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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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조스님 (끝)
애민중생 사유와 실천
무슨 일이든 진지하게

혜조스님은 성이 구씨이다. 그래서 우스개 말로 ‘119스님’이라고 한다. ‘구해조’라고 발음이 되기 때문이다. 혜조스님은 비구니 스님들 중에서 아마도 가장 뜨거운 피와 절절한 가슴으로 사는 스님일 것이다. 중앙승가대는 80년대 불교권내에서 군부독재 타도와 민주화 투쟁을 가장 극렬하게 한 곳이다. 당시 혜조스님은 중앙승가대에 재학하면서 민주화투쟁의 중심에 서 있었다. 12·12 군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5공 세력은 5·18 광주민주화 투쟁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그해 10월에는 불순세력과 부패세력 색출이라는 미명하에 불교계를 무참하게 짓밟으며 교계 지도자들을 무더기로 삼청교육대에 보냈다. 감히 기성 승단이 숨도 크게 못 쉴 때 중앙승가대의 학인과 동문들은 과감히 떨치고 일어나 그들과 맞서 온몸으로 투쟁했다. 최루탄을 소낙비 퍼붓듯 쏘아도 도망가지 않고 앞으로 전진했다. 2만명 고대생들이 하는 데모보다 2백명 중앙승가대 스님들이 하는 데모가 더 위협적이라고 하던 당시 성북경찰서 관계자들의 말을 통해 보더라도 그 때의 데모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혜조스님이 그렇다고 맨날 데모만 하고 다녔다는 것은 아니다. 그가 인식하는 사회와 그가 인식하는 역사와 문화가 그로 하여금 산속에 은거하며 안빈낙도를 즐겨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어느 해인가 강화도 전등사에서 기도를 함께 한 적이 있다. 그가 하는 기도는 그냥 보통의 기도가 아니었다. 피를 토하듯 절절하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가슴에서 무엇인가 치밀어 오르는 한을 느끼게 했다. 그것이 그가 업덩이처럼 안고 있는 애민중생(愛愍衆生)하는 모습이었다. 한번은 혜조스님네 절에 갔더니 보리꺼스레기 같이 앙상한 눈먼 고양이 새끼와 한쪽 다리가 없는 비루먹은 강아지를 돌보고 있었다. 어디에서 이런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는 중생들을 입양해 왔느냐고 물었더니 길을 가다가 보니 누가 버렸는지 비에 젖어 떨고 있는 모습이 하도 안스러워서 주워왔노라고 했다. 잘 생기고 보기 좋은 애들은 아무라도 탐을 내지만 이 애들은 누구도 돌보아주지 않을 것이니 내가 지금 이들을 거두어주지 않으면 구더기 밥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하면서 오늘 내가 이들을 만난 것을 보아 전생에 이들에게 진 빚이 많은가 보다며 밝게 웃었다. 이 천애의 장애 고양이와 강아지를 사람과 마찬가지로 연민의 마음으로 돌보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민중들의 애환과 절규를 얼마나 통렬한 마음으로 함께 고뇌하는지 또한 느낄 수 있었다.

평소 그는 작은 일일지라도 건성으로 대하지 않고 매우 진지하다. 그 사안이 생존권과 관계될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며칠이 걸리더라도 토론하고 검증하며 편견에 치우침이 없이 보다더 근본적인 해결 방법을 찾으려고 애쓴다. 94년 개혁종단의 출범과 더불어 중앙승가대학 발전계획의 일환으로 김포로 학사이전 문제가 큰 이슈가 되었다. 그에 따른 제반 문제에 관한 방법 모색을 위하여 당시 학교 기획실장이던 금정스님과 함께 며칠 밤낮동안 격론을 한 적이 많았다. 혜조스님이 그때 보여주었던 진지함과 논리성에 대하여는 다들 두 손을 들고는 했다. 80년대 후반, 스님과 함께 2년여간 경제사상사와 정치사, 문화사 등을 공부한 적이 있었다. 공부에 대한 열정과 논리적이고 거침없는 표현의지는 함께 공부하던 사람들을 매번 놀라게 했다.

종교가 중생들의 귀의처가 되고 안식처가 되어야 할 터인데, 오히려 중생들을 불안하게 하고 또 그들에게 박탈감을 안겨주는 행위를 부끄럼없이 하는 것은 오탁악세를 앞장서서 조장하는 것과 같다, 현실을 살아가는 대다수의 민중들이 얼마나 고달픈 삶을 사는지 알아야 한다, 그런 것을 쉬운 말로 자기가 지은 업이니까 자기가 받는다는 식의 단순사고는 종교인으로서뿐 아니라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동시대인으로서의 존재 가치마저도 없다고 항상 혜조스님은 역설한다. 민주화 투쟁과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것은 운동단체에 소속된 사람들만의 몫이 아니다, 이 시대에서는 그것이 우리의 삶을 결정짓는 가장 큰 이유가 되기 때문에 개인에서부터 사회와 국가에 이르기까지 민주화가 되어야 한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민주화는 연기적 공생관계를 말한다며 베푸는 사회와 나누는 사회가 가장 이상적인 민주사회라고 스님은 말하곤 한다. 한편 스님은 매우 섬세하고 치밀한 자기사유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경기도당 살풀이춤의 인간문화재였던 故 김숙자 선생의 전수생이다. 김선생이 생전에 매우 안타까워했던 것도 혜조스님이 예인으로서의 끼와 좋은 재능을 타고났음에도 스님이기 때문에 전념해서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가 살풀이춤을 절절한 심정으로 출 수 있는 것도 중생들의 고뇌와 아픔을 가슴으로 느끼는 애민중생의 마음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스님이 바라는 사회, 염원하는 세계는 바로 불국정토의 세계이다.

■정취암 한주
2001-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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