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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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스님의 스님이야기】낭림스님
재치있는 말솜씨 웃음보 자극
한번 마음먹은 일 끝까지

낭림(朗林) 스님은 흔하지 않은 특이한 이름 때문에 처음 만나는 이는 꼭 법명을 되물어 본다. 입에 익지 않으면 발음하는 일도 힘들다. 그래서 나이 드신 분들은 몇 년이 지나도 그의 법명을 잘 외우지 못한다. 스님네들의 법명은 대부분 중복되거나 역사적 인물과 관련되어 있기 마련인데, ‘낭림’이라는 이름은 한국불교인명사전을 검색해도 보이지 않는다. 얼핏 들으면 우습기도 한 그 이름을 가지게 된 인연도 알고 보면 개성이 강한 그의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봉암사에서 행자 노릇을 할 때, 어느 날 큰스님께서 방으로 부르시더란다. 뜻밖에도 큰스님은 행자의 이름을 미리 지어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이름을 여러 개 놓고서 마음에 드는 것을 집어보라는 말에 얼른 ‘낭림’이라고 적힌 종이를 가졌단다. 그 때 큰스님께서 껄걸 웃으시면서 “무슨 뜻인 줄은 알고 집었느냐?” 물으시자, 행자의 대답이 오히려 선문답에 가까웠단다. “한문이 쉽잖아요!” 지금도 그 이야기를 들으면 배꼽을 잡고 웃지만 그러한 낭림 스님의 재치 때문에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평소에도 이처럼 단순하고 파격적인 성격의 일면을 많이 보여준다.

낭림 스님은 말을 잘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때때로 그의 위트는 포복절도할 만큼 순발력을 발휘한다. 끊임없이 말재간을 부려 주위를 즐겁게 하는 것이 유머있는 사람이라면, 위트 있는 사람은 말 한마디로 상황을 반전시키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서 웃음을 유발시키는 폭발력은 위트가 훨씬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낭림 스님의 위트는 펄펄 살아 있는 선사(禪師)의 활구(活句)처럼 시원하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신도가 찾아와서 그의 피부가 너무 곱다고 칭찬을 하였다. 스님은 그 말을 듣고 갑자기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앞에 있던 신도는 자신이 무슨 실수라도 한 줄 알고 당황하고 있을 때 그가 이렇게 말했다. “사실은 거울 볼 때마다 저도 놀랍니다, 피부가 너무 좋아서…”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나 자신도 의외의 그 대답에 한바탕 웃음보를 터트렸다. 이같이 위트는 농담인줄 알아차리는 그 찰나에 상황이 반전되는 것이다. 이런 위트의 논리가 마치 우리 선문(禪門)의 격외(格外) 법문과 닮아 있어서 한번씩 매력이 느껴진다.

낭림 스님은 개성이 강하고 고집이 있다. 지나치면 아집과 독선이 되지만, 때로는 수행자에게 이런 고집은 직립수행의 한 과정으로 나타난다. 내부에서 일어나는 안일과 갈등을 길들이는 자기 통제의 수단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낭림 스님에게 이런 고집은 집중력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언젠가 눈 치우는 울력을 함께 한 적이 있다. 그 해 겨울은 눈이 자주 내려 눈이 겹겹으로 쌓여 있었다. 눈을 쓸고 나면 바닥은 온통 빙판이라서 미끄러지지 않게 길을 내기가 무척 힘들었다. 삽으로 치우다가 나중에는 곡괭이까지 동원되는 큰 일이 되었는데 나는 힘에 부쳐 포기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는 해질 무렵까지 빙판의 얼음 깨는 그 작업을 쉼 없이 하는 것을 보고, 성격과 고집이 일상의 일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한번은 삽질을 하다가 삽자루가 부러진 적이 있었는데 부러진 부분이 삽에 단단히 박혀 빠지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 성격 같으면 그냥 창고에 쳐 박아 두고 말 것인데, 그는 반나절을 그 삽을 가지고 망치질을 하고 씨름을 하더니 기어코 부러진 삽자루 조각을 떼어내고 마는 것을 보고, 일에 매진하는 적극적인 그의 모습에 또 한번 놀랐던 적이 있다.

낭림 스님은 힘이 장사에 가깝다. 무거운 짐이나 돌덩이 같은 것도 그의 힘을 빌리면 쉽게 옮겨진다. 해인사 학인 시절 그의 힘은 절정이었다. 하루는 경승용차 한 대가 눈에 미끄러져 차 한 쪽이 개울가로 기울어진 일이 있었다. 그 때 그가 팔을 걷어붙이고 기울어진 차를 가볍게 들어올리는 것을 보고 구경하던 도반들이 함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가만히 보면 그는 무조건 힘을 쓰는 게 아니라 지혜를 빌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렛대의 원리처럼 온 힘을 쓰지 않고도 자신의 힘을 몇 배 더 발휘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일머리를 알고 힘을 쓴다는 뜻이다. 아닌게 아니라 자신은 힘이 좋은 게 아니라 머리가 좋다는 스님의 말이 백 번 맞는 것 같다.

스님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만화를 무척 좋아한다. 만화책은 밤을 지샐 정도로 즐겨 읽고 텔레비전의 만화 프로그램에 대해 아이들보다 더 훤하다. 그래서 나도 모르는 만화 주인공들을 소재로 아이들과 신나게 이야기하기도 하고 장난도 친다. 가끔 혼자서 만화를 보며 끽끽 거리고 웃는 스님의 모습에서 순수하고 맑은 동심을 느낀다. ■월간 ‘해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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