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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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담스님 (끝)
80년대 불교운동 중심에

소신 일관…작년 홀연 잠적

(전호에 이어) 종단내 불교개혁운동이 불붙기 시작한 80년대 초에 현담스님은 몇몇 도반 스님들과 의기투합해 불교운동판에 뛰어들었다. 산중에만 머물러 있던 젊은 스님들을 일깨우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불교의 비사회성과 반대중성, 비역사성에 대한 신랄한 그의 비판은 조금씩 조금씩 젊은 스님들의 공감을 유도했으며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 불같은 열정이 식을 줄 몰랐다. 그의 삶에서 가장 활발하고 치열하게 움직였던 때가 그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탄탄히 짜여진 이론과 혈기는 그 누구도 대적할 수가 없었다.
당시 사회분위기는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이 충돌하여 매우 어수선한 분위기였고 종단도 사회분위기와 무관하지 않게 팽팽히 대립해 있을 때였다. 스님은 늘 사회대중에 등돌린 불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서 그럴바에야 속퇴해 삶의 현장에서 당당히 살아가는 것이 출가정신이라고 힘주어 말하곤 했다. 무엇땜에 젊은 놈이 산중에서 시주밥이나 축내면서 부질없이 세월만 탓하는게 부끄럽지 않느냐고 하면서 당당히 자신의 솔직함을 드러내며 용기있게 저자거리로 향했던 적도 있었다. 현담스님의 양심과 그 솔직한 행동은 주위를 걱정스럽게 했지만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부끄럽게도 했다. 아무튼 80년대 불교운동의 중심에는 늘 현담스님이 있었다.
그러던 스님이 6공화국 출범 이후 속이 많이도 상했는지 오랜 외유를 하고 돌아왔다. 노잣돈도 없이 몇 개월씩 유럽과 아시아, 아랍 국가들을 무일푼으로 돌고 오더니 참으로 오랜만에 시집을 한권 냈다. 그 시집에서 기억나는 ‘동백’이란 시를 옮겨보면

어디선가 추운 밤새 울음소리 들린다
여기 숲에 와서 나의 숲이 보인다
어느 때는 나도 누구보다
멋진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작취미성 얼큰히 취하여 오래도록
근사한 춤도 추고 싶었고
저 하늘과 땅 이을수 있는
그런 탑도 하나쯤 세우고 싶었다
눈 내리는 여기 겨울 숲에 와서
아무리 빨갛게 타오르는 불 멀리 내 걸어도
나는 이미 서둘러서 돌아갈 집이 없다.

해외 행각을 몇년간에 걸쳐 멈추지 않더니 튼튼한 두 다리를 앞세워 다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던 개혁종단에 참여했다. 그리고 출범 초창기에 <불교신문> 편집주간을 몇 개월 하더니 뜬금없이 어딘가로 낙향해 버렸다. 자신의 소신과 제도의 틀에서 오는 한계 때문인지, 오래된 타성에 대한 분노 때문인지, 아니면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는 세정(世情)에 지친 때문인지는 몰라도 충청도 어디쯤으로 훌쩍 떠나버렷다.
그 시기에 스님은 많이도 아파했던 것 같다. 개혁의 주체세력으로 동참을 했지만 뜻을 함께 해왔던 도반들과 반대 입장에 서면서 먹물옷에 대한 회의도 있었을 테니 참으로 안타깝고 괴로운 시기였던 것 같다. 그러나 그 특유의 기질로 보아서 그는 야인을 선택했던 것 같다.
현담스님이 시를 쓰고 불교운동판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 해서 경전을 등한시하고 수행을 게을리 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스님이 쓴 봉은사 입시기도 발원문을 보면 그가 얼마만큼 간절한 신심을 가꾸어 왔는가를 알 수 있다. 경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신앙심이 없었다면 어떻게 그렇게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 수 있었을까. 적어도 현담스님은 내게 있어 양심과 소신으로 일관해온 선배로 기억되고 있다.
현담스님은 지난해 예기치 않았던 큰 수술로 인해 마음에 변화가 생긴 모양이다. 당당하게 딱 벌어진 작은 어깨에 힘이 빠지고 수척하고 심약해진 그 얼굴에서 세월의 무정함을 새삼 느끼게 했다. 특유의 방랑끼에 제동을 걸었던 요양기간을 최대한 단축해서 어디론가 또 훌쩍 떠나버린 것이다.
아직까지도 가난하고 외롭고 고단한 길을 고집하는 그 기질은 현담스님에게는 객기가 아니다. 곧 소식을 전한다 해놓고 아직까지 행방을 아는 스님들이 주변에 아무도 없다.
복잡한 세상사 인연들을 뒤로 하고 어디 히말라야 오지에 둥지를 틀었는지, 그 누구의 그 무엇의 범접도 허용치 않는 메콩강 깊숙한 곳에 처소를 마련했는지 몰라도 하루빨리 건강한 그의 독설을 듣고 싶다.
그의 절필(絶筆)이 오랜 휴식기를 청산하고 메마른 우리들의 감성을 깨우는 활필(活筆)이 되어 되돌아 오기를 염원한다.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그 기질을 나의 잣대로 가늠해 본 것이 스님께 미안하다. (끝)
■함창 자광사
200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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