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 종합 > 기사보기
정원스님 (2)
날마다 손수 도량청소
“정재유실 절대 안된다”

정원스님께서 26, 7년 전 강원도 철원 심원사 주지를 하실 때의 일이다.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법요식 할 때 쓰는 법요집이나 독송용 책이 매우 귀했다. 그러다 보니 대체로 노트에 직접 베껴 썼고, 좀 낫다는 것이 빈 책에 사경해 한지로 맨 것이었다. 이런 실정이니 염불을 익힐 경우 갱지를 B5나 A4 용지 크기로 잘라서 앞 뒤 면에 빽빽이 써 가지고 들고 다니면서 익혔다. 스님께서 설령 ‘재받이중’은 안하더라도 중이 마지밥은 내려먹을 줄 알아야된다며 기본적인 법요 의식을 익히라고 하셨지만 나는 염불중은 하지 않을 거니까 배우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러던 어느날 스님께서 대중들과 함께 출타하셨다. 공양주와 나만 남게 되었는데 사시 무렵이 되자 신도회장을 비롯한 신도 20여명이 기도를 하러왔다. 나는 약간은 당황했지만 법요집을 보고 해주면 되겠지 하고 별다른 생각을 안했다. 그런데 축원카드를 찾아 가지고 기도하러 법당엘 들어가 보니 평소에 늘 탁자에 있던 석문의범과 법요의식을 베껴 써둔 노트마저 보이지 않았다. 매우 난감했으나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하고 천수경과 예불문 까지는 했다. 다음이 문제였다. 그 이외는 외워두지를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기도하다가 말고 탁자 밑과 불단 밑을 여기 저기 뒤적거리며 찾아보았지만 없었다. 침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고 진땀이 났다. 급기야는 신도들도 기도를 중단하고 법요집을 찾으러 온 도량을 뒤지고 다녔다. 한시간도 넘게 방마다 찾아보았지만 허사였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 따로 없었다. 그런데도 신도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나와 함께 이방 저방을 열심히 찾아 다녔다. 나는 거의 정신이 없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신도회장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스님, 불공기도는 그냥 한 것으로 하고 이제 마칩시다” 했을 때 나는 지옥에라도 와 있는 듯 했다. 며칠간 출타하실 거라던 정원스님은 오후 늦게 대중들과 함께 돌아왔다. 신도회장도 함께 왔다. 걸망 속에서 석문의범과 여타의 법요의식을 써둔 노트들을 꺼내놓았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나는 쓰다 달다 한마디도 못하고 법요의식을 익혔다.

스님께서는 늘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나는 수행자다운 수행을 못하고 지금껏 허송 세월 한 것이 제일 마음 아프다. 지금이라도 피나는 정진을 해야겠지만 나이 80이 되어 몸은 이미 늙었고 또 공부에 길들여지지 않아 뜻과 같지 않다. 젊다고 자랑말고 정진 열심히 해라. 다른 것은 사실 별게 아니다. 자기 마당 하나 쓸 줄 모르는 위인들이 도인임네 하고 남 앞에서 이름날리는 것은 엄격히 따지지 않더라도 위선이다.이름 날리는데 힘쓰지 말고 공부하는데 힘써라. 지 목숨 걸고 하는 일인데 하물며 무엇이 필요하겠어.”

스님께서는 70대 후반인 지금도 좀처럼 쉬는 일이 없다. 멍하니 앉아있으면 망상 생긴다며 날마다 도량 구석구석의 잡초를 뽑고 쓸기를 하루에도 수 차례씩 하신다. 강원도 건봉사에서 스님을 모시고 살 때다. 종무행정에 관한 업무를 스님께서 직접 가르치셨다. 또 말로 돈을 몇 천만원 혹은 몇 억원을 주고는 1주일이나 10일 안에 1년 예산을 세워서 집행한 장부와 결산을 복식부기로 하게 시켰다. 지금 같으면 전자계산기라도 있지만 나는 상업고등학교를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주산을 사용할 줄 몰랐다. 부기 또한 할 줄 몰라 여간 힘들지 않았으나 작은 오차나 실수를 용납 안했다. 예, 결산 심사를 실제처럼 했고 잘못된 점이나 지적사항에 대하여는 야단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경중에 따라 참회기도까지 시켰다. 실제 돈을 주신 것도 아닌데 하고 대꾸하면 돈을 주지 않았는데도 잘못을 하는데 실제 돈을 손에 쥐고 집행할 경우 무슨 과오를 저지를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며 더욱 심하게 꾸짖으셨다. 예, 결산뿐 아니고 종무행정과 관련한 모든 업무를 반복해서 시켰다. 중(僧)공부를 안 가르치고 왜 사무일만 가르칩니까 하고 따지면 제 밥그릇도 지키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도 씩이나 논하느냐고 하셨다. 지금이사 그때 스님께서 왜 그러셨는지 알지만 당시 사미시절에는 스님의 깊은 뜻을 알지 못했다.

스님께서는 출가 전에 전매청과 경찰간부로 재직하신 적이 있다. 행정에 밝다보니 출가한 후 사찰행정이 체계적이지 못하여 사찰재산이 알게 모르게 유실되고 사유화돼 가는 것을 보고 매우 안타까워하시다 못해 분개하셨다. 털끝 만한 사욕과 사심도 용납하지 않는 스님께서는 지금 우리가 편히 먹고 자고 수행 정진하는 사찰과, 사찰소유의 재산들이 옛날 스님들이 안 먹고 안 쓰고 아껴서 모은 재산인데, 못난 후손들이 하라는 수행은 안하고 절까지 망해먹고 있으니 복장 터질 일이라며 애통해 하신다. 스님들이 도를 닦고 수행정진만 하고 산다 할지라도 우리가 정진할 터전은 우리 스스로 지키고 보존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은 또한 우리 후손들이 정진하고 교화할 터전이기 때문이란 것이 정원스님의 한결 같은 뜻이다.

■정취암 주지
2001-05-16
 
 
   
   
2024. 11.23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