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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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욱스님의 스님이야기】성륜스님
풍부한 감성 선화로 한껏 표현
볼수록 행복감 느끼는 그림들

성륜스님의 그림은 따뜻하다. 묵향이 은은한 기존의 선화(禪畵)와 달리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색깔은 생동감으로 활기에 차 있다. 그 색깔들은 그림 속에서 화려하게 꾸며주는 대상과는 관계없이 멈춰선 채 스스로 생각하는 것 같다. 마치 향기와 색채 그리고 소리들이 서로 교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평면의 그림 속에 멈춰선 물고기의 다음 움직임이 느껴지듯이…
절집에선 좀체로 볼 수 없는 연두빛깔을 처음 접했을 때 난 피식 웃고 말았다. 처음 내가 성륜스님을 만났을 때 느꼈던 스님의 색깔이 연두빛이었노라고 하면 스님도 웃으실 게다. 그림을 하시기 훨씬 전 성륜스님이 법주사강원 학인이었을 때 처음 뵈었다. 아마 청소년 지도법사를 위한 연수회였던 것 같다. 스님은 우리 조에 속했는데 아주 부끄러움이 많은, 그래서 자주 얼굴이 발그레해지는 감성이 순수한 분이었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 한동안은 가까운 도반이었는데 내가 스님의 예술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람에 지금은 뜨악하게 지내고 있다. 사실 우리가 한 작가의 예술적 감수성과 인품을 그가 만들어 낸 작품 속에서 알아낸다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가 살아 온 세월과 그림 그리는 과정을 볼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설사 어느 정도 알고있다 해도 그 사람의 예술적 감수성까지 이해하는 데는 그의 작품과 함께 그의 사람됨을 좋아하지 않고는 느낄 수 없다고 본다. 어쩌면 나는 스님의 그림 속에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남다른 열정이 확연히 살아움직이는 것을 보고 놀랐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머리깎고 먹물옷 입은 수행자의 모든 행동은 다 깨달음으로 가는 긴 여정 중 하나란 것을 아는 데도 시간이 꽤나 걸렸다. 부처님이 하신 말씀이 경전이 되며, 부처님의 행동은 율이 되고, 부처님의 마음은 선이 된다. 그것은 다시 수행자인 스님들과 예술가들을 통해 이 시대의 문화적 보배로 태어나게 된다. 그중 담박에 가슴에 와닿는 것은 물론 그림이다. 수행하는 이가 자신의 수행 세계를 무심하게 그린 그림을 선화(禪畵)라 부른다. 선화는 수행을 통해 경험한 ‘깨침의 느낌’과 그 깨침의 ‘자유’가 주는 마음의 세계를 그려 보이는 것일게다. 사람들은 선화를 보면서 일상에서 느낀 자신의 깨달음이 작가와 함께 어우러지기를 바란다. 깨달은 사람만이 깨달은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것처럼 그림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한다. 마치 수좌가 공부한 것을 고승에게 점검받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깨달음이란 체험을 문자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선승이 침묵하고 선화가는 조형언어로 고개를 돌리며 침묵한다.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은 자기 내면의 깊은 수행을 절묘하게 표현할 예술적 재능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모든 고정관념과 분별을 떠난 대립과 차별이 없어진 걸림없는 대 자유의 세계를 표현하는 그림은 더욱 어떤 틀에도 고정시켜서는 안 된다. 나는 그런 스님의 예술적 감성에 실려 표현되는 그림들이 이제는 좋다. 묵향 그윽한 노스님의 선화도 붉은 빛과 거친 붓놀림을 지닌 선화의 매력을 놓을 수는 없지만 볼수록 따뜻하고 부드러운 깊이를 느끼며 행복감을 주는 성륜 스님의 그림도 좋다. 행복함을 주는 그림 저 너머로 가장 논리적이며 논리를 벗어난 스님에 삶의 모습이 서려있어서인지도 모른다.언젠가 인사동에 갔다가 길에서 우연히 만나 스님의 생활 공간을 겸한 작업실엘 간 적이 있는데 그 생경한 분위기가 나를 상당히 거북하고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를 쳐다보던 스님이 내 속내를 알았는지 한마디 했다. “자유롭고 싶었지 뭐, 하하!” “절에선 안 자유스럽던가?” “내가 만약 스님네 절에 산다고 생각해 봐. 오로지 그림만을 그리려는 내게 좋은 느낌일 수 있을까? 그런 정신적, 육체적인 규제 속에서는 내 하고 싶은 그림을 그리지 못하지. 또 남들과 불편한 관계가 되기도 싫고. 그런 자유를 원하는 내가 무슨 주지를 살겠어. 못하지! 수행은 내게 그림이고, 그림을 통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해 주라.”
종교와 예술은 둘 다 일상적인 생활로부터 벗어난 삶의 깊이에서부터 솟아나온다. 만약 정갈한 수행공간에서라면 더욱 아름다운 빛을 발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가지고 헤어졌다. 한동안 성륜스님의 그림은 밝은 색으로 가다가 잿빛으로 자신의 향기를 실어내고 ‘와불 일어나시다’와 귀여운 느낌의 춤추는 달마를 거치는 동안 점점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것 같다. 그 뒤에 심곡암 그림을 보면서 나는 스님이 점점 인사동을 떠나 절로 돌아오고 싶어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미얀마로 성지순례를 다녀왔다는 소식을 바람결에 들으면서 노을이 지는 파간의 아름다운 정경들을 그림으로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서울 반야사 주지
200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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