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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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스님 (3)
낮엔 일하고 밤엔 좌선정진
말로는 매몰차도 속깊은 정

80년대 초 문경 김용사에서 도반들과 함께 정원스님을 모시고 산 적이 있다. 그때 우리는 중앙승가대학을 졸업한 후 청소년수련원을 설립할 뜻을 세웠다. 전국 사찰 중 가장 적지가 어디인지 찾던 중 위치적으로나 환경적으로 김용사를 1순위로 점찍고 있었는데 그 무렵에 우연찮게 김용사 주지가 교체되었다. 그래서 정원스님을 김용사 주지로 모시고 영진, 정각, 순민 스님 등과 내가 주축이 되고 우리와 뜻을 함께 했던 스님들 10여 명이 모여 원대한 뜻을 세웠다. 스님께서는 청소년 포교만이 미래 한국불교를 담보할 수 있다며,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계획을 세워서 실행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셨다. 우선 2만여 평의 토지를 우리가 직접 경작하기로 하였다. 백장청규를 규범으로 하여 낮에는 들에 나가 일하는 것으로 정진을 삼고 밤에는 좌선정진을 하였다. 그러면서 수련회를 상시 개설하여 전국각지에서 온 수련생들을 지속적으로 지도했다.

한해 농사를 끝내고 나서 우리는 단순한 농사만으로는 경제성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2만여 평의 농토와 그 주변산지에 호두와 대추 나무를 심기로 했다. 그해 가을부터 겨울동안 나무심을 구덩이를 3m 간격의 바둑판 모양으로 한자 깊이씩 미리 팠다. 다음해 봄에 호두와 대추 나무를 심었다. 스님께서는 가끔씩 해이해지려하는 우리들을 불같이 꾸짖으셨다. 새벽예불이라도 한번 빠지는 날에는 불벼락이 났다. 젊은 놈들이 스스로 세운 원력을 못 견뎌하는 것은 신심이 없는 탓이라며 당신이 먼저 앞장섰다. 휴식시간에 치라며 탁구대를 사오기도 했다. 일도 같이 했지만 운동도 같이 했다. 젊은 시절 테니스선수였던 스님은 탁구도 선수 수준이었다. 함께 일하고 함께 운동할 때의 자상하고 인정스러움은 잘못을 꾸짖고 지적할 때와는 너무 달랐다.

그러던 어느날 사단이 났다. 스님께서 대중가운데 한 명이 담배 피우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 이전부터 담배냄새가 난다며 몇 차례 물은 적이 있었다. 다들 그렇지 않다며 숨기고 있었는데 꼼짝없이 들키고 말았다. 수행자가 담배 하나 끊지 못하면서 무슨 청소년 교화를 하느냐며 당장 담배를 끊든지, 아니면 나가라는 불같은 성화가 계속되었다. 할 일 없어 주리가 틀리는 것들이나 늙어서 심심해지면 피우는 것이 담배인데, 출가 수행하는 놈이 생돈 없애며 건강 해치고 냄새 피우는 짓을 무엇 때문에 하느냐는 것이다. 그 도반도 만만치가 않았다. 아직은 끊을 생각이 없으며 또한 그일 때문에 나갈 생각도 없다고 맞섰다.

급기야 담배문제로 대중공사를 하게되었다. 대중공사란 스님들이 전래적으로 하는 독특한 의사결정 방법이다. 원칙적인 법이나 계율이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고 현재적 상황에서 대중에 미치는 영향력의 방향성이 의사결정에 결정적으로 흔히 작용하게된다. 즉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서 원칙적인 법이나 윤리관보다도 훨씬 더 강도 높은 결정을 할 수도 있고,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결정을 할 수도 있다.

담배문제로 대중공사를 하게된 우리는 몇 시간동안을 옥신각신했다. 담배를 피우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수련원 설립과는 무관하다, 그렇지만 이로 인하여 주요역할을 하는 대중이 빠지게되면 본래 목적한 우리의 취지에 큰 차질이 생기므로 도반스님을 이 상황에서 내보내서도 안 된다, 그러므로 전체대중들이 며칠 동안만 담배를 다 같이 피우자는 제안이 나왔다. 그러다보면 더 이상 담배 피우는 것에 대하여 주지스님께서도 탓하지 안 할 것이고 이 문제는 개인문제로 돌아갈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대중공사의 결론은 며칠 동안만 모든 대중이 담배를 피우기로 결정 났다. 소위 무모한 집단 투쟁이었다. 스님께서는 그날 이후부터 더이상 탓하지 않으셨다. 그 대신 오는 신도들에게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주로 잔머리를 많이 써야하기 때문에 담배를 피워야한다, 멍해진 머리를 순간적으로 돌리게 하는 각성효과가 확실히 있다, 우리 절 젊은 스님들도 모두 담배를 피우면서부터 머리가 비상해졌다고 했다. 우리는 완전한 KO패를 당했다.

그 무렵 신흥사사태로 인해 종단이 걷잡을 수 없는 내홍에 빠져 비상종단이 출범하게됐다. 그 여파로 우리도 불가피하게 김용사에서 나오게되었다. 3년 동안 대중들이 땀으로 일구던 수련원설립의 꿈도 함께 깨졌다.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으면 사망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스님께서는 그때 당신의 부덕으로 모처럼 젊은 원력들이 결사하여 종단적으로나 사회적으로도 좋은 결실을 맺을 기회를 잃었다며 지금도 아쉬워하신다. 수행자는 세인들의 귀감이 되어야하기 때문에 항상 단정하고 깔끔해야한다고 늘 강조하시는 스님. 누군가 병이 나서 누워있는 것을 보면 “거저 신심 없고 어름한 것들이 병나지야 신심있고 부지런하면 어드래서 병날 시간이 있갔어”하고, 말로는 매몰차게 하면서도 실제로는 속 깊은 인정으로 감싸주시는 분이다.

■정취암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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