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원스님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 깊은 잠 언저리에 술렁거림이 들어와 눈을 떴을 땐 큰방은 캄캄했다. 상반 스님들이 죽비를 들고 조심조심 큰 방의 술렁거림을 어둠 속에서 조용히 잡아가고 있었다.
옆의 도반에게 나는 졸려워 하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조용히 해, 다락에 도둑이 들었어. 아까 한 30분전부터 다락에 옷장문 따는 소리가 들렸거든. "
그 소리에 난 벌떡 일어나 앉았다.우리가 자는 이 큰 방은 밖에서 보면 2층 정도의 높이인지라 그 2층에 해당하는 공간에 각각의 개인 사물함과 일년동안 대중이 먹을 쌀을 넣어두는 곳간이었다.
그 넓은 공간 안에 아쉬운 대로 탁구대가 하나 있어서 요긴하고 쓰고 있었는데 간덩이가 매우 큰 도둑께서 그 와중에 탁구를 치는 바람에 해우소 다녀오던 학인의 귀에 들려 알게 되었다고 했다.
도둑들이 우리가 깨어 난 것을 알게 해서는 안 될 것 같아서 아직 어른 스님들께도 알리지를 못했다고 했다.우리 모두 일어나 앉아 숨을 죽이고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을 때.
갑자기 경원스님이 일어났다. 그리고 2층 다락으로 통하는 문을 활짝 열었다."저기요, 아직 거기 있어요? 우리 지금 다 일어났거든요. 빨리 가세요. 들어오신 대로 잘 찾아서 나가세요. 50까지 세고 올라갈 거예요. 하나, 두우울, 세에엣! 어서 빨리 가세요. 네엣!"그 순간 우다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뛰는 소리가 나더니 조금 후에 조용해졌다."갔지요??스님들 올라가 봅시다."개인 사물함 자물통들은 여지없이 다 박살이 났고 비상금들은 몽땅 털렸다.
게다가 이 배짱 좋은 도둑들은 몰래 감춰두었던 커피까지 찾아서 끓여 먹고 떠난 게 아닌가.이 어이없는 소동으로 경내가 소란스러워지자 어른 스님들이 달려 오셨고 경원스님의 행동은 당연히 어른스님들을 놀라게 했다.
"누가 도둑에게 말을 걸라고 했냐?"
"스님, 저도 겁먹었어요. 하지만 어떻게 해요. 그 사람이 잡히게 되면 일이 복잡하게 되잖아요. 만약에 가지 않을까 봐 무지 걱정했어요. 죄송합니다."
경원 스님은 그렇게 배짱이 남달리 컸다.소소한 일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다가도 무엇인가 결정을 내릴 때에는 상당히 과감하다.스님은 내 친구의 고등학교 동창이다.
강원에서는 그런 인간관계가 전혀 도움이 되질 않았으므로?모른 척하고 지냈다. 학창시절에도 여장부 같은 기질이 있었다는 소린 들었지만 워낙 뽀얀 피부에 아주 부드럽게 생겨서 믿질 않았더니 그 날 밤 도둑사건으로 스님의 진면목을 본 셈이었다.
졸업하고 난 후에 경원 스님은 대전에서 중앙불교회관을 맡아 대전시내 불자들을 위한 많은 포교프로그램으로 열심히 살고 있다는 소식을 도반들을 통해 듣고 있었다.
재작년인가 경원스님이 근처 선방에서 결제중이라는 소리가 들리길래, 아니라고 그 스님은 지금 불교회관에서 열심히 포교하고 계시는데 무슨 선방 타령이냐고 지나쳤다.혹시나 싶어 선방에 전화해보니 정말 그 곳에 있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 대충 대중 공양 준비를 해서 갔더니 몹시 반가워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영락없이 십년전 그 맑디 맑던 경원 스님이었다.
왜 갑자기 떠났느냐는 질문에 아주 간단히 말했다."너무 오래 살았지요. 이젠 참선공부를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서 바로 지금이 그 때 인 것 같아서 법주사에 내 놓았습니다.
"십여년 동안 혼자 힘으로 애써 가꾼 포교당을 후임자도 정하지 않고 대중에 내 놓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경원스님의 노후나 미래가 보장된 것도 아니건만 스님은 불사의 끝은 회향에 있다며 자신은 자기 분상에서 제일 탁월한 선택을 한 것이라며 흐뭇해했다.
스님의 뛰어난 포교능력을 아쉬워한 캐나다의 어느 스님이 포교당을 맡아주기를 권했으나 그 간곡한 청을 물리치는 것을 보며 집착하지 않는 수행자, 무주상보시 하며 떠날 줄 아는 수행자의 모습을 고스란히 읽을 수 있었다.
<약력>이번 호부터 3개월간 ‘스님이야기’를 연재하는 원욱스님은 59년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나 수덕사로 출가, 80년 수계를 받고 동학사 강원과 중앙승가대학을 졸업하였다.?불광사. 약수암. 수안불교회관 등에서 어린이 지도법사를 했으며 지금은 서울 목동 반야사에 머물고 있으며 저서로는 <나는 사람이 제일 좋습니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