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만나면 책읽는 ‘공부벌레’
제주서 강의하며 대중포교
심원(尋源)스님은 내 행자도반이다. 견성암 행자실에서 처음 만나 동학사 강원을 거치며 지금까지 가까운 사이로 지내고 있으니 아마 모르긴 해도 남은 날도 함께 할 도반이라고 생각한다. 심원스님은 한 마디로 공부벌레다. 내 생전에 그처럼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이는 본 적이 없다. 그것도 학문으로서의 공부를 하루도 쉬지 않을 뿐더러 평소에도 손에서 책이 떨어지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좌선수행에 큰 비중을 두는 불립문자의 선풍(禪風)으로 볼때 결코 흔한 모습은 아니다.
행자시절 우리가 한창 염불을 외우고 있을 때도, 염불숙제 다해놓고 심심하다며 출가할 때 묻혀온 영어단어장을 들고 아궁이 앞에 앉아 들여다보기 일쑤였다. 강원에서도 스님은 하루에 단 몇 줄만 배우는 것에 만족하지 못했는지 어디선가 관련서적들을 구해 보면서 우리보다 한 걸음 더 멀리 그리고 깊이 공부를 했다.
그 무렵 스님과 나는 상구보리가 먼저냐, 하화중생이 먼저냐의 문제로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스님은 깨달음을 구하는 것과 중생을 교화하는 것은 결코 분리될 수 없이 함께 실천돼야 한다고 했다. 하화중생을 외면한 상구보리만의 추구는 불완전한 것이며, 깨달음의 성취도 어렵다고 했다. 깨달음을 얻기 전에 우리가 누구를 교화한다는 것은 감히 생각도 못했을 때였다. 내 마음도 건사하지 못해 쩔쩔매는 상황에서 하화중생을 함께 병행해야 한다니 어림도 없는 소리지 싶었다. 그러나 심원스님은 대승불교에서의 수행자는 상구보리보다 하화중생에 더 가까운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상구보리를 강조하는 쪽에선 눈먼 사람이 남을 인도하기는 커녕 구렁텅이에 빠트린다 라는 비유로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많은 세월을 보내야 알아지는 것은 아니며 교학의 기본만 바로 알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무엇을 어떻게 실천하냐고 물었더니, 치문반이 겨우 끝나가고 있을 때였는데 느닷없이 <화엄경>에 나오는 말이라며 보현행을 실천함으로써 보리를 이루는 것이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펴지 않고서는 보리를 이룰 수 없다, 보리를 이루려는 사람은 대비심으로 동사섭의 보살행을 해야 하며, 이같은 실천이 깊어질 때 깨달음은 성취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 불교계가 이런 기본 원리와 실천철학을 외면하고 있는 이유는 참선을 통한 깨달음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포교할 사람 따로 있고, 진정한 불자는 수행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문제라며 흥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선은 깨달음을 얻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에 아무래도 선방으로 자리를 옮겨야 할 것 같다더니 기어코 우리를 떠났다.
그리고 심원스님은 몇 해를 운수납자로 사는 듯 하더니 떠억 하니 고려대학교 철학과에 들어갔다. 그 후 동국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마치는 동안 나는 스님이 좌선이 아닌 방법으로 상구보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상구보리만이 우선이라 생각하다 하화중생 쪽으로 바뀌어 포교사가 된 것처럼 스님의 생각도 변했다고 여겼다. 한 사람이 출가하여 스님이 되고 그 스님에게 투자된 시간은 말 할 것도 없이 엄청나다.
물론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자신이 택한 길로 나아가면서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어찌 보면 자신만의 힘으로 이루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삼보전의 시주물로 이룰 수 있었으므로 자신을 불교계의 지적 재산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심원스님이 자신이 지니고 있는 훌륭한 자산을 하화중생하는 곳에 언제 회향할지 궁금했다. 거기에 답하듯 스님은 박사과정을 하는 동안 조계종 교육원에 들어가더니 삼년동안 머물며 많은 일들을 이루어 냈다. 강원 교재를 재정비하고 범어교재를 만들며 스님교육에 관련된 일들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옛날 강원에서 확신에 차서 들려준 이야기가 아직 남아 있구나 싶어 뿌듯했다. 공부가 끝난 심원스님은 지금 제주도에 머물고 있다. 관음사 포교당인 보현사에서 포교국장을 맡아 정진중이다.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오랫동안 국내와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스님들이 그 빛을 다 밝히지 못하고 작은 암자에 머무는 것에 아주 아쉬움이 많다. 그들이 많은 대중들에게 그 공부한 것들을 펴야 하건만 여러 장애가 있어 그렇게 못하는 것은 참으로 아까운 인재낭비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심원스님은 20년간 공부해온 것을 멀리 제주까지 날아가 그곳 교양대학에서 그간 자신이 이룩한 세상을 펴는 것은 아주 멋진 일이라 여겨진다. 상구보리면 어떻고 하화중생이면 어떠랴. 어차피 우리는 깨달음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야 하는데 혼자 보다는 둘이 좋고, 둘보다는 많은 대중들이 가면 즐겁고 행복한 길이 아니겠는가.
■서울 반야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