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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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욱스님의 스님이야기】관문스님
갓김치 판매수익 장학금


선농일치 묵묵히 실천



<법회와 설법> 11월호를 읽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도반이 쓴 글을 읽으면서도 나는 반신반의했다. 갓김치를 만들어 판매한다는 내용을 보며 스님이 김치 버무리다 천진스럽게 장난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올라 웃음이 나는 걸 보니 틀림없는 것 같다.


도반 관문(關門) 스님은 여수 은적사 주지다. 생김새는 그야말로 기골이 장대한 비구승이지만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다정다감한 스님이다. 처음 만났을 땐 그 능청스러움과 다감함에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내게는 없는 그 푸근한 성격이 은근히 좋아지는 것은 세월 탓인 듯도 싶다. 은적사주지로 부임했을 때, 법당은 쇠락하고 신도도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기도와 법회를 열심히 열었지만, 갖가지 이유로 사찰로부터 멀어진 신도들을 다시 되돌아오게 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고 한다. 노심초사 고민깨나 할 때, 번개처럼 떠오른 것이 선농일치(禪農一致)! 스님은 우선 사찰 아래 놀고 있는 텃밭 천여 평을 일궈 녹차 밭으로 만들었고 그 다음에 여수라는 지역적 특성을 살린 ‘갓김치’를 생산하기로 마음먹었다. 남은 땅 1600평에 갓을 심고 가꾸었더니 처음엔 시큰둥하던 신도들이 땀범벅이 되어 일하는 스님을 보고 마음이 움직여 드디어는 스님보다 더 열심히 동참하더란다. 신도들이 스님을 도와 갓을 수확하고 갖가지 솜씨와 정성을 더하게 되면서, 은적사 텃밭에서 벌어진 이 야단법석을 통해 ‘은적사 갓김치’가 탄생되었다. 갓김치의 매력은 한번 먹어보면 그 맛을 잊을 수 없게 되는 거지만 양념이 너무 진해서 덥썩 손이 가지 못하는 것을 감안하여 ‘스님용 갓김치’도 만들었다. 그 맛이 소문이 나면서 제방의 스님들에게 인기가 솟고 있으니 팔리는 것이야 두말하면 잔소리다. 관문스님이 그걸 그냥 둘 리가 있겠는가. 당연지사, 수익을 지역사회에 장학금으로 회향하고 있으며, 지금은 시작 단계이지만 조금 지나 궤도에 오르면 갓김치 수익금을 외로운 노인들을 위한 기금으로도 쓰고 싶다고 한다.


사실 좋은 일들을 하는 이들은 처음엔 다 이렇게 말들 하지만 실행되고 있는 것은 아주 극소수거나 시간이 흐를수록 본래의 뜻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평상시 노인들에게 아주 편안하고 정감있는 효심을 표출하고 있는 관문스님은 잘 해내리라 믿는다. 스님이 보고 싶기도 하고 갓김치 생각도 나서 전화를 걸어 대뜸 “내게도 갓김치 주라!”했더니 “갓김치 먹고 싶나? 내가 팔 걷어붙이고 만들었으니 솔찬히 맛날걸. 청국장이랑 고추장도 보낼거나?” “보내주면 맛나게 먹지. 불사도 했다던데 고생이네? 농사지으랴, 불사하랴, 중노릇하랴!” “일일부작이면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이여. 내 뭐 달리 할게 있남. 농사짓고 공부도 하고 그것이 중노릇이여! 안 그려? 허허허!”


군더더기 없이 단정한 그 말이 마음에 든다. 본시 백장(百丈)스님의 선원청규(禪苑淸規)에서 뜻하는 것도 노동과 참선이 둘이 아니라는 것을 말함이니 스님의 말에 더 공감이 갔다.


인도 불교는 스님들이 노동하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첫째는 노동의 행위를 하면서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살생에 대한 계율위반 행위 때문이고, 둘째는 정신적 스승이 노동을 하지 않는 것을 당연시하던 때였고, 승려의 의식주는 전적으로 재가자들의 보시를 통해 이루어 졌으므로 구태여 권위를 실추시키면서까지 노동을 해야하는 사회적 종교적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중국으로 들어와 선종이 성립되면서 심산유곡에 있는 선찰들은 자연스레 자급자족을 하게 되었다. 스님들은 노동을 통해 경제적 의미보다 자신의 힘과 지혜를 외부 자연 속에 적용함으로써 노동과 자연의 결합을 통해 창조적 삶의 아름다움을 배우게 된 것이다. 그 속에서 자신을 비워내고 자연과 하나 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를 깨달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즉 노동도 수행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노동을 통해 검게 그을린 얼굴은 고달픈 일상을 살아나가는 민중들에게 친밀감을 주게 되었다.선승의 노동하는 모습은 그 자체가 중생교화를 이끄는 무언의 설법이며 가르침이다. 사실 날이면 날마다 흙 속에 묻혀 살아가는 피곤한 육신을 지닌 농민들에게 참선만이 최고라며 그들에게 참선의 효율성을 아무리 이야기한들 얼마나 공감을 할 수 있겠는가. 관문스님은 그 점을 잘 살펴 그들과 함께 일하며 그 속에서 부처님 자비와 함께 자연이 주는 깨달음을 통해 불법의 근본에 이르게 한 것 같다. 그들과 피부로 접촉하고 눈길을 주고받으며 동체대비를 나누는 그 모습은 어떤 수좌의 가르침보다도 가슴에 와 닿았을 것이다. 스님의 그런 동사섭(同事攝)의 삶은 그대로 아름다움이며 참수행이리라.


■서울 반야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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