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자원봉사 센터’ 운영
생명나누기 실천교육 20년
인간은 태어난 후 처음에는 가정에서 교육을 받고, 다음에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며 그후에는 사회, 즉 직장을 통하여 교육을 받는다. 가정에서의 교육은 최소단위의 사회구성체인 가족을 알게 한다. 가족관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알게 하는 이 기초적인 훈련이야말로 인간이 사회적 공동체인 것을 최초로 인식하게 하는 교육으로, 전 생애를 통하여 가장 중요한 교육과정이다. 학교는 열린사회로 통하는 문과 같다. 그 문을 통하여 사회의 성격과 구조와 규모 등을 스스로 가름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시키는 곳이다. 힘의 논리에 의해 지배되는 동물들의 세계는 사회적 규범과 질서의 기준이 힘이다. 그러나 인간들의 사회적 규범과 질서의 기준은 나눔이다. 무엇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하는 원칙이 그 사회의 가치기준이 되고 예(禮)와 의(義)로 정의된다. 인간은 이 나눔의 실천을 종교와 교육을 통하여 실현한다. 그렇다면 종교의 역할은 가정과 학교와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무엇이어야 할까?
종실스님은 대전광역시에서 117개의 중, 고등학교 재학생 20만 명을 대상으로 ‘청소년 자원봉사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전에는 복지관과 어린이집을 오랫동안 운영하다가 그 일은 후배들에게 맡겨 운영하게 하고 지금은 청소년 자원봉사 센터 운영에 전념하고 있다. 또 20년 가까이 청소년 법회를 통하여 그들을 만나고 고민을 함께 들어주며, 그들의 진로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어머니처럼 따뜻한 가슴으로 거두어주고 있는 스님이다.
6~7년 전에 내가 중앙승가대학에 재직하고 있을 때다. 어느 날 종실스님이 나를 찾아 학교를 방문했다. 조금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나와는 승가대학의 1년 선 후배 사이라는 것 외에는 나를 찾아 특별히 학교에까지 올만큼 왕래하며 지내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졸업 후 대전에서 청소년 지도를 열심히 하며 산다는 것을 아는 정도였다. 서로 인사 후에 무슨 용무로 왔느냐고 물었더니 대답인즉 나를 놀라게 했다. 보기에는 여리고 순하게 생긴 스님인데 어디에서 그런 열정과 염원이 솟아나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승가대학 졸업 사은회 때 수줍어 얼굴이 홍시처럼 붉어진 채 다소곳이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부르던 종실스님이 아니었다.
내일의 세계는 오늘의 청소년이 주인이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팔만 사천 경전 속의 가르침이 오늘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있다면 어느 정도의 비중으로 그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지 생각해 본적 있느냐, 만약 아무런 역할도 못하고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다면 오늘의 한국불교는 밥 얻어먹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 밖에 안 된다. 또 부처님 가르침이 아무리 좋다 해도 지금처럼 그들과 무관하다면 결국 불교는 존재이유를 상실할 수 밖에 없다. 다른 종교나 사회 단체들은 청소년교육에 대한 투자와 연구를 아낌없이 하여 프로그램 개발에서부터 자원 확보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데 비해 불교계는 아직도 어떤 유행가 가수가 부른 노랫말처럼 관망자적인 입장에서 “그저 바라만 보고, 그저 눈치만 보고 있다”며 안타까워 했다. 그러면서 중앙승가대에도 청소년관련 학과를 꼭 개설해주기를 거듭 거듭 간청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 후 학교에서 청소년관련 학과 개설에 대한 논의도 구체적으로 못해보고 사퇴하고 나왔다.
지금 종실스님은 ‘청소년 자원봉사 센터’를 통하여 청소년들에게 보현행의 실천을 가르치고 있다. 보현행이란 <화엄경>에 나오는 보현보살의 열가지 원력을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첫째,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경하는 것. 둘째, 부처님을 찬탄하는 것. 셋째, 널리 공양하는 것. 넷째, 업장을 참회하는 것. 다섯째, 남이 짓는 공덕을 기뻐하는 것. 여섯째, 설법하여 주시기를 청하는 것. 일곱째, 부처님께 이 세상에 오래 계시기를 청하는 것. 여덟째, 항상 부처님을 따라 배우는 것. 아홉째, 항상 중생을 수순하는 것. 열째, 지은바 모든 공덕을 널리 회향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후 45년간 설하신 설법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연기법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인연법이다. 연기법과 인연법을 쉬운 말로 하면 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상호관계 속에서 더불어 존재한다는 말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이다. 어떻게, 더불어 살 것인가를 좀더 구체화한 것이 보현행이다. 종실스님이 운영하는 청소년 자원봉사 센터에는 특정한 종교나 사회적 관계에 상관없이 모든 대상의 학생들이 찾아오고 있다. 종실스님은 그들에게 종교목적의 교육이 아닌 생명나누기 실천교육을 하고 있다.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아 느끼게 하여 소중한 생명들이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게 하고 자기희생과 봉사를 통하여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게 하는 보현보살 같은 스님이다.
■정취암 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