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웃음 아름다웠던 사람
사람을 만나는 일이 때로는 전광석화처럼 빠를지라도 그 짧은 해후가 빗발처럼 깊이 스미는 인연이 있다. 오래도록 삶의 언저리에 남아 지워지지 않는 그런 인연 말이다. 더군다나 그 사람이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 그 인연은 애달프고 가슴 아리다.
혜우스님을 만난 것은 강원을 졸업하고 해인사 선원에서 첫 철을 지낼 때다. 그 때 나는 학인 딱지를 막 떼고 선원 문턱에 들어선 초참(初參)선객이었으므로 여러 가지로 수선(修禪)에 서툰 점이 많았다. 그 시절에 본 혜우스님은 법랍은 나와 비슷했지만 승행(僧行)은 군대의 선임하사처럼 빈틈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엔 선원의 가풍을 어지간히 부러워했던 것 같다. 안거가 시작되면 구름처럼 산중에 모이는 선객들의 질서도 좋았고 무엇보다 칼날처럼 번득이는 형형한 눈빛이 부러웠다. 호랑이와 한판 승부를 앞둔 포수의 눈빛같이 살아 있었다. 어찌 보면 한 철 정진은 화두 타파를 위해 목숨을 거는 전쟁터와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눈빛이 살아있다는 것은 수행자의 기상이 올곧게 서 있다는 것과 통한다.
혜우스님이 바로 그런 수행자였다. 나는 첫눈에 그의 눈빛에 반해버리고 말았다. 깊고 고요한 눈빛을 보면 금새 그 사람에게 동화되어 버리듯 나 또한 그의 사상에 쉽게 동화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특히 혜우스님은 눈웃음이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그 웃음이 그를 더 돋보이게 만든 배경이 된 것일까. 같은 수행자가 보아도 그는 늘 훤칠하고 기품이 있었다. 결코 요란하지 않는 수행자의 조촐한 멋을 지니고 있었다. 수행자의 멋은 옷의 치장이 아니라 의식의 전환에서 오는 것임을 그를 통해 비로소 알았다.
하루는 빨래를 말린 후 손질을 하는데 자세히 보니 주머니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주머니가 달려 있었지만 주머니 입을 실로 기워서 쓰지 못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수행자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도 안되고 주머니에 물건을 넣는 것도 아니란다. 그말을 듣는 순간 내 의식 속으로 섬광이 지나는 것 같았다. 무소유 정신 때문이 아니었다. 그렇게 자신을 점검하는 엄숙한 태도가 내게는 어떤 가르침이었다. 그 날 진지하게 말하던 그의 표정이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눈에 선하다. 그는 또 수염이 많았다. 그래서 별명이 ‘산적’이다. 보름에 한번씩 삭발을 하곤 했는데 삭발날이 가까워오면 그의 얼굴은 수염으로 가득 찬다. 양쪽 볼에까지 수염이 자라면 그는 도적떼를 몰고 온 산적과 흡사하였다. 그런 그가 삭발날 깨끗이 수염을 깎고 나면 잘생긴 ‘기생오라비’가 된다. 그를 볼 때마다 수행자는 삭발을 깔끔히 하여야 인물이 제 몫을 하는 것을 느끼겠다. 삭발한 날 밤이면 우리는 뒷산 소나무 숲으로 간다. 소나무 가지에 걸려 있는 보름달을 보고 그는 노래 한 곡을 부른다. 달빛을 타고 그의 목소리는 어느새 소나타가 되어 밤하늘에 퍼진다. 그는 이처럼 때로는 수행자의 모습으로, 때로는 인간적인 모습으로 내 곁에 있었다. 혜우스님은 집안의 3대 독자라고 들었다. 어릴 때부터 집안에 스님들이 자주 찾아와서 법문을 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아마 노모의 불심도 대단했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귀하게 키우던 아들의 출가도 반대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아들이 출가하여 공부하는 일이 집안의 대를 잇는 일보다 중요하다고 가르쳤단다. 그래서 그는 출가 후 강원 공부 대신 선원에서 그렇게 마음의 실체를 찾아 피나는 정진을 하였는지도 모른다. 안거를 마치고 그가 내 사는 곳으로 찾아온 적이 있다. 하룻밤 같이 자면서 목이 말랐는지 새벽녘에 냉장고 문을 열고 무언가 벌컥벌컥 마시는 게 아닌가. 마침 그 날은 냉장고에 날짜 지난 우유 밖에 없었는데 어쩌나 싶었다. 잠시 후 그는 배를 부여잡고 방문을 박차고 나갔다. 새벽녘부터 동틀 때까지 해우소를 몇 번이나 드나들었다. 그 일이 있은 후 몇 달 뒤 나는 그의 부음을 들었다. 그 때의 그 우유가 자꾸 목에 걸렸다.
춤추는 이는 떠나버렸으나 춤만이 남아 있고 노래하는 이는 떠나버렸으나 노래만이 남아 있다는 말처럼 혜우스님은 불의의 사고로 훌쩍 우리 곁을 떠나버렸으나 미소만은 지금까지 내 가슴에 남아 있다. 한 수행자가 남긴 삶의 향기는 남은 자에게는 두고두고 나침반이 된다. 그 어떤 어록보다 간절함이 묻어 있는 가르침으로 다시 살아난다.
혜우스님을 떠올리면, 사람과의 관계는 얼마나 알고 지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알고 지내느냐의 문제가 더 중요한 일인 것을 알겠다.
이번 호부터 3개월간 ‘스님이야기’를 연재하는 현진스님은 1983년 이두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으며 해인사 강원과 송광사 율원을 졸업하고 해인사 등 선원에서 정진하였다. 수필집으로 <삭발하는 날>과 <두번째 출가>를 펴냈다. 현재 월간 ‘해인’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