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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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욱스님의 스님이야기】지인스님
항상 너그럽고 친절한 스님

불사땐 막노동꾼처럼 일해


“선남자여, 만약 무량 백천만억의 중생이 있어서 갖가지 괴로움을 받을 때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듣고 일심으로 부른다면 관세음보살은 곧 그 음성을 두루 관하고 모두 해탈을 얻게 하느니라.”사바세계는 고해다. 우리가 겪는 온갖 고통과 재앙들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는 보편적 고통이며 동시에 살아있다는 증거다. 현실적인 고통이 컸던 이들에게는 고통의 해방과 재난의 구제는 더할 바 없는 소망이다. 관세음보살의 구원력은 우리들의 실존에서 시작된다. 탐욕과 분노와 무지는 죽음에 이르러서도 결코 뽑히지 않는 뿌리깊고 질긴 가시 같아, 한 때의 수행으로 소멸할 수 있는 번뇌가 아니다. 자신의 죄업과 무력함을 뼈저리게 자각하고 자기 존재를 내던져서 관세음보살님께 간절히 구원을 원하는 신앙심과 지극한 자기 수행을 겸해야만 삼독은 서서히 뽑혀진다고 했다. 어느 불 보살의 서원이 눈물겹지 않겠는가 마는 나는 관세음보살님이 제일 좋다.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하려니와 일심으로 부르기만 해도 고통이 사라지고 즐거움이 생긴다는 데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학교 선후배인 비구 지인(智仁) 스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늘 다정하다. 언제 어느 순간 누구를 만나도 마치 관세음보살이 고해의 중생을 만난 듯 포근하게 대한다. 그래서일까, 머무는 곳도 대부분 관음도량이다.

졸업하고 나서 만났을 때 스님은 두타산 깊은 산 속 관음암에 계셨다. 나는 사바세계 중생들에게 그렇게 친절한 스님은 처음 보았다. 권위적인 의식을 가진 스님들은, 신도는 신도일 뿐 너무 가까이 하면 위계질서가 무너진다고 몸가짐 마음가짐을 단단히 하라고 하는데 반해 지인 스님은 달랐다. 한밤중에 손전등을 비춰가며 올라온 이들에게도 누구냐, 왜 왔느냐 하는 부질없는 질문은 아예 하지 않는다. 그냥 그들이 머물 수 있게 방으로 안내하며, 늦은 밤에도 개의치 않고 불러 차 한잔 하며 낯선 곳에서 하룻밤 지낼 나그네의 마음을 편하고 느긋하게 해준다.

게다가 모든 것들을 온전하게, 찾아온 나그네들 마음대로 하게 놔둔다. 기도를 하고 싶을 때는 기도하고, 아무나 후원(부엌)에 들어가 공양을 지어먹고, 설거지 하고, 장작을 패고, 청소하는 일, 산 아래서 암자로 오르는 길을 묻는 다른 객들을 맞이하며, 때론 내려가 그들의 짐을 들어다 주는 일까지도 저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아마 지인 스님이 주는 커다란 자유와 차 한잔과 함께 들려주는 고요한 음악소리 속에서 세상의 모든 근심과 번뇌를 다 놓아버리고 하산할 때는 마음의 평안을 얻어 가는 것 같이 보였다. 산 위는 고요함의 극치일 것이라 여겼던 내 생각이 여지없이 무너졌기에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 이 깊은 암자에 뜻밖에 사람이 참 많네요? 덕분에 고요함이 없어 번잡하겠어요.”“그렇지요? 하지만 고요함을 못 찾은 것은 스님의 마음이 번잡해서 아닐까요. 저들은 저들대로 잠시 머물다 떠납니다. 복잡한 세상을 뒤로 하고 여기까지 올 때는 자신의 마음자리에 고요함이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함일 겁니다. 대관령을 넘어온 바람소리를 들으며, 산 아래 맑은 무릉계곡을 보면서 마음을 맑게 하고 가는 걸 겝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들의 마음을 그냥 편안하게 해주는 것뿐이지요. 친절은 바로 자비심이니까.” 친절한 마음이 자비심이라, 듣고 보니 참 옳은 말씀이었다. 이곳은 이름 또한 관음암이 아닌가.

세월이 흘러 스님은 또 다른 관음사에 계신다. 옥과 관음사는 백제 때 창건된 사찰로 창건설화에 나오는 소녀 홍장이 바로 효녀 심청전의 원형이 되었다. 두타산 관음암에선 꼭 선비 같던 분이 이곳 관음사에선 완전히 막노동꾼처럼 변해 있었다. 묵고 있는 땅을 밭으로 다시 만들고, 죽은 나무들을 베어내고, 기우뚱 내려앉고 있는 요사채와 대웅전 불사를 전통의 가람구조에 어울리게 복원하기를 꿈꾸고 있다고 했다. 몇 년 전 수재로 망가졌던 도량을 가꾸느라 수시로 일을 하기 위해 샀다는 작은 포크레인이 스님 방문 앞에 오두마니 승용차처럼 서 있다. 일손이 모자라 늘 쩔쩔매는 스님을 보며 예전 두타산에 머물렀던 사람들이 생각났다. 사람들은 쉴 수 있는 곳만을 찾는다. 사실 제대로 된 불자라면 쉴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바라밀 실천할 곳을 찾아야 한다. 산 속 오지에서 몸도 마음도 모두 바쳐 며칠 노동하고 가면 또 다른 신선함을 얻을 수 있을 텐데….

아마도 스님은 심청이를 사랑하나 보다. 사랑하는 이에게는 모든 것을 다 잘해주고 싶은 것처럼 스님에겐 심청이가 관음보살이고 관음보살이 또 사바세계 중생들이어서 그들이 머무는 이 도량을 아름답게 가꾸고 세상을 밝힐 또 다른 심청이란 관음보살을 기다리고 있다. 지인 스님이 흘리는 저 땀방울이 바로 관음행이리라.

■서울 반야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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