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 종합 > 기사보기
【현진스님의 스님이야기】일선스님
해제-결제 따로없는 수행
승복 무릎부분 겹겹 헝겊

도반은 수행길의 평생 벗이다. 그래서 출가 수행자에게는 이 도반이라는 말이 가장 정겹고 풋풋하다. 아마 스님네에게 도반이 없다면 수행의 길은 외롭고 힘들 것이다. 수행길에서 도반은 탁마(琢磨)의 개념이 더 크다. 모난 돌이 정을 만나면 반들반들 쪼아지듯 도반은 서로 경책하고 점검하는 대상이라는 뜻이다. 도반을 통해 자신의 허물도 알 수 있고 모난 성격도 고쳐진다. 그래서 옛 어른들이 도반을 잘 만나는 일은 공부의 반을 성취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하셨나 보다. 아닌게 아니라 이러한 도반의 은덕으로 들쭉날쭉 하던 내 성격도 둥글둥글한 조약돌이 다 된 것 같다. 많은 도반들 가운데 늘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스님이 희양산 봉암사에 살고 있다. 그 스님의 법명은 일선(日禪)이다. 일선 스님을 만나면 도반의 인연이 된 것이 새삼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그는 수행자로서 모범을 보이는 일등 수좌다. ‘걸어다니는 수행자’나 다름없다. 밥 먹는 일부터 잠자는 일까지 그의 행동은 수행인의 자세와 계율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일선스님은 절집에 들어와서 강원 시절 빼고는 줄곧 선방에서만 정진하고 있다. 스님에게는 해제와 결제가 따로 없다. 안거가 끝나도 일주문을 나서지 않기 때문에 그를 도심에서 만나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그는 한 곳에서 정진하면 3년 결사를 한다. 지금까지 문경 봉암사, 김천 수도암, 지리산 칠불암에서 3년씩 공부하고 올해부터 다시 봉암사에서 정진하고 있다. 알려진 것처럼 봉암사는 상선원(上禪院)과 하선원(下禪院)으로 나누어 한 철 살림을 산다. 하루 12시간 이상 정진하는 수좌들은 상선원의 선실에 앉게 되는데 일선 스님은 매 철마다 이 선실의 터줏대감이다. 어느 해는 공부 잘하는 수좌들이 모인 덕분에 잠을 더 줄이고 한 달 동안 가행 정진을 했다고 들었다. 어느 해 여름 봉암사에서 그를 만났을 때 마애불로 오르는 길에서 이렇게 말했다.

“갈수록 참선이 힘듭니다. 10년 이상 이 수행을 했으니 육체 조복은 되었는데 번뇌 조복이 영 되질 않습니다. 청산에 앉았어도 구름은 걷히지 않는 것이지요”좌복 위에서 허리를 세우고 앉아 있는 일은 하루 종일 하여도 꿈쩍하지 않을 수 있지만 오히려 그러한 육체적 편안함이 공부에 방해가 되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화두에 매달리지 않고 고요한 상태에 빠지는 일종의 무기(無記)의 현상이 나타난다는 그의 표현은 실참(實參)의 수행에서만 가능한 목소리였다. 그러한 경계가 어디 이론과 지식으로만 체험되는 부분이던가. 하루 6시간만 앉아 있어도 어깨가 굳는 내 처지로서는 육체 조복(調伏)조차도 깜깜한 단계다. 일선 스님은 이미 그 단계를 넘고 있었다. 고인(古人)의 말을 빌리자면 이제 수레를 끄는 소의 고삐를 잡는 일만 남은 것 같다.

일선 스님의 수행 과정은 아무래도 우행(牛行)에 가깝다. 서두르지도 급하지도 않다. 천천히 신중하게 한 발 한 발 나아간다. 깨달음은 순간이지만 그 과정은 길고 먼 고행 길임을 그의 안광(眼光)을 보면 실감한다. 해인사 백련암으로 출가한 스님 중에 강원에서 이력을 마친 이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입적하신 성철스님의 선풍(禪風)과 가르침 때문이다. 일선스님이 쌍계사 선원에 살고 있을 때 하루는 어느 암자에 들렀는데 그 암자에 계신 노스님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젊은 수좌! 나 또한 평생 납자의 길을 걸어오면서 아쉬움은 없지만 딱 한 가지 후회되는 일이 있네. 그 한 가지가 강원 공부를 못해본 것이요. 참선 공부는 평생의 일이지만 강원 공부는 시기가 주어지는 일이네. 참선은 너무 서둘지 말고 평생을 두고 차근차근 하시게”그 노스님의 이 한마디가 큰 가르침이 되었기 때문에 그가 강원에서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강원 시절 몸을 뒤척이다 잠을 깨보면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실루엣 물체가 보일 때가 많았다. 바로 일선스님이 잠자지 않고 이불을 방석 삼아 정진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매일 한차례 108 참회를 빼놓지 않고 올린다. 그가 입고 있는 승복을 보면 무릎 부분은 헝겊으로 잇대어져 있다. 절을 많이 하기 때문에 그 부분만 닳아지는 까닭이다. 게으름이 없는 수행의 한 단면이다.

일선스님은 도반이기 보다는 존경하는 스승이라 말해야 옳을 것 같다. 강원에서 같이 지냈던 어떤 스님은 삭발날이 되면 일선스님 몰래 욕실에서 그의 고무신을 씻어 놓았다고 한다. 그 정도로 도반들에게도 존경받는 그런 스님이다. 일선스님을 보면 진정한 수행은 입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보여주는 일임을 거듭 깨닫는다. 그는 도반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는 또 다른 선지식이다.

■월간 ‘해인’ 편집위원

2001-07-18
 
 
   
   
2024. 11.23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