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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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스님의 스님이야기】환기스님 (끝)
선방에 걸망 풀면 묵언정진
부모님 은혜 아는 출가자

환기(幻機) 스님은 묵언수좌라 불러야 옳다. 안거가 시작되면 환기 스님의 말문은 굳게 닫힌다. 그가 선방에 걸망을 풀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묵언패(默言牌)를 내놓는 일이다. 결제철마다 묵언 수행을 한지도 벌써 십 년째가 다 되어 가는 것 같다. 석 달 동안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정진하는 일이 쉬운 것 같지만, 이 역시 마음을 길들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수행이다. 입을 닫는다는 것은 마음을 놓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시비분별에 끌리지 않을 각오가 있어야 가능하다. 귀도 함께 막아야 마장이 적다. 입과 귀를 닫고 있으면 처음에는 답답하지만 어느 정도 익어지면 오히려 확 트이는 마음이 된다고 한다. 말은 하지 않을 때보다 말을 했기 때문에 후회하고 실수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말을 하지 않으면 외부의 시비가 어느 정도 끊어지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면 내부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 많아진다. 그 때 비로소 넉넉하고 정결한 자신만의 공간을 넘나들게 되는 것이다. 선(禪)은 순수한 집중인 동시에 철저한 자기 응시라고 말한다. 묵언은 이러한 자기 응시의 정갈한 배경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묵언을 통해 당당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에 이 수행은 결코 벙어리 흉내가 아니다. 환기 스님은 이러한 묵언 수행을 통해 불필요한 말을 걸러내는 작업을 하는지도 모른다. 입단속을 한다는 것은 말을 줄인다는 뜻과 통한다. 묵언수행 후 환기스님은 말수가 점점 적어지고 있다. 말을 마구 지껄이지도 않고 핏대를 돋우며 주장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얼굴 가득 미소만 짓는다. 말을 잘 한다는 것은 대화나 논리 이전에 따뜻한 가슴이 오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를 통해 깨닫는다. 소리 없이 따스한 열기가 전해지는 난로처럼 그의 성품도 이와 같다. 환기 스님은 한 때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병치레를 한 적이 있다. 큰 수술을 세 번이나 치르면서 육신의 덧없음을 실감하였다고 한다. 그 일이 환기 스님에게는 커다란 법문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다시 한번 발심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되었단다. 그 후 환기 스님은 몸을 돌보지 않고 용맹정진하고 있다. 지난 여름 안거 때에는 각화사 선방에서 하루 18시간 정진을 마친 구참(久參)이기도 하다. 산철(해제기간에 하는 정진)수행도 마다하지 않던 그가 최근 느슨하게 정진하는 것은 부모님의 병간호를 위해서였다.

환기 스님은 정말 효자다. 흔히 출가를 하면 부모와 이별하는 것으로 알지만, 진정한 출가는 그 은혜에 보답하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출가는 단절이 아니라 또 다른 화해다. 환기 스님을 보면 ‘일등 수행자가 일등 효자’라는 공식이 딱 들어맞는다. 얼마 전 그가 느닷없이 운전면허를 취득한다고 학원에 다닌다는 말을 듣고 무심코 넘겼는데, 알고 보니 홀로 남은 노부(老父)의 간병을 위해서였다. 병원에 모시고 다니기 위해서는 운전면허가 꼭 필요했던 것이다. 지난 겨울 안거 때 환기스님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주위 스님들은 아무도 몰랐다. 나는 줄곧 부음을 전하지 않은 환기 스님 잘못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 자신도 몰랐다는 말을 한참 뒤에 들었다. 아들의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가족들이 일부러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결제 중에 있는 환기 스님에게는 말하지 말라는 노모의 부탁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 어머니의 그 불심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러나 환기 스님은 어머니의 임종을 보지 못한 것이 내내 아쉬운 모양이다. 지금도 그 이야기를 할 때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몇 년 전 환기 스님과 미얀마 성지를 순례한 적이 있었다. 그 때 환기 스님은 몸이 불편한 노모를 모시고 함께 여행을 하였는데, 모자(母子)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노모를 부축하여 계단을 오르기도 하고 유적지에서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는 모습은 아름다운 하나의 그림이었다. 그 때, 출가한 스님들이 부모에게 저렇게 할 수 있다면, 아들을 산에 보내고 눈물짓는 부모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었다. 출가는 불효의 면죄부가 될 수 없고, 산중이라고 해서 불효죄의 치외법권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환기 스님은 지금 속가에 잠시 머물고 있다. 날마다 정진하듯 아버지의 병간호를 지극히 한다. 걸망 지고 먼 곳에 가지 못하고 여러 날 지내고 오지도 못한다. 환자를 걱정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나마 간호할 수 있는 것도 해제 기간 뿐이다. 결제 기간이 되면 또 선방으로 향한다. 자식 하나가 출가하면 구족(九族)이 천상에 난다는 경구가 있다. 그렇지만 이 말은 출가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공부해서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환기 스님이 공부하는 뜻도 여기에 있는 듯 하다. ■월간 ‘해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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