이런 곳에 무엇 하려고 이 고생하며 오느냐”고 투정을 하면,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를 하는거야”라며 멀쩡한 곳만 성지이고 허물어져 폐허가 된 곳은 성지가 아니냐며 으르렁거렸다.

스님의 이같은 순수한 열정은 한국에 돌아온 후 더욱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개발과 보전이 이분법적 차원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고, 생존권과 직, 간접적으로 관계되는 복잡한 양상의 문제이다. 그중 자연친화적인 환경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거의 모든 사찰들은 개발 현장과 최일선에서 맞닥뜨리게 된다. 해인사 인근의 가야산 골프장 건설 계획을 비롯한 송광사, 금산사, 범어사, 석남사 등등 전국 각지의 수많은 사찰들이 개발 계획과 맞물려 진저리치도록 몸살을 앓았다. 지금도 지리산 댐 건설과 관련하여 주변의 여러 사찰들이 몸 부대끼며 투쟁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리산 댐 건설계획은 5공화국 때부터 사회문제가 되어 백지화와 계획변경 사이를 오가다가 지난해에 다시 구체화되면서 심각한 문제가 되고있는 것이다.

함현스님은 지금 지리산 댐 건설 반대를 위하여 온몸으로 투쟁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지리산 인근의 장터마다 다니면서 댐건설 반대캠페인을 하고, 또 낙동강 상류에서 하류까지 한달이 넘는 기간 동안 도보로 행진하였다. 자연 환경 훼손에 따른 생태계의 파괴는 생존권을 위협하는 문제이고, 문화환경 파괴는 정신과 역사를 피폐화시키는 또다른 차원의 문제가 되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함현스님은 결코 재야 운동가가 아니다. 20여 년 동안 좌복에 앉아 화두 참구를 하고 있는 선승이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좌복을 박차게 했는지 우리는 안다. 그러므로 그를 선승이 아닌 사회운동가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그냥 참선하는 수좌일 뿐이다.

■정취암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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