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약속 엄격한 수행자
나는 자장면을 먹을 때마다 상법스님이 떠오른다. 그와 얽힌 일화 한 토막이 지금까지 풋풋한 추억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학인 때는 김치 한 조각도 맛있는 그런 시절이다. 그래서 국수나 라면 같은 밀가루 음식은 별식에 가까웠다. 더군다나 울력이 많았던 초년 학인들 에게는 차담이 모자랄 때가 더러 있었다.
그 시절 상법스님과 나는 휴식 시간을 틈타 자장면을 먹기 위해 사하촌(寺下村)으로 몰래 내려가곤 했다. 무슨 작전을 감행하듯 은밀하게 치르는 우리들만의 스릴과 재미가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상강례(일종의 조례 같은 것)시간에 상법스님의 이름이 공개되면서 이 일이 대중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 때 상법스님은 해인사 안내소임이었고, 윗반스님을 모시고 있던 아랫반이었는데 전날에 자장면을 먹으면서 양파를 너무 많이 먹은 게 탈이었던 모양이다. 자극적인 양파 냄새 때문에 한 방에서 지내던 윗반 스님에게 들키게 되었고 다음날 아침 상강례 시간에 상법스님의 허물이 대중적으로 지적된 것이다.
그 때 나도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분명 상법스님과 행동을 같이 했던 내 이름을 부르게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법스님이 “어제 행동은 저 혼자 하였습니다” 하고 큰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 일로 인해 상법스님은 법당에서 일주일간 3000배 참회를 하였다. 그 날 당당하게 일어나서 허물을 대중에게 밝히지 못한 내 자신이 부끄럽고, 이 점이 지금까지 그에게 남아 있는 마음의 빚이다.
그 시절 우리는 왜 그리 자장면을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합천읍까지 택시를 타고 가서 몇 그릇 후딱 비우고 돌아오는 날은, 음식값보다 택시 요금이 몇 곱절 많이 든다. 그래도 그 일을 즐겨 했던 것은 자장면 한 그릇의 맛보다는, 통제된 병영에서 벗어나는 병졸들의 그런 기분을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은 지리산에서 수행하고 있는 상법스님을 보게 되면 운동 선수를 만나는 것처럼 건강하고 단단함이 느껴진다. 산을 오를 때나 공을 찰 때는 마치 20대 청년처럼 기운이 넘치고 체조를 할 때는 선수 못지 않게 유연한 동작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그의 체력은 운동을 좋아하는 타고난 성품 때문이다. 그래서 못하는 종목이 별로 없다. 검도와 태극권은 사범을 할 만큼의 실력이고 요가와 선 체조도 강사급이다.
특히 그는 등산을 즐겨 한다. 전문 산악인들도 상법 스님의 산 타는 실력에 놀란다. 지리산을 앞산처럼 누비고 다닐 정도로 그의 트레킹은 프로 수준이다. 아마 출가하지 않았다면 분명 운동 선수가 되었을 것이다. 운동은 수행자의 공부와 닮아 있다. 운동할 때의 집중력과 지구력은 화두 공부의 생리와 비슷하다. 운동으로 따진다면 수행 역시 장거리 코스에 가깝다. 그래서 상법스님은 운동을 수행 길의 공부 법으로 운용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가 함부로 주먹질하거나 힘 자랑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힘을 이용해 만용을 부리지도 않는다. 그것은 그 자신이 수행자라는 사실을 잊지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진정한 무인처럼 상법 스님은 자신을 다스리기 위해 운동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상법 스님에 견주어 보면 나는 정말 무딘 운동 신경을 가지고 있다. 해인사는 예나 지금이나 축구를 좋아하는 스님들이 많다. 본사로서는 유일하게 축구 전용 운동장을 갖추고 단오날은 산중 스님들이 축구 시합을 한다. 그래서 해인사 스님들의 축구 실력은 절 집에서는 1등이나 다름없다. 그 실력이 소문 나서, 어느 해는 월드컵 유치 기념으로 연예인 축구단과 스님들이 축구 시합을 벌여 화제가 된 적도 있다. 그 해인사에서 축구 시합을 할 때면 상법스님은 언제나 공격수 역할을 하면서 그라운드를 누비고 다닌다. 공을 잡으면 비호처럼 움직이는 그의 모습이 그때나 지금이나 부러운 건 마찬가지다.
한 때 나는 상법 스님의 운동 일과에 동참한 적이 있다. 새벽 예불을 마치고 절 뒷산까지 등산하는 일이었는데, 놀란 것은 이 일을 단 한번도 빼 먹는 일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우의를 입고, 눈이 오는 날에는 아이젠을 신발에 붙이고 산을 올랐다. 더러 쉬고 싶거나 늑장을 부리고 싶은 날도 있었지만 그 앞에서는 용납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 당시 그는 정말 지독한 교관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지내면서 그에게서 안일한 마음과 자세를 고칠 수 있었다. 자기 질서에 엄격하지 못하면 수행의 일상이 흔들린다는 사실을 그를 통해 배웠다. 든든한 둑도 손가락 만한 구멍이 무너지게 하듯이 마음의 틈도 작은 게으름에서 생긴다는 법문을 몸소 일러준 것이다. 내 몸이 한없이 나태해질 때마다 그가 살고 있는 지리산으로 떠나는 꿈을 꾼다.
■월간 ‘해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