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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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욱스님의 스님이야기】자용 스님
‘룸비니동산’의 목소리


스님 나서면 만사형통



불교방송의 어린이프로인 ‘룸비니동산’을 듣던 나는 진행자의 간지럽고도 낭랑한 목소리에 그만 웃고 말았다. 저 보살은 목소리가 저렇게 간드러져야만 한다고 생각하나 보다 여기고 있는데 방송이 끝나며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비구니 자용 스님이라고 했다. 나는 바로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웃었더니 왜 그러냐고, 허파에 바람이 들었냐고 한다. “방송만 듣고선 아무도 스님인줄 모르겠다! 어떻게 그렇게 요상한 목소리를 내고 그래요? 하하하!!” “그래? 내 목소리가 어때서! 스님처럼 억센 목소리로 방송 하면 애들이 다 도망가겠다. 소위 스님같이 어린이 법회를 했다는 사람이 그것도 모르면 어쩌누? ‘눈높이’ 몰라? 내가 ‘룸비니동산’ 맡아 진행한지가 언젠데 이제야 듣고 전화하면서 무슨 잔소리람.”


맞는 말이다. 방송용 언어가 반드시 있을 텐데 어련히 알아서 했으련만 괜히 한마디 던졌다가 지청구만 들었다. 스님은 중앙승가대학 선배다. 선배 스님이지만 내겐 아주 다정하고 따뜻한 분이다. 오래 전 여수포교원에 계실 때 여름불교학교를 도와드리러 갔다가 깜짝 놀랐다. 포교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넘쳐나든지 내가 그 불길에 델 것만 같아 그만 뒷걸음치고 싶었을 정도였다. 스님은 포교원의 모든 스케줄과 어린이·중·고등 법회와 청년법회, 거사법회까지 보살피고, 불교도서관내에 방과 후 공부방까지 운영하며 아이들 간식과 늦은 밤 야식까지 손수 만들어 먹일 정도로 의욕이 대단했다. 새벽시간엔 입시생의 고민을 들어주느라 깔아놓은 이불 위에 잠시 꽃잎처럼 몸을 뉘었다가 바로 나가버리기 일쑤였다. 철인 삼종경기가 아니라 철인 10종 경기에 출전한 사람 같았다. 여수 근처에 있는 사찰들의 법회까지 봐주러 다니고 있었으니 내가 놀란 것은 당연했다. 열정에 감동한 나는 몇년간 들락날락하며 여름불교학교 일을 도와드렸다. 그 후 스님은 전주 귀신사를 거쳐 지금은 평창 극락사에 계신다.


작년 겨울에 그곳을 찾아갔다. 낡고 퀴퀴했던 유치원을 새로 신축하여 원생이 130명이 넘는다고 했다. 평창은 아주 작은 곳인데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다니다니! 놀랍다고 하자 자용 스님이 웃으면서 말했다. “여름불교 할 때는 300명쯤 모이거든. 그 녀석들 절반은 교회 다니는데 여름불교학교만 하면 와. 난 그게 굉장히 신이 나요! 내가 극락사 오기 전엔 다 여름성경학교에 갔던 애들이니 해마다 녀석들을 극락사로 오게 할 수 있다는 게 환희심 날 일 아냐?”


스님은 마치 고만고만한 아이들과 같은 말투로 신이 나서 말했다.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해서인지 이럴 때의 스님은 정말 아이같다. 유치원을 한바퀴 돌고 나자 자용 스님은 이루어질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지만 이라는 단서를 달고 바람을 말했다.


“불교계에서 교구본사 단위로 운영하는 종립학교들이 곳곳에 있었으면 해.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까지만이라도 불자들의 자녀가 다닐 수 있는 좋은 환경을 지닌, 수준높은 학교를 세웠으면 해. 그런 날이 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지금보다 더 아름다울텐데… 오겠지, 그런 때가!”


종단의 스님들이 한마음으로 뭉친다면 그 신나는 불사를 이룰 수 있겠지만 아직은 요원한 일처럼 여겨질 뿐이다. 그래서일까? 스님에게 요새 비슷한 일이 맡겨졌다. 중앙승가대학 부설로 운영되어오던 보육교사교육원 교육실장이란 소임을 맡게 되셨다. 신문에서 운영부실과 재원부족, 홍보부족 등의 이유로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더니 그 대책으로 아마 스님에게 맡긴 것 같다. 92년부터 그곳을 졸업한 이들이 1000명이 넘는다. 하지만 최고의 투자와 시설을 갖추었어야 했던 사업에 너무 편안한 마음으로 임했던 바 다른 학교와의 경쟁력에서 졌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스님이 어떻게 그 난관을 극복하고 다시 본 궤도에 올려 놓을 지 걱정이 앞선다. 어떻게 힘이 되어드릴 순 없나 싶어 만났는데 대뜸 하는 말.


“스님, 아는 이들 중에 집에서 노는 사람 있으면 공부하라고 좀 보내라. 직업으론 최고잖아? 보낼꺼지? 그렇게 알겠어! 그리고 요새 엄마들이 문제야. 엄마 역할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거든, 부모입네 하면서 아이들 마음을 너무 몰라줘. 아이들을 학교에만 보내면 다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거든, 이런 사람도 보육교사 공부 좀 해야 한다고 봐. 아이들의 행동 저 너머에 무슨 생각들이 있는지를 알아야 좋은 엄마,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어. 졸업하면 취직도 다 시켜줄 수 있으니 보내주라, 사람들!” 그러면 그렇지, 자용 스님이 나서면 안 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벌써 나부터 스님 생각에 공감케 하도록 만들었으니 보나마나 위기의 보육교사교육원은 조만간 많은 불자들로 넘쳐날 것이다. 스님의 그 불타는 정열의 불꽃으로 안암골을 환하게 빛내시리라 믿는다.


■서울 반야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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