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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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스님의 스님이야기】 지묵스님
여행담 등 이야기보따리
처음 만나는 이 금새 웃게

지묵스님은 인상이 참 푸근하다. 마치 집안의 큰 형님 같은 느낌이 든다.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사람처럼 어색하지 않은 그런 스님이다. 이런 느낌을 친화력이라고 표현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스님은 처음 만나는 사람일지라도 금새 스스럼없이 웃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계시다. 송광사에서 살던 시절 지묵스님은 교무소임을 맡고 계셨는데 가끔 율원채로 쓰이던 부도전에 들리시곤 하셨다. 차 한잔 나누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스님의 말씀에 빠져들었던 기억이 난다. 스님의 언변은 시냇물이다. 막힘이 없이 좔좔 흐른다는 뜻이다. 스님의 입을 통해 영화 한편이 상영되기도 하고, 책 한 권이 그냥 읽혀진다. 그런데 극장에서 보는 것보다 더 흥미진진하고 책상에서 읽는 것보다 더 재미있다. 그래서 스님과 앉아 있으면 시간의 개념을 잊는다. 한번은 아침부터 시작된 이야기가 점심 공양 후까지 이어진 적도 있었다. 그 당시 선방스님들에게도 지묵스님의 지대방 입담은 이미 소문이 나 있을 정도였다. 지묵스님이 차 한잔 나누려고 선원 지대방 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모두들 자리를 슬슬 피한다고 한다. 지묵스님의 이야기에 빠져들면 다른 일을 미루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말씀을 재미나고 맛깔스럽게 하시는 것이다. 법정스님과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틀을 이야기 했다는, 전설같은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다. 아마 이러한 스님의 입담은 스님 특유의 성격도 있지만 무엇보다 제방 선원에서 수행한 이력과 풍부한 여행의 경험 때문이다. 출가하기 전 무전여행 하던 시절과 엿장수 시절만 해도 하루가 모자란다. 그리고 각 사찰에 얽힌 설화와 외국 여행담까지 풀어놓으면 한 달도 빠듯하다. 스님과 마주 보고 있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천일야화(千日夜話)의 주인공 세헤라자데 만큼이나 이야기 보따리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에 놀란다. 조사어록 구절이 줄줄 나오는가 하면, 동네 약장수 실력을 능가하는 의학정보도 쏟아져 나온다. 한마디로 움직이는 백과사전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는 듣고나면 귓등을 스치고 마는 그런 잡담이 아니고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소참법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마 한여름 밤의 별빛아래에서 스님 이야기를 듣는다면 더 달콤하게 가슴에 남을지도 모른다.

스님의 글 또한 이러한 성품을 닮아 이야기하듯 막힘 없이 이어진다. 문장 하나 하나가 마치 사람을 앞에 두고 하는 것 같다. 스님이 처음으로 쓰신 수상집 <죽비 깎는 아침>을 읽을 때도 그랬지만 스님 글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단숨에 다 읽어버리게 하는, 흡인력 있는 그 문체를 늘 배우고 싶다. ‘뻔뻔스러워야 글을 쓸 수 있다’는 스님의 지론은 내게도 하나의 지침이며 교훈이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억지로 글을 짜내지 말고 솔직 담백하게 쓰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 쓰는 일로 따지자면 지묵스님은 내게 있어서 스승인 셈이다.

송광사에서 스님의 수련회 일을 잠깐 도운 적이 있다. 수련회에 관해서는 ‘박사학위’를 받고도 남는 분이다. 사자루에서 스님 손을 거쳐간 수련생들만 모아도 수천명은 족히 될 것이다. 한번은 수련생 한 사람이 입선 시간보다 5분 늦게 들어온 적이 있었다. 이 때 스님은 사정 봐주지 않고 그 자리에서 퇴방 조치를 내리는 것이었다. 그 수련생은 눈물을 흘리며 밖으로 나갔고 나머지 수련생들은 좌선 시간으로 이어졌다. 잠시 후 스님은 내 곁으로 오셔서는 방금 나간 수련생을 붙들라고 귓속말로 하시는 게 아닌가. 결국 그 수련생은 율주이셨던 보성 큰스님이 지묵스님에게 공개적으로 양해를 구하는 방식으로 다시 수련에 동참할 수 있었다. 그 날 스님의 그런 행동으로 느슨해진 수련회 분위기가 다시 팽팽해졌다. 한 사람의 수련생에게도 인정을 잃지 않으면서 미덕을 보인 것이다. 밖으로는 추상같지만 안으로는 춘풍(春風)이 흐르는 스님의 모습을 드러내 보인 대표적인 일화다. 수련생을 다루는 이러한 스님의 솜씨 때문에 송광사 수련회는 엄격한 질서와 아울러 인정과 감동이 넘치는 수련회로 소문이 나 있다.

독살이 토굴에 안주할 나이가 되셨는데도 대중생활을 고집하시는 스님의 수행자세는 후배들에게 늘 귀감이 된다. 한 곳에 오래 안주하는 생활을 거부하시는 것 같다. 그래서 홍길동처럼 이 절에서 저 절로, 영국에서 인도로, 또 중국에서 티베트로, 종횡무진 수행길에 오르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일전에 중국선종을 답사하고 쓰신 <달마와 혜능> 책을 보내주셨는데 인사도 올리지 못했다. 글을 통해 스님이 어디 계신지 소식을 듣기 때문에 한 집에 사는 것처럼 언제나 가깝게 느껴진다. 최근에는 불교방송에서도 스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반갑긴 한데 얼마나 하실런지 궁금하다. 또 바람처럼 어디론가 훌쩍 먼 곳으로 떠날지 모르니까 말이다. ■월간 ‘해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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