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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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스님의 스님이야기】불굴스님(하)
칠불암서 선 채로 백일기도
요즘 하루 12시간이상 염불

80년대 중반 불굴 스님이 지리산 칠불암에서 올린 백일 기도의 가피는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신심이 나게 만든다. 그 해 겨울 안거를 지내기 위해 칠불암을 찾았다. 그러나 그 겨울에는 스님들이 많이 몰려 늦게 온 불굴 스님은 입방이 허락되지 않았다고 한다. 스님은 그때 선원에서 공부하지 못할 바에는 기도를 올리자고 마음먹었다. 선방 대신 기도하는 조건으로 동안거를 지내게 된 셈이다. 당시 스님은 허리병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그래서 치료를 위해 쑥뜸을 뜨기고 하고 심지어는 똥물까지 마셔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좀처럼 낫지 않았다. 칠불암에서의 백일 기도는 허리병이 있는 환자로서는 거의 초인적인 힘으로 한 것이다. 꼼짝없이 선 채로 해야 하는 기도는 허리에 무리가 많이 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때 불굴 스님은 하루에 네 번, 선방에 앉은 스님들과 똑같이 기도로써 정진하였다. 밥 먹고 잠자는 시간 빼고는 법당에서 나오지 않았다. 회향 일이 가까워오자 스님은 21일 용맹정진을 각오하게 된다. 다시 말해 21일 동안 잠 자지 않고 기도를 하겠다는 뜻이다. 특히 저녁밥 먹고 기도에 들어가면 다음 날 아침까지 꼼짝 않고 기도를 올렸다고 하니까, 그때의 신심과 원력이 얼마나 절절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렇게 용맹정진 기도하기를 일 주일 되는 날 새벽, 하얀 수염에 도포자락을 한 노인을 만나게 된다. 그 노인은 긴 침을 하나 들고 있었는데 그 침을 불굴 스님의 항문으로 쑥 집어넣더라는 것이다. 뭉클한 느낌이 드는 순간 다시 그 침을 쑥 빼더라는 것이다. 놀라서 눈을 떠보니 법당에서 목탁을 치고 있었고 그때야 그 노인이 비몽사몽간에 나타난 것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때 침을 맞던 느낌을 말할 때 스님은 삼천 대천 세계가 환히 열리는 그런 기분이었다고 하신다. 아마도 업이 일순간에 빠져나가는 그런 느낌이었는지도 모른다.

기적은 그 때부터 일어난다. 허리가 아파서 옆으로 돌리지도 못했는데 스르르 허리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소변을 볼 때에도 고개를 숙이지 못했는데 거짓말처럼 숙여지더란다. 한 마디로 허리병이 다 나아버린 것이었다. 그때 비로소 스님은 부처님 가피와 영험을 확신하게 됐다. 불굴 스님은 업으로 인한 병은 허리로 온다고 믿는 분이다. 이러한 허리병의 치료는 수술로는 불가능하고 기도 가피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스님은 그 때부터 기도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계신다. 지금까지 천일 기도를 세 번이나 마쳤다. 어떤 절에서는 목탁소리 시끄럽다고 쫓아낸 적도 있었단다. 스님은 기도를 하면서 화두를 챙긴다고 하신다. 물 흐르듯 쉼 없이 기도하시는 스님을 뵈면, 염불삼매와 선정삼매는 결국 같은 힘인 것 같다. 몸이 건강해야 화두가 성성하다는 것이 스님의 지론이다. 업이 맑아야 그 어떤 수행에도 마장이 적다는 것은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다.

불굴스님이 계시는 가평의 작은 암자는 토굴 같은 절이다. 처음 그곳에 터를 잡고 기도를 할 때는 남의 창고를 빌어 시작하셨단다. 그때 스님은 신문지를 깔고 공양을 할 정도로 살림살이가 없었다. 어느 날 십만 원 짜리 불공이 들어왔는데 그 돈으로 밥상을 마련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하신다. 지금도 스님의 기도는 여전하다. 하루 12시간 법당에서 목탁을 두들기고 어쩌다 신심이 나면 밤샘까지 하신다. 가끔 스님이 계시는 암자에 들려 스님의 목탁소리를 듣고 있으면 기도 없는 내 삶이 참 부끄럽게 느껴진다. 가평은 불굴 스님이 군대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통신병으로 가평 지역의 산을 누비면서 그 산세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먼 훗날 절을 지으면 꼭 가평에 터를 잡을 것이라고 자신에게 약속했는데, 지금에야 그 원력이 이루어졌다고 하신다. 군대를 가게 된 재미난 일화가 있다. 신체 검사가 나오자 스님은 월남에 가고 싶었단다. 그래서 부모님께 말씀드렸는데 아들이 사지(死地)에 간다는데 남의 일처럼 무표정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끈끈하게 이어진 부모의 정을 그 일을 통해 끊을 수 있었다고 한다. 불굴스님은 마치 <법화경>에 등장하는 상불경 비구 같다. 그 누구도 가벼이 대하거나 함부로 말하지 않으신다. 지금까지 남의 험담을 하는 것을 듣지 못했고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논쟁이나 시비가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모습을 보고 강원 시절의 도반들은 놀란다고 한다. 독선과 괴각질로 유명했던 불굴 스님이었으니 그럴 만도하겠다. 번뇌가 많으면 깨달음도 크다고 했던가. 위기를 바꾸면 기회이듯 수행자는 인생의 반전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불굴 스님은 수행자의 방황과 갈등을 공부로 잘 승화시킨 대표적인 예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불굴 스님은 늘 나를 일깨우는 스승이나 마찬가지다. ■월간 ‘해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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