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할 땐 철저…기도 열심
태경(台炅) 스님은 아주 재미있는 도반이다. 그래서 그와 종일 같이 있어도 힘들거나 짜증스럽지 않다. 바로 스님의 입담과 익살 때문이다. 어쩌다 스님과 함께 여행을 해보면 해학이 넘치는 재치와 유머로 인해 여정이 더 즐겁고 신난다. 가는 곳마다 웃음꽃이 피고 폭소가 터진다. 그와 있으면 정말 배꼽 잡고 마음껏 웃을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시들시들하던 기분도 스르르 풀어진다.
미국 스텐포드 대학 월리엄 프리이 박사의 발표에 의하면, 크게 웃을 때 우리네 몸 속의 650개 근육 중에 안면 근육 80개를 포함하여 모두 231개의 근육이 움직인다고 한다. 이 같은 결과는 에어로빅 5분 효과와 같다고 하니까, 한번씩 박장대소할 때마다 엄청난 근육 운동을 하는 셈이다. 고혈압과 스트레스 등 현대 질병도 알고 보면 웃음의 사각지대에서 오는 병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태경 스님은 휼륭한 웃음요법 치료사나 다름없다. 그는 늘 좌중을 즐겁게 만든다. 그래서 어디에서나 인기가 만점이다. 스님을 5분만 보고 있으면 울던 사람도 웃음보를 터트린다. 그만큼 사람을 즐겁게 하는 재주가 다양하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개인기’가 많은 사람이다. 가수 모창에서 성대모사에 이르기까지 그의 재주는 개그맨을 능가한다. 특히 그가 잘하는 모창은 나훈아 노래다. 얼굴을 보이지 않으면 한번쯤은 진짜 나훈아로 착각한다. 그래서 그의 별명이 ‘너훈아 스님’이다.
웃음을 유발시키는 모든 행동이나 표정을 코믹이라고 한다. 이미 해인사 학인 시절부터 코믹한 그의 재주는 산중에 소문이 자자했다. 5월 단오 때마다 해인사 산중에서는 체육대회가 열리는데 축구와 배구가 주 종목으로 치러진다. 그런데 태경 스님이 해인사에 살기 시작하면서 단오날이면 더 재미있게 운동경기를 구경할 수 있었다. 스님이 입담을 발휘해 축구 경기를 아나운서처럼 생생하게 중계했기 때문이다. 축구도 박진감 있었지만 그의 중계 방송이 더 현장감 있었던 것 같다. 그 많은 축구 용어들을 재빠르게 구사하는 목소리를 들으면 진짜 아나운서 경력이 있는 사람쯤으로 여길 정도다. 스님이 최근까지 대구 불교방송에서 포교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도 알고 보면 이러한 순발력 있는 능력 때문이다.
인도를 여행할 때의 일이다.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선생님을 따라가다가 갑자기 태경 스님 에게 몰려들었다. 학생들을 인솔하던 선생님은 그것도 모르고 혼자서 저만치 가고 있었다. 어린 학생들이 그를 둘러싸고 사인을 해달라고 조르는 광경은 마치 유명 스타의 공연장 같았다. 지나가던 여학생들을 보면서 유명 배우 제스처를 해보였는데, 그것이 여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선글라스를 끼고 태연하게 사인해주는 그의 모습이 정말 배우나 다름없었다. 이처럼 스님의 행동은 때때로 익살스럽고 즉흥적이다. 이러한 유머 있는 모습 때문에 수행자적인 면모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예불과 기도할 때는 확 달라진다.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 스님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남을 잘 웃게 만드는 일도 수행의 한 방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한 때 그는 설악산 봉정암과 선운사 도솔암에서 100일 기도를 주야로 한 적이 있다. 칠일 밤낮을 법당에 서서 기도하여도 피곤하거나 지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때 그는 자신의 내부에서 들려오는 또 다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청송 주왕산에서 천막으로 토굴을 짓고 정진할 때는 정말 업식(業識)이 맑았다고 한다. 하루는 마을에 갔다가 산으로 오고 있는데 마을 청년들이 계곡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다. 전기를 이용해 고기를 잡는 잔인한 방법을 보고 “닭 한 마리 사줄 테니 고기 잡지 마시오” 했다. 그러나 청년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그 일을 계속하였다. 그 행동을 보고 그가 마음으로 ‘오늘 고기 한 마리도 잡히지 마라, 이놈들! 관세음보살’ 기도를 하였다고 한다. 다음 날 마을 청년들이 찾아와서는 닭 한 마리 값 받으러 왔다고 농담을 하더란다. 깜짝 놀라 사연을 물어보니, ‘어제 스님이 지나가고 난 뒤로는 경운기 시동이 자꾸 꺼져 전기가 통하지 않아서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는 이야기. 그의 기도가 신통으로 변한 예는 또 있다. 마을에서 키우는 개 한 마리가 있었는데 밤마다 그 개 짖는 소리 때문에 공부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하루는 공부를 하다가 “저 놈의 개는 목도 쉬지 않는구나” 하고 말했는데, 다음 날 아침에 그 집을 지나면서 보니까 개가 목이 가라앉아서 소리를 내지 못하고 낑낑거렸다. 이 같이 중생을 위한 간절한 기도는 그 힘의 전달력이 몇 배 강해지는가 보다. 이번 여름 안거를 끝내고 강원 시절 도반들이 태경 스님이 머물고 있는 절에서 모임을 가졌다. 우리는 또 그 시절로 돌아가 여전한 그의 익살에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웃을 수 있었다.
■월간 ‘해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