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보다 무서운 스님 동안거땐 ‘잣까기 정진’
해인사에는 올해 77세인 을축생 노스님들이 네 분 계신다.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겸 해인사 방장이신 법전 큰스님과 도견스님 정원스님 송월스님 이시다.
그중 호랑이보다 무서운 노스님이 정원스님이다. 눈에 거슬리는 것이 있으면 승속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즉석에서 얼굴이 화끈해지도록 야단을 친다. 스님은 법전스님께서 해인사 주지를 할 때 총무를 한동안 하셨다. 주지인 법전스님은 사중 살림살이에 거의 간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삼직 소임자들의 책임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정원스님은 평소 활화산 같은 성격에다 소임을 보지 않을 때에도 대중 스님들의 승행과 종무소 직원들의 업무 태도를 많이 지적했는데 총무소임을 보고 있었으니 더욱 꼼꼼하게 지적하고 더 많이 야단을 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무섭게 야단치고도 돌아서면 마음에 담아두고 재론하지 않기 때문에 다들 무서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스님의 담백하고 단순한 면을 좋아했다.
종무소 직원 중에 조양이라는 아가씨가 있었는데 일을 잘못 해 매우 심하게 꾸지람을 들었다. 꾸지람을 듣고 훌쩍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든 스님은 퇴근후 기분전환도 시킬 겸 저녁공양을 사주겠다며 종무소 직원들을 데리고 인근에 있는 가조온천에 갔다. 조양은 여직원이 저 혼자이다 보니 나올 시간을 잘 가늠하지 못해 늦게까지 목욕을 했다. 다들 밖에서 기다리다 지쳐 식당으로 가서 식사를 마칠 무렵에야 조양이 나타났다. “아새끼래 거저 눈치가 없이 이래 어름하네” 조양은 낮에 종무소에서 일을 잘못해 혼날때 보다 더 혼쭐을 뺐다. 다음날 출근한 조양이 “스님께서는 절 위로하려고 데리고 가서 멀쩡한 사람들만 위로하고 저는 되려 꾸짖기만 하십니까?” 하자 “거저 내가 성질이 급해서 그러는거 아니네. 점심에 짜장면 사주갔어” 하셨다.
전국의 모든 교구본사에서는 매년 연말 종무 감사를 다닌다. 해인사의 말사는 공찰이 약 50개, 사찰(私刹)이 약 70개 있다. 3개조가 지역별로 나누어 약 1주일 가량 감사를 한다. 정원스님께서 총무하실 때 스님과 한 조가 된 사람들은 5분대기조 처럼 항상 긴장을 했다. 그때 정원스님팀은 산청, 함양, 거창 지역을 맡게 되었다. 이곳의 사찰들이 지리산과 덕유산 자락의 골짜기나 능선에 자리하고 있어서 눈으로 길이 막힐 경우에는 다니기조차 몹시 힘들뿐 아니라 식사시간을 놓치기는 예사였다. 한번은 날씨가 몹시 추운데다 눈까지 내렸다. 아침 일찍 나섰지만 산중의 눈길을 다니다보니 2~3개 사찰을 다니고 다음 목적지까지 가는 중에 점심 시간을 훨씬 지나고 말았다. 마침 순두부집을 발견한 직원들이 그곳에서 식사를 하자고해서 스님께서도 동의했다. 순두부찌개를 시킨 후 찌개가 끓고있는 동안에 밥을 빨리 가져오라는 성화에 좇겨 순두부찌개는 빼고 먼저 밥과 다른 찬만 가져왔다. 직원들은 순두부가 나오면 함께 먹으려고 천천히 먹고있는데 스님께서는 벌써 다 드시고는 “젊은 것들이 밥 한 그릇 놓고 왜 깨작거리고 있네. 가자!!” 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때 펄펄 끓고있는 순두부찌개가 나오고 있었다. 스님의 불같은 성격을 잘 아는 직원들의 마음은 더욱 급했다. 성기사는 그때 먹었던 순두부찌개만큼 뜨거운 찌개를 이후 먹어본 적이 없다고 지금도 말한다.
가야산에는 잣나무가 많다. 예전에는 잣수입이 사중재원의 중요한 몫을 차지했지만 요즘은 채취가 어려워 그렇지 못하다. 동안거 결제가 되면 산중의 분위기가 차분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정원스님께서는 동안거 결제가 되면 매우 특별한 정진을 하신다. 청솔모가 따서 떨어뜨린 잣송이를 가을 동안에 몇 가마씩 주워 모았다가 망치로 두들겨 잣씨를 꺼낸 다음 이것을 깨끗이 씻고 알이 덜 여문 것을 골라낸 후 방바닥에다 펴 말린다. 이렇게 일차 고르고 씻어 말린 잣을 집게로 일일이 까고 다시 속껍질을 제거한 후 한번 더 건조하면 비로소 먹을 수 있는 잣이 된다. 그 공정 과정을 수공으로 할 경우 잔손이 매우 많이 가는 작업이다. 그러나 스님께서는 몇 가마씩이나 되는 잣송이를 동안거 기간 동안에 잠도 거의 자지 않고 손수 수공의 공정을 거쳐 잣까는 정진을 한다. 이렇게 까 모은 잣알을 찻통에 가득가득 담은 후 작은 공양이지만 먹고 공부 잘하라면서 사중의 정진하는 스님들에게 일일이 한 통씩 나누어준다. 이런 과정을 잘 아는 스님들이 “어렵게 까셨는데 노스님께서 잡수시지요” 하면, 당신은 불같은 성격을 다스리는 인욕정진을 해서 좋고, 특별한 법력으로 후학들을 지도하지 못하는 당신이 이렇게라도 정진한 공양물을 열심히 정진하는 대중들이 먹어주니 공덕되어 또 좋은 일 아니냐며 웃으신다. 대중스님들은 이 특별한 정진을 보면서 “그래, 그 불같은 성격 때문에 할 수 있는 정진이지” 하고 말한다.
■정취암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