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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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스님의 스님이야기】수보스님
부지런-절약-깨끗-절구통
한결같은 수행자의 참모습

수보스님을 아는 이들은 모두 그를 ‘하심(下心)보살’이라고 부른다. 자기를 낮추는 자세가 누운 풀처럼 한결 같기 때문이다. 하심의 자세는 아만과 아집이 사라질 때 나타나는 행동이므로 어떤 힘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비굴한 태도와는 그 의미가 다르다. 특히 그는 화를 잘 내지 않는 것으로 하심을 보여준다. 그를 알고 지낸 지난 10여년 동안 누구와 다투는 일을 좀처럼 보지 못했다. 옆에서 지켜보면 분명 화를 낼 상황인데도 목소리를 높이거나 얼굴을 찌푸리지 않는다. 한마디로 경계를 잘 다스리는 힘이 그에게는 있다.

바다는 잔잔하지만 바람을 만나면 파도를 일으키는 것처럼, 사람 역시 어떤 상황을 만나지 않았을 때는 일상의 마음을 잘 다스린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에 거슬리는 상황을 만나면 통제하지 못하고 그 상황에 끌려가는 게 대부분이다. 수행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경계’라고 말하는데 이 같은 경계는 알고보면 일종의 ‘거짓 감정’ 같은 것이다. 상황이 사라지면 마음도 사라지는 까닭이다. 그래서 수행자에게 이러한 경계는 자신의 수행을 시험해보는 복병과 같은 것이다. 수보스님이 화를 잘 내지 않는 것은 그러한 상황에 쉽게 끌리지 않고 평상의 마음을 잘 붙들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김천 수도암에서 정진할 때의 일이다. 장대같은 비가 쏟아지는 여름날 먼 곳에서 수보스님을 찾아온 손님이 있었다. 20대의 여인이었는데 빗속을 걸어 힘들게 찾아왔다고 했다. 그는 우중의 그 손님을 일주문 앞에서 돌려보내고 선실로 돌아왔다. 어둑어둑하던 그 시각에 다시 산길을 내려가게 만든 그의 인정이 너무 매몰찬 것 같았다. 한참 후에 안 일지만, 그 손님에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자신에게 더 엄격해지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다는 말을 듣고 인간적인 그의 고뇌를 알 수 있었다. 젊은 시절에 나타날 수 있는 색정의 마장을 그는 그렇게 수행자의 비정한 모습으로 이겨내고 있었던 것이다. 또 수보 스님은 참 부지런한 사람이다. 기가 질릴 만큼 부지런하다. 새벽부터 잠들 때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무슨 일이건 두닥거린다. 그가 머무는 부산의 절에 가보면 방은 물론이고 마당 곳곳에도 티끌 하나 없다. 아침 공양을 하기 전에 반드시 청소를 하는데 마당이 깨끗한데도 비질을 한다. 게으름을 피울 수 있는 독살이 처소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사는 도량의 가풍은 늘 긴장이 살아있는 총림의 대중살이 같다. 그리고 절약정신이 몸에 배어 있다. 전등 하나라도 환하게 밝히지 않고 꼭 필요한 등만 켠다. 가끔 늦은 밤 그의 절을 방문하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캄캄하다. 법당 앞 석등의 불빛이 칠흑의 어둠을 밝혀주고 있지만 이 또한 보름달이 환한 날이면 켜지 않는다. 이러한 태도를 보면 그가 마치 꼬장꼬장한 노스님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수행자세는 아마도 몇 년 전 입적하신 그의 은사 문성 노스님의 덕화 때문일 것이다. 100세를 사시면서 하루도 예불과 울력을 거르지 않았던 노(老) 스승의 가르침이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이다. 학인 시절 어쩌다 그의 절에 걸망을 푸는 날이면 노스님의 경 읽는 소리에 새벽잠을 이루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단 하루도 수행자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았던 노스님의 일과에 견주면 수보스님의 이런 행동은 게으른 일상인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이 절에서는 목침을 쓰고 있다. 편안한 베개를 쓰면 꿈이 많아지고 마(魔)가 치성한다는 부처님 가르침 때문에 옛부터 절집에서는 딱딱한 목침이 사용되었으나 요즘은 솜 베개가 많아지는 세태다. 목침을 베고 잠든 그를 보면 한 스승이 남기는 사상과 가풍이 후학에게는 얼마나 중요한 수행의 근원이 되는지를 알 수 있다.

수보스님이 목욕을 좋아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만큼 깔끔한 성격이다. 밥을 먹다 음식물이라도 옷에 묻으면 곧바로 빨래를 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목욕도 자주 한다. 목욕 시설이 좋은 선방에서 살게 되면 하루에 몇 번씩 몸을 씻는다. 그래서 그가 안보이면 욕실에 가면 만날 수 있다는 우스개소리도 있다. 그의 때밀이 실력은 정평이 나 있기도 하다. 같이 정진하는 스님들은 그래서 그와 함께 목욕하는 걸 좋아한다. 아주 시원하게 때를 밀어준다. 마치 아버지가 아들 목욕시키듯 정성을 다하는 그에게 한번씩 등을 맡기고 있으면 인간적인 정을 듬뿍 느끼게 된다.

수보 스님은 안거철마다 빼놓지 않고 선방에 나가 공부한다. 평소의 그 부지런함이 선방에 앉으면 화두에 매진하는 일로 바뀐다. 절구통처럼 앉아있는 그를 생각하면 수행하는 일이 따로 정해진 일과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밥 먹는 일부터 목욕하는 일까지 그에게는 온통 수행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스님은 체육복을 입더라도 수행자다. 무엇을 하더라도 수행자의 본분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가 바로 수보스님이다. ■월간 ‘해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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