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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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곡스님의 스님이야기]기후스님(1/2)
“내 삶은 덤, 고맙게 살아야”

묵언중 스님 종일 듣기만

그 사람을 알려면 친구를 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은 서로 통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게 되며, 취미나 관심사가 같은 사람끼리 만나기 마련이다. 업이 같은 사람들끼리 만나게 된다는 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좋은 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세속인들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산중의 수도자들에게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다. 친구의 사전적 의미는 ‘오래 두고 가깝게 사귄 벗’이라는 뜻이다. 같은 나이 또래의 가까운 사이라는 의미도 있다.
불교 수행자들은 친구라는 말보다 도반(道伴)이라는 단어를 즐겨 쓴다. 같은 길을 가는 반려(伴侶), 즉 도를 닦는 반려자라는 뜻이다. 나이 차이가 많아도 같이 수행하며 살아가는 사이에는 도반이 될 수 있다. ‘공부의 절반은 좋은 도반이 시켜준다’는 말이 있듯, 도반이 좋아야 수도를 잘 할 수 있다. 사실, 수행자들은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명예도 부귀도 모든 욕망도 산밖에 던져 버렸기에 그들에게 있어 세속적 성공은 산마루에 일었다가 사라지는 한 조각 구름 같을 뿐이다. 오직 내면의 세계에 침잠하는 그들의 삶은 외로울 수밖에 없다. 아니 외로워야 마땅하다.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수행자들이기에, 도반은 도의 길을 걷는 데 있어 거의 절대적인 존재다.
나에게도 도반이 한 분 있다. 수계도반, 강원도반, 선원도반이 한 둘이 아니지만, 내 마음속 깊이 자리한 도반은 오직 그 하나뿐이라고 생각한지 오래다. 바로 기후스님이다.
기후스님은 나보다 세속 나이가 많기 때문에 내가 형님처럼 생각하지만 우리는 강원도반 사이다. 초심시절, 강원에서 공부할 때 나는 거의 막내였고, 스님은 위에서 몇 번 째 연장자였다. 나이가 어린 편인 나는 주로 말썽을 부리는 쪽이었고, 스님은 언제나 일을 마무리하는 입장이었다.
기후스님은 안동에서 태어나 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입산했다. 어렸을 때 심한 마마를 앓았는데, 부모님은 고열에 시달리던 그가 죽은 것으로 알고 눈물과 함께 담요에 싸서 내다 버리려고 했단다. 그러나 할머니의 손자사랑이 부모의 사랑을 능가했던지, 할머니가 “버릴 땐 버리더라도 한번만 더 보자!”하시며 담요를 풀러보니 죽은 줄만 알았던 그가 동지섣달 추위에 열이 식어 살아있었단다.
기후스님은 늘 이렇게 말한다. “내 이번 삶은 송두리째 덤으로 사는 것이니, 정말 고맙게 잘 살아야 된다”고. 그래서인지 스님은 매사에 수용하는 자세로 살고 있다. 누가 무슨 짓을 해도 언제나 묵연히 바라볼 뿐 시비에 말려들지 않는다. 강원에서 같이 공부할 때, 의견이 엇갈려 시비가 길어져도 그는 다만 침묵할 뿐 말이 없다. 우리의 토론은 끝날 줄 모르다가 마침내는 모두 기후스님을 쳐다본다. 그때가 되면 그는 무겁게 입을 열어 몇 마디 간단하게 말한다. 그러면 그것은 언제나 우리의 결론이 되곤 했다.
스님은 통도사와 해인사 강원에서 사집을 몇 년 동안 가르쳤다. 그에게 배운 사람들은 한결같이 기후스님을 진정한 스승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강의를 할 때도 모르는 것은 겸허하게 모른다고 말한다.
“이 부분은 나로서는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수행해서 깨달음에 도달해야만 말 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 전에 말하는 것은 속임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가르치는 사람의 입장에서 제자들에게 모른다는 말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가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충분히 느끼게 한다. 그러므로 그가 모른다고 말할 때 오히려 분명히 안다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것이 기후스님의 인품이다.
그가 선원으로 들어가기 위해 통도사 강원의 중강을 사임할 때, 나를 불러 그 자리를 맡긴 것이 그와 나를 깊은 인연으로 묶는 실마리가 되었다. 그 뒤 내가 운흥사 주지로 있을 때 나에게 와서 몇 년을 같이 살면서 도와준 인연으로 우리는 서로 마음의 도반이 되었다.
내가 보아온 기후스님은 언제나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나라면 숨기고자 했을 일들을, 수행자로서 약점이 될 수도 있는 일들을 솔직담백하게 드러내 놓는다. 그를 보면 ‘솔직한 것은 참으로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대만에서 유학하고 있을 때 그는 산속에서 6년 묵언 수행정진을 했다. 내가 영어와 중국어를 익힐 때 그는 침묵속으로 침잠하고 있었고, 내가 포교한다고 이곳 저곳으로 다닐 때 그는 선원에서 면벽하고 앉아 자신을 다스리고 있었다. 내가 일시 귀국해 묵언중인 그를 찾아갔을 때 스님은 내 손을 잡고 말이 없었다. 나는 하루종일 말하고 그는 듣기만 했다. 돌아오는 길에 종일 말한 나의 소리는 허공으로 흩어져 버렸고, 침묵을 지키던 그의 눈빛은 내 가슴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계속)

■구미 영명사 주지
2002-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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