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교생활 10년…시종여일
허운스님
출가의 인연은 참 묘한 것이다. 스님들의 입산 동기는 저마다 다양한 사연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나는 우연찮게 먼저 출가한 집안 육촌형을 따라서 결심을 하게 되었다. 육촌지간은 먼 것 같지만 기실 아주 가까운 혈연이다. 윗대의 조부되는 어른끼리 친형제이니 아주 가까운 인척이 아닌가.
허운(虛韻)스님. 세속의 연배는 나보다 두 살 위인데 어릴 적부터 보아온 그의 인품은 아마 열 살은 더 차이가 날 정도로 다른 부분이 있었다. 성격이 자애로워서 집안의 많은 형제들이 그를 무척 좋아했는데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방학때가 되면 큰집에 가서 그와 함께 살다시피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연유로 30년 가까이, 그것도 절집에 와서도 사형사제의 인연으로 지속되고 있다.
처음 동진출가(童眞出家)를 결심하고 통도사 강원에 학인 신분으로 공부하던 허운스님을 찾아갔었다. 방학기간을 이용해 낡은 걸망 하나 메고 집을 찾았던 스님의 모습을 지울 길 없어 몇 날 며칠 열병을 앓고 내린 결론이다. 어찌나 야박하게 문전박대를 하던지 그날 이후로 그에게 서운함을 느낀 적은 한번도 없었다. 이유는 너의 자리가 이곳은 아니라는 거였는데 아무튼 막무가내로 나의 결심을 굽히지 않자 체념한 듯 은사 스님께 데려다 주었다. 그래서 절집에 와서도 사형사제의 인연을 맺게된 것이다.
허운 스님은 어려서부터 나이에 비해 영감이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성품이 조용하고 차분해서 그런지, 아니면 타고난 목청에 선비같이 깔끔한 외모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이에 걸맞지 않게 점잖은 스님을 가리켜 ‘영감’ 이란 별칭이 붙은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스님의 독경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그 나이에 어떻게 저런 음색을 갖추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그런 소리를 갖게되기 까지 얼마나 피나는 고통과 노력이 동반되었을까. 스님의 표현을 빌자면 목에서 핏덩이가 몇 번은 나왔다고 했다. 말하자면 어려서 목청이 터졌다는 얘기인데 그 염불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지금도 신심이 절로 난다. 예전에 허운스님이 하는 새벽 도량석 소리는 동해의 해조음(海潮音) 같았다.
중이 염불 잘하는 것이야 뭐 특별할 것 까지는 없지만 그 소리에 의해서 심신이 다 맑아지고 고요해지는 것은 늘 오래도록 가까이 보아도 변함없는 그의 성품 때문이다. 갓 스물을 넘긴 나이에 범어사, 통도사 강원에서 중강(仲講) 소임을 맡은 적이 있었는데 나이가 훨씬 많았던 학인 스님들을 통해서 그 인품이 널리 회자되기도 했다.
허운스님은 늘 자비스럽다. 그와 함께 있으면 시비가 없다. 그 누구의 험담도 한번 들은 바가 없다. 그 어떤 거창한 구호도 그의 입을 통해 들은 적이 없다. 그저 묵묵히 주위를 걱정하고 어려운 살림살이를 쪼개어 주변 어려운 스님들에게 베풀기를 주저 않는다. 워낙 시비를 가까이 않는 성격이라 도시생활이 어울릴 것 같지 않는데 도심 한가운데 있는 포교당에 자리한지도 어언 10년은 되는가 보다. 포교당이란 곳이 중으로서는 고달프고 힘든 상황이 많은 곳이다. 도시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출가 본연의 정신에서 때때로 멀어질 수 있고 환경적인 영향에 의해 내면이 건조해질 수도 있는데 주변에 대한 그의 시선은 언제나 따뜻하고 자비스럽다.
요즘 우리 절집 정서는 자비문중이란 말이 부끄러울 정도로 정치적이고 배타적으로 변해버렸다. 종단 정치상황을 비꼬는 것은 아니지만, 안타까운 마음 한구석 든든한 그늘이 되어주는 허운사형을 보면 그나마 많은 위안이 된다. 포교당의 어려운 살림을 꾸려가면서 주변의 여러 스님들에게 그 따뜻한 체온을 전하는 아름다운 모습에 절로 덩달아 마음이 따뜻해진다.
얼마 전 첫째 사형인 법주스님과 차를 마시고 있는데, 대뜸 하는 말이 “허운스님 핸드폰 하나 바꿔주라. 하도 오래 돼서 배터리 충전을 해도 한 두 시간도 못간대. 지 핸드폰이나 바꿀 일이지 웬 용돈을 이렇게 주고 가냐…”
폴더형식의 핸드폰이 나온지 오래인데, 허운스님은 아직도 탱크(?)라 불리는 검정색의 덩치 큰 핸드폰을 쓰고 있다. 포교당 주지 소임을 맡다보면 요긴하게 쓰이는 핸드폰인데 배터리가 쉽게 방전되어 여간 불편한 게 아닌가보다. 그래도 마음만 먹으면 구입하기 쉬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무거운 그것을 고집하고 있다. 보다 못한 법주사형이 바꿀 것을 권해도 괜찮다고 웃어버린다.
뭐라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 마음 씀씀이에 늘 왜소해지는 내 자신을 숨길 수 없을 때가 많다.
상주에 내려왔다가 오랜만에 셋이서 이틀 밤을 묵고 돌아가는 허운스님을 보고, 독백처럼 읊조리던 법주 사형의 말이 떠오른다.
“허운이 저 사람, 참 아름다운 사람이야.”
■함창 자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