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 종합 > 기사보기
【현진스님의 스님이야기】불굴스님(상)
“불같은 성격 안으로 돌리자”
오른손 세 손가락 연지공양

불굴(佛窟)스님의 지난 수행 일정은 참 드라마틱하다. 13살 어린 나이에 출가한 스님의 수행 길은 굽이굽이마다 진한 감동과 가르침이 살아 있다. 소리꾼은 한이 많아야 그 가슴에서 그 소리가 울린다고 했던가. 현재 세수 50세인 불굴스님도 어찌 보면 소리꾼 못지 않게 신산(辛酸)한 삶을 살아왔다. 그래서 스님의 수행 이력은 그 어떤 법문보다 잔잔하게 마음을 일깨운다. 불굴스님은 오른쪽 손가락 세 개가 없다. 손가락 세 마디가 닳아진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부처님께 연지(燃指)공양한 거룩한 훈장이다. 그 손가락 마디마디를 태운 스님의 구법(求法)정신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스님이 혈기왕성하던 20대 중반인 지난 80년대 초 연지를 하기까지의 사연은 마치 영화 속 이야기 같다.

20대 때 스님은 수행자로서의 기상이 펄펄 살아있었다. 마치 칼 같은 성격이었나 보다. 그래서 원칙에 벗어나거나 도리에 어긋난 일은 절대 용납하지 못해 늘 말썽이 많았던가 보다. 특히 법주사 강원에서 공부할 때는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고 한다. 도량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짧은 치마를 입고 오는 관광객들과 다투는 일이 자주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러한 성격 때문에 법주사에서 오래 살지 못하고 해인사 강원으로 가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해인사는 기상이 살아 있는 도량이다. 스님들 또한 개성이 강하고 성격이 불같다. 그래서 해인사에서는 스님들과 주먹다짐을 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함께 살았던 도반스님들의 말에 의하면, 정말 못 말리는 괴각(乖角)이었단다. 그러던 어느 날 오른손을 바라보던 스님이, “오른손이 악업을 짓고 주먹질을 하는 놈이니, 이 오른손의 힘을 죽여야 한다”고 결심하면서부터 자세가 확 달라지게 되었단다. 그 날부터 장경각에서 백일 기도를 시작하고 오른손의 힘으로 목탁만 칠 것을 서원했다. 오른손의 힘을 내부로 돌리자, 지난날의 행동에 대한 참회의 눈물이 흐르고 알 수 없는 신심이 일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백일 기도를 마치는 날 스님은 연지 공양을 올리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연지를 할 때는 반드시 스님들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연지를 하는 스님이 뜨거움을 참지 못해 기절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그러한 응급 상황에 대비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모기에 물려도 움찔하고, 손끝에 상처만 나도 통증을 느끼는 우리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살이 녹는 그 뜨거움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 그렇지만 수행을 하면서 환희심이 생기면 그 고통을 수행으로 승화시킨다고 한다. 그래서 수행자가 육신 일부를 소신(燒身)하는 일은 자기 학대가 아니라 공부의 확인인지도 모른다. 끝없이 집착하던 육신에서 자유로워졌다는 뜻일 것이다.

아무튼 불굴스님은 엄지와 약지만을 남기고 가운데 세 손가락에 헝겊을 칭칭 감고 기름을 부었다. 이 때 기름이 배어들도록 먹이는 일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살을 태우지 못하고 화상만 입는다고 한다. 불길이 빨리 빠지지 않는 알콜을 붓고 불을 붙이는 그 광경은 상상만 해도 가슴 뭉클하다. 불굴스님은 그 당시를 회상할 때마다 부처님의 가피가 있었다고 믿는다. 손가락이 타 들어가는 그 시간 동안 아무 고통이 없었다고 한다. 마치 화두를 붙들고 있을 때처럼 정신이 오롯하고 성성하였다고 하니까, 당시 스님의 신심이 어떠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때가 여름이었는데 그 부위가 곪거나 덧나지 않고 잘 아물었고, 화독(火毒) 또한 스며들지 않았다는 것도 불가사의하다. 흔히 연지를 하면 뼈는 남는다고 한다. 스님은 병원에서 살점만 타고남은 그 뼈를 톱으로 자를 때, 예쁘고 보기 좋게 해달라고 농담까지 하셨단다.

연지를 하면서 스님은 다시 한번 출가하였다고 말한다. 거짓말같이 주먹질 하는 습관이 사라지고 밖으로만 치닫던 성격이 안으로 다스려진 것이다. 물길을 논으로 돌리면 농사를 짓듯, 스님 역시 힘의 작용을 마음 공부로 전환시킨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전까지는 백일 기도를 제대로 회향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기도만 시작하면 마장이 생기고 싸움이 일어나서 중도에 그만두기가 일쑤였지만 연지를 한 다음부터는 공부가 일사천리로 되었다. 그래서 스님은 해인 강원을 무사히 졸업한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신다. 지금의 불굴스님은 봄 햇살처럼 따스하다. 젊은 날의 기상이 이제는 안으로 스며 있는 듯하다. 멜로 영화를 보면 눈물부터 흘리고, 달라이라마의 삶을 존경하는 스님이기도 하다. 조석으로 예불을 올리면서 티베트의 독립을 발원하는 이는 아마 불굴 스님 뿐일 게다. 이러한 스님을 뵈면 과격성과 유연성은 하나의 성질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성질은 쓰는 작용에 따라 아주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수행은 결국 이처럼 마음의 에너지를 전환시키는 일이 아닐까 싶다.

■월간 ‘해인’ 편집위원

2001-08-15
 
 
   
   
2024. 11.23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