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운동 적극적 활동
바다 건너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 전쟁의 고통과 두려움이 먹구름처럼 드리워져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덧없이 죽어가고 있는데 나는 뉴스를 보며 기도하는 일 외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세상의 모든 살아있는 성인들이 다 나서서라도 저 전쟁의 불길을 끌 수는 없는 걸까? 수행자란 자신의 삶 속에서 고통을 직시하고 다른 이의 고통을 함께 느끼며 늘 자비를 베풀고 자신과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해 애써야 하건만 왜 모든 이들이 두고만 보는지 모르겠다.
난 그동안 불교계에서 하는 온갖 사회운동에 대해 대체로 무관심했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이 투쟁과 혁명을 통해서라면 조만간 또 다른 사상으로 무장한 투쟁과 혁명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처럼 진리를 깨달아 진리로 세상을 변혁시켜야 한다고 믿어서였다. 세속의 인연으론 친구이고 절집 인연은 도반인 유곡(遊谷) 스님은 나와는 반대의 길을 걸었던 사람이다. 그는 비구니로서 드물게 실천불교전국승가회 회원으로 사회운동에 적극 매진했다. 사회를 바꾸고 절집을 바꾸는 온갖 운동 속에는 항상 스님이 있었다. 불교의 자비정신과 계율, 포교, 수행, 이 모든 진리의 가르침이 사회변혁의 혁명사상과 만나, 중생과 승가를 바른 길로 이끌 수 있다는 종교적 신념이 되어 있었다. 스님이 강한 신념으로 세상을 향해 두려움 없이 투쟁해 갈때는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이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어느날 유곡스님과 나는 차 한잔 하며 현실참여문제 등 이야기를 나누었다.
“난 현재의 불교가 민중에게 다가서는 모습이 참 마음에 안 들어. 우리는 너무 권위적이야. 스님은 성직(聖職)이 아님에도 무슨 신성불가침의 존재처럼 세속에 물들지 않고 오로지 참선수행만을 하며 이 불타는 사바세계의 혼란으로부터 비켜서서 두 눈과 귀를 막고 수행만을 강조하잖아. 중생들은 억압 속에 고통받으며, 젊은 청춘들이 날마다 스러지고 있는데 너무 현실사회를 외면한다는 것은 종교인으로도, 수행자로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현실참여라는 것이 꼭 깃발 들고 거리로 나서고 집회라는 것을 통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아. 운동권은 그렇게 해도 우리는 있는 자리에서 본연의 수행자 모습으로 있어야 하지 않을까? 현실의 고통 해결법도 불교식으로 해야한다고 봐. 스님들은 불교수행자로서 불교적인 방법과 시각을 가지고 현실참여를 해야하는데 내 보기엔 그냥 일반 사회운동하는 이들과 별 다른 바가 없어서 싫다. 괜히 운동한다고 들썩거리지 말았으면 싶어. 그동안 스님이 얼마나 투쟁적으로 변했는지 알아? 때때로 난 너무나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스님이 두려워. 그 부정적 사고가 스님을 망칠 것 같고 한편으로 저러다 데모진압대에 잡혀 맞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얼마나 걱정하는지 아나?” “스님은 이 뼈아픈 현실이 아무렇지도 않나? 저 고통 속에 헤매는 이들의 소리에도 두 다리 쭈욱 뻗고 잠이 와? 난 그렇게 못한다. 위정자들이 바뀌기 전에 스님들의 의식세계를 바꾸기 위해서라도 나는 이 길을 갈거야. 내게 희망의 말을 하지 않을 거라면 아무 말도 하지 말아 주라. 내 걱정도 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둬. 좀!”
그날 이후로 그런 심각한 대화는 커녕 만나도 형식적인 눈인사 외엔 좀처럼 말도 하지 않았다. 스님은 변함없이 사회참여로 현실세계를 극락으로 만들기 위한 투쟁을 하는 것으로 수행을 삼았고, 나는 포교하는 것으로 내 수행을 삼았다. 우리는 서로가 갈 길이 다른 이들처럼 지냈지만 난 나름대로 스님이 속한 세상에 대해 공부했다. 내 도반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날이면 날마다 최루탄 연기 속에서 헤매는 수많은 젊은 청춘들의 절규가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난 그렇게 슬슬 변하면서 바로 졸업을 했고 스님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그 덕분에 승가는 확연히 변했고 종단내의 각 분야에서 많은 진보가 있었다. 유곡 스님을 비롯한 사회운동에 적극적인 스님들의 노고였다는 것을 잘 안다.
지난 해 겨울 우연히 만나 의기투합해 잘 있던 말사 소임을 서로 휙 벗어던지고 만행을 할 때였다. “원욱스님, 나 오랫동안 너무 부정적인 면만 보고 살았던 것 같아. 세상엔 너무나 아름다운 것들이 많은데 말이야. 편안한 마음자리를 찾고 싶다. ” 그 소릴 듣는 순간 난 가슴이 찌르르 해졌다. 그것은 혁명을 잃어버린 사회운동가의 말이 아니라 진리를 찾아 53선지식을 만나고 돌아온 선재동자의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머지않아 깨달은 이의 가르침 속에서 기쁨과 신념으로 가득 차 있는 젊은 수행자 유곡스님은 덧없는 이 시간을 넘고 세월을 넘어서 니르바나, 저 영원한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이름처럼 구름을 헤치고 나온 둥근 달이 유유자적하게 산하대지 계곡까지 온 세상을 밝게 비추리라. 그래도 만나면 나는 ‘반전(反戰)운동’은 하라고 권하고 싶다.
■서울 반야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