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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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곡스님의 스님이야기]기후스님(2/2)
매사 엄격히 자신다스려
영명사 맡기고 수행길로

(전호에 이어)
6년 동안을 묵언수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스님을 만나고 돌아온 나는 6년묵언은 못하더라도 6일만이라도 침묵해 보고자 했을 때,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 줄 알았다. 그 6일 동안 얼마나 말이 하고 싶었던지 꿈속에서 말을 해버리고 말았으니, 6년묵언 수행정진에서 나올 그 적정의 깊이를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스님이 묵언을 풀고 태백산 기슭에 은거하고 있을 때, 스님을 찾아간 내게 묵언 기간에 필담으로 심중을 표현했던 것이 큰 실수였다고 했다. 스님은 이렇게 철저하게 자신을 다스리고자 했다. 십악중죄(十惡重罪) 가운데 입으로 짓는 죄가 제일 많다. 몸과 뜻으로 짓는 죄악이 각 세가지이지만 입으로 짓는 죄는 네가지나 된다. 죄를 짓지 않으려면 입을 잘 다스려야 할 것이다.

“사람은 나면서 입에 도끼를 물고 나와서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입은 재앙의 문이다”라는 말이 있게 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자주 나는 새가 그물에 걸릴 기회가 많고,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어지는 법이다. 말은 마음의 표현이니 말이 많으면 그만큼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다. 선원의 많은 스님들이 묵언패(默言牌)를 목에 걸고 침묵속에서 수행하는 것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려는 뜻에서다.

내가 런던에서 살 때 스님은 시드니에서 살았다. 런던과 시드니는 지구상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다. 우리는 잠시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었지만 스님은 나의 수행을 지켜보며, 해가 바뀔 때면 언제나 먹을 갈아 붓으로 자신의 수행 경계를 간단히 적어보내곤 했다. 이러한 일이 그가 내 가슴을 차지하고 있는 진정한 도반이라는 생각을 들게 했던 것이다. 얼마 전 나는 런던에서, 그는 시드니에서 일시 귀국했을 때 참으로 모처럼 도반들과 한 자리에 앉았다. 모처럼 만난 우리는 이야기꽃을 피웠다. 대화의 주제는 정(定)과 혜(慧)가 하나인가, 둘인가 하는 문제였다.

“정(定)없이 혜(慧)를 이룰 수 없으니 정과 혜는 하나이다” “정으로 인하여 혜를 이룬다고 하지만 정에 머물러 있는 한 정은 혜가 아니다. 그러므로 정과 혜는 하나가 아니다”
토론은 계속되었으나, 기후스님은 짧게 한마디 할 뿐이었다.
“정과 혜가 하나인가, 둘인가 하는 것은 지금의 내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흔들림 없는 정을 습득하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경험에서 우러난 그의 그 말 한마디는 토론을 종식시키는 힘을 가졌다. 토론에 열을 올리던 우리는 재주를 부리는 앵무새 같았고, 짧게 핵심을 찌른 그는 천고에 자취를 감추는 학 같았다.

일년 전 그는 강원 제자이자 6년묵언 정진 도반이며 영명사를 창건한 주광스님을 잃었다. 그래서 시드니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해 영명사에 주석하며 운영을 해야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스님은 영국에 있던 나를 불렀다. “나는 사찰 운영에는 능력이 없소. 내가 보기에 영명사는 대사가 아니면 다시 일으키기 어려울 것 같은데 대사가 좀 도와주시오. 나는 다시 산으로 가야할 것 같소.”

그리고는 태백산으로 가 버렸다. 주지소임을 서로 맡으려 하는 이 시대 풍토에 기후스님처럼 절을 버리고 도망가는 수행자는 많지 않을 듯 싶다. 삼십여년 전 중강의 소임을 이어받았듯 이번에도 그의 청을 저버리지 못하고 나는 영명사에 엉거주춤 주저앉고 말았다.
“못 생긴 나무가 산 지키고 못생긴 중이 절 지킨다고, 나는 절에서 나이만 먹은 사람이오. 짐을 떠넘기게 되어 미안하오”

영명사를 내게 맡기며 그가 한 말의 전부다. 온 천하를 품을 수 있는 너그러움을 겸손으로 표현하는 스님은 정말 수행만을 위해 살고있는 출격장부답다는 생각이 든다. 곧게 자란 나무는 목수의 손을 피할 수 없다. 끊기어 재목으로 사용되게 마련이다. 굽고 옹이가 많은 나무는 아무 곳에도 쓸모는 없지만 오래 견딜 수 있다. 그러니 그런 나무가 오히려 아름답게 산을 지킨다. 기후스님은 바로 그런 나무 같은 분이다.

도반 같은 제자를 잃은 터라 며칠을 같이 머무는 동안 우리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누었다. 산책길에 홀로 선 그의 뒷모습에서 침묵으로 관조하는 수행자의 외로움을 느꼈다.
“어이 대사! 우리 조금만 더 살다가 인도로 떠나세. 가서 여행을 하다가 어느 한적한 길가에서 쓰러져 죽게 되면 누구인지 알 리도 없을 테고, 남의 신세도 적게 질 터이니 말일세.”
“요즈음 한국 수행자들은 죽고 나서도 신도들 돈을 거두니, 업장만 두텁게 할 뿐 부끄러운 일만 하고 있으니 참으로 걱정일세. 어쩌면 좋겠나?”

스님다운 이야기다. 나에게도 죽음은 다가오고 있는데,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까’ 생각하면 온몸에 전율이 인다.

■구미 영명사 주지
2002-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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