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림없는 수좌의 모습
금산(金山) 스님은 수좌다. 청정비구로서 바라보기만 해도 존경스러운 수행자다. 언제나 만나면 마음이 의지가 되는 도반이라 나는 스님이 머무는 수원포교당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출가하기 전, 우리는 수선회(修禪會)라는, 좌선을 배우는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그냥 그 시절엔 스쳐 지나는 인연이었지만 수선회에는 해마다 출가하는 도반들이 있었으므로 자연히 출가 후에도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좌선을 계기로 출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제각기 학승, 포교승, 주지 소임을 살고 있지만 금산스님은 일구월심 오로지 좌선만이 법인 사람이다. 그가 안거를 떠날 때 우리들은 그가 이번 철에도 변함없는 정진으로 확철대오할 것이란 믿음을 가졌고, 해제하여 돌아오면 그 불탔던 구도의 에너지가 우리에게도 스며들기를 바라며 만났다. 금산스님은 ‘타고난 수행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정진에 열심일 뿐더러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을 만나면 화두와 좌선에 대해 밤을 새워가며 조근조근 일러준다. 공부에 대한 열망의 흔적을 조금만 보여도 그 사람은 스님에게서 확실한 수행법을 배울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할 수 있게끔 지도를 받는다. 곁에서 듣다보면 아주 오랫동안 들어왔던 공부법인데도 새삼 신이 나고 재미가 솟도록 스님의 설명은 자상하다.
8년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스님은 장좌불와(長坐不臥)와 일종식을 하고 있다. 편히 누워 자지 않고 앉아서 화두를 챙기며 부처님처럼 하루에 한번만 음식을 먹는다는 것, 수행자들이 언제나 도전해 보고싶은 수행법이지만 사실 그게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닌지라 대개는 엄두를 못낸다. 장좌불와와 일종식을 한 처음에는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고 꺼칠해지며 윤기라곤 찾을 수 없고 몸은 마를 대로 말라 걱정스럽더니 지금은 몸에 익은 때문인지 편안해 보인다. 장좌불와를 하는 금산스님 이야기를 어떤 이에게 했더니 그가 의심스럽다며 “장좌불와라… 대단해. 그런데 장좌불와 하는 이들은 평소엔 앉기만 해도 마구 졸고 있더라. 차라리 잘 때 자고, 공부할 때 공부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스님은 어찌 생각하는가? 난 너무 지나치면 괴각이라는 생각이 들어.”
“장좌불와는 분명히 힘든 수행입니다. 그것은 단지 잠으로부터 몸을 조복받아 화두를 놓지 않으려는 수행이라 생각해요. 만약에 잠은 물론, 조는 것조차 조복 받았다면 그건 장좌불와가 아니라 장좌불와인 동시에 불면이기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난 장좌불와 하는 스님들의 타오르는 구도력을 존경합니다. 우린 그렇게 못하는 입장이고 도전도 못했잖아요.” 그날 우리는 해가 떨어질 때까지 장좌불와의 장단점을 놓고 설왕설래 했지만 난 정작 금산스님의 말을 듣고 싶었고 드디어 달포전 스님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스님, 장좌불와랑 일종식 하면서 제일 좋은 것은 무엇이고 힘들 때는 언제였어요?” “그냥 하는 거지, 뭐. 일상생활!” “아니 그래도 시작할 때랑 지금이랑 다른 게 있을 거 아니예요?” “잠이 많으니 잠을 줄이고 싶었고 그러다 보니, 밥을 자주 먹으면 자꾸 잠이 오니 밥도 줄이고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지. 몸뚱이는 길들이기 나름인 걸. 지금은 아주 편안해요. 화두가 특별히 성성하게 들린다고 하기보다는 화두를 챙겨들고 있는 시간이 많아진 셈이니 성과가 없다고 볼 수는 없겠지.”
힘든 수행이 일상이 되어버렸다는 스님의 말을 들으니 더 이야기 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난 스님이 망상에 휘둘리지 않고 화두가 밤하늘 별처럼 맑게 들릴 것이라고 믿고 있다. 화두가 들리는 그 순간의 느낌을 전해 받고 싶었건만 스님은 끝내 그 느낌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물론 나도 묻지 않았다. 보나마나 스스로 해보기 전에는 모를 일이라고 할 테니까. 깨달음을 얻지 못한 사람은 실재의 영역으로 뚫고 들어가야만 하는 것이고, 깨달음을 이미 얻은 사람은 그 실재를 말로 표현할 수 있도록 수행해야 한다. 깨달음을 얻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것을 자유롭게, 집착하지 않고 표현하는 일은 더욱 어렵다고 본다.
일종식하는 스님을 보며, 나도 한번!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보름을 넘기지 못하고 제 자리로 돌아온 나는 아쉬운 대로 마음을 가다듬고 조용히 <달마관심론>을 읽어본다.
“음식을 끊는 것은 무명악업을 끊는 것이다. 미혹한 이들은 이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몸과 마음을 방종히 하여 온갖 나쁜 업을 지으며 정욕을 마음껏 탐내어 부끄러워 할 줄 모르고 오직 밖의 음식만을 끊으면서 재계를 지킨다 하니 어리석은 아이들이 썩은 시체를 보고 산사람이라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리오”
아마 금산스님은 이런 마음으로 수행을 하시는 것 같다. 어리석은 나는 이를 깨닫는데도 참 오래 걸렸건만 스님은 오래전에 이 도리를 깨달으셨으리라. 어려운 수행에도 걸림 없는 수좌의 참모습으로 살고 있는 스님이 부러울 뿐이다.
■서울 반야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