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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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곡스님의 스님이야기]벽산스님(2/2)
수시로 용맹정진 기도
임종 세번 예언…좌탈입망

(전호에 이어)
이 말씀은 다른 분에게서 들은 어떤 법문보다 내 가슴에 오랜 여운으로 남아 있다. 스님은 일제 말기, 당시 상황에 따라 결혼을 했다. 그러면서도 조계종 승적을 취득하셨고 조계종에서 활동했다. 조계종에서 활동하는 입장에서 대처를 했다는 것은 큰 결점이 아닐 수 없었다. 시대적 상황으로 대처를 하는 것이 흠이 되지 않았던 환경에서 그렇게 하였겠지만 “중노릇하려면 여자를 조심하라”는 말씀은 천가지, 만가지 법문보다 나에게 깊은 교훈을 주고도 남았다. 젊은 시절, 내게도 이성에 대한 갈등이 없지 않았다. 이성에 대한 갈등과 그리움은 언제나 강한 숙제였다. 그럴 때마다 스님의 한숨어린 이 말씀이 욕망을 자제하게 했고, 나를 이 외길로 걷게해준 힘이 되었다.
그러나 스님의 신앙심이나 수행력은 어떤 스님보다 뒤지지 않았다. 조석 예불을 거르는 일은 한번도 없었고, 기도를 올릴 때나 불자들의 불공을 올릴 때는 그 염불소리가 얼마나 간절하던지 듣는 이들의 가슴으로부터 신심을 일어나게 했다.
스님은 자주 용맹정진 기도를 하셨다. 그럴 때면 소금 탄 물을 들고 법당에 들어가셔서 이틀, 삼일을 꼬박 새워가면서 염불을 하셨다. 어쩌다 목탁소리가 끊어져 조용하여 법당을 들여다보면 목탁은 저만치 굴러가 있고 스님은 졸고 계셨다.
“스님, 이제 주무시고 하십시오. 몸을 돌보셔야지요”하면 스님은 한숨을 길게 내시면서,
“내가 또 졸았느냐? 기도를 하려 하면 잠이 오니 어떻게 하면 수마를 이길 수 있겠느냐? 대답 좀 해보아라” 탄식을 하셨다. 그런 탄식을 보며 수행자의 길이 이런 것이구나 생각했고, 나의 게으름을 돌이켜 보곤 했다.
한때 강화 보문사 주지를 하신 적이 있다. 인사차 찾아갔더니 머리에 붕대를 감고 나무를 심고 계셨다. “왜 붕대를 감고 계십니까?” “내가 이렇게 좋은 도량에 와서 기도를 하게 되었는데 무슨 업장이 이다지도 두터운지 잠이 이렇게 오겠느냐. 잠 깨라고 때렸는데 너무 세게 때려서 깨졌구나.” 일주일간 잠을 주무시지 않고 용맹정진을 하니 당연히 잠이 올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참선곡에 ‘예전 사람 참선할 제 잠 오는 것 성화하여 송곳으로 찔렀거늘 나는 어이 방일한가’ 했는데 스님께서는 잠오는 것 성화해서 목탁자루로 머리를 너무 세게 쳐버린 것이다. 스님의 기도 정진은 이와 같았다.
오랜 세월 외국생활을 하면서 기도다운 기도 한 번 제대로 못하며 살아온 나는 스님의 용맹정진을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가끔 신심이 해이해 질 때는 스님의 깨진 머리를 회상하며 나의 머리를 쳐보기도 하지만 깨어지도록 때려 본적은 한번도 없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일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국가를 선택해 태어날 수 없고 부모를 선택할 수는 더더욱 없다. 그러나 죽을 때는 다소 선택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데 수행자의 경우에는 더욱 많은 선택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수도자에 있어서 그 죽음을 보면 그의 평생 수행을 점수매길 수 있을 것 같다. 앉아서 입적한 스님은 무수히 많고, 서서 돌아가신 분도 많다. 거룩한 수행을 하신 분들은 가고옴에 걸림이 없는 법이다.
그러나 오늘 날 우리 주변을 떠나시는 어른들의 모습을 볼 때 나의 죽음이 두려워진다. 명성을 얻었던 이름있는 분들께서 보여주신 임종마저 정말 허망하기 짝이 없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나도 이젠 살아온 날에 비하여 남은 날들이 얼마 되지 않는다.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두려움이 이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일이다.
얼마 전에 입적하신 탄성 큰스님의 경우는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제자 문도들이 병원에 입원하자고 했을 때, “이제는 갈 때가 된 것이다. 너희가 나를 병원에 입원시키면 수도자의 마지막을 망신시키는 일이다. 이대로 가려하니 그리 알아라” 하시고는 입적하셨다 하니 참으로 대단한 어른이다.
지난 87년 봄 입적하신 벽산스님은 당신의 임종을 세 번 예언하셨다. 임종 3년 전에 ‘3년밖에 못산다’ 하셨고, 3달 전에 한번 더 말씀하셨고, 3일 전에 ‘3일 뒤에 간다’ 고 하셨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입적하시기 3일 전까지도 화단을 정리하실 만큼 건강하셨으나 일을 하시다가 나무를 붙들고 갑자기 쓰러지셨다. 놀란 문도들이 병원으로 모셨지만 의식을 회복하시자 “너희가 나를 시중의 웃음거리로 만들려 하는구나. 어서 절로 돌아가자!”라고 단호히 말씀하시고 절에 오셔서 목욕하시고 장삼을 수하고 앉아서 입적하셨으니 좌탈입망(坐脫入亡)하신 것이다. 참으로 대단한 수행력이 아니고는 어려운 일이다.
모든 세속적 욕망을 산밖에 던져버리고 좌복에 앉아 올곧게 살아온 수행자로서는 갈 때도 곧게 앉아 가는 것이 소원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허덕거리지는 않고 떠나야 할 것이다. 그래서 여래가 이 세상 떠나시는 것을 ‘선서(善逝)’라 하는가 보다.
■구미 영명사 주지
2002-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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