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행 유난히 친절하고 겸손
독경소리 성스러움 배어나
최근 티베트의 링 린포체가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전생에 달라이 라마의 스승이었다가 금생에 환생하였다는 것을 그들의 전통에 의해 증명받은 분이다. 그의 방문은 불교계는 물론 각계의 이목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만에서 유학하고 있을 때 티베트의 록가(Loggha) 라마를 알고 지내게 되었다. 그는 일곱 살이 되던 해 부모를 따라 달라이 라마가 머물고 있는 곳으로 갔다가 그 해에 출가, 엄격한 교육을 받고 라마가 되었다고 한다. 몇 해 전부터 대만에 와서 티베트 불교를 전하며 조국의 독립을 위한 모금운동을 하고 있었다.
유학생활을 하던 나 역시 경제적으로 넉넉치 못했지만, 내가 본 그들의 생활환경은 너무나 처참했다.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은 물론 아니었고, 세면장이나 주방환경이 말할 수 없이 열악했다. 침구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좁은 공간에서 여러 명이 새우잠을 자야하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열악한 환경을 조금도 불편해 하지 않았다. 언제나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며 조국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그들에겐 오히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여유로움이 충만했다. 누구보다 간절했던 그들의 기도와 자연스럽게 넘쳐흘렀던 자비심 어린 모습을 나는 잊지 못한다.
록가 라마는 유난히 겸손하고 친절했다. 그들 사회에서는 물론 한국 스님들을 만날 때에도 연장자에겐 예절 바르고 아랫사람에겐 자상했다. 입으로는 틈이 있을 때마다 만트라를 외웠고, 교리에 대해 토론할 때는 막히는 바가 없었다. 삼보에 대한 신심도 지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잔잔하면서도 비굴하지 않은 수행인의 기상을 지녔던 스님을 만날 때마다 어디에서 저러한 기품이 나올까 생각하곤 했다.
어느 해 겨울, 록가 라마와 나는 그의 도반인 잠양(Jamyang) 라마와 함께 한국을 여행했다.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를 비롯해 불국사, 법주사 등을 방문했다.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는데, 해인사에 갈 때는 눈덮인 가야산을 얼마나 좋아하던지 나까지 덩달아 어린이가 된 기분이었다. 아마 어릴 때 살았던 히말라야를 회상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여행으로 인해 피로했지만, 그들은 저녁 잠자리에 들 때면 항상 지니고 다니는 패엽(貝葉)경전을 독송했다. 일곱 살 때 수계하면서 스승으로부터 전해받은 경전을 삼십여 년이 지나도록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읽어오고 있다고 했다.
잠자리를 준비한 뒤 요 위에서 머리맡의 승대(僧袋 : 스님들이 사용하는 천으로 된 가방)를 향하여 티베트식으로 길게 엎드리는 오체투지(五體投地) 삼배를 했다. 그리고는 승대에서 경보(經褓 : 경전을 보호하기 위하여 싸는 보자기)에 싸인 경전을 풀러 무릎에 얹어놓고 읽어 내려갔다. 글자가 잘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곳에서도 거의 외워버린 듯, 눈을 감은 채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읽는 그들의 독경소리는 매끄럽고 자연스러웠다. 그들의 독경 소리엔 사람의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게 하는 형언하기 어려운 성스러움이 배어 있었다.
독경을 마치고 경전을 경보에 다시 싸서 승대에 넣어 머리맡에 두고 독경하기 전에 한 것처럼 길게 엎드려 삼배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독경을 하고 정성을 다하여 삼배를 한 뒤 잠을 자게 되면 어찌 그 잠자리가 맑지 아니하겠는가. 아무리 수행인이라 하여도 잠들고 난 뒤에는 몸과 의식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가 없다. 삼매가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는 수행자라면 잠이 들고 난 다음까지 맑고 조용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고 싶을 것이다.
그들의 행동거지가 얼마나 점잖고 거룩하든지 나는 그때 받았던 감동을 지금까지 생생하게 지니고 있을 정도다.
여행을 마치고 대만으로 돌아온 얼마 뒤, 록가 라마는 나에게 연세드신 라마 한 분을 자신의 사숙(師叔)님이라며 소개하며, “노스님께서는 한평생 인도 성지순례를 하셨습니다” 라고 했다.
노스님께서는 나를 보시더니 “스님은 참 좋겠소. 좋은 나라에 태어나서 부처님 공부를 하니 얼마나 좋은가”하며 한국에 태어난 나를 부러워했다.
“한평생 성지순례를 하셨다면 인도에 몇 차례나 다녀오셨는지요?” 내가 묻자 노스님은 웃으시면서 “한 번밖에 다녀오지 못했지”라고 대답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하자 록가 라마가 이렇게 부연설명했다.
“노스님께서는 스무 살 때 티베트를 출발하여 인도 전국을 순례하고 몇 해 전 이른 살이 되던 해에 돌아오셨습니다. 인도 한 번 다녀오는 데 오십 년이 걸린 것이지요.”오십 년이면 한평생이다.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계속)
■구미 영명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