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회에 아낌없는 지원
신도교육, 노인복지에도 관심
(전호에서 계속) 스님과의 특별한 인연은 오랜 세월 지속되고 있다. 내가 대구 주변의 시골 절에서 주지소임을 보고 있을 때, 스님은 나를 불러 청년회 법회를 맡아서 설법을 해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하셨다. 그 뒤 매주 수요일 저녁 청년법회를 5년 정도 한번도 빠짐없이 계속하게 되었다.
나는 그 청년회 법회를 성의를 다해 준비하고 이끌었다. 사실 청년들은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갈 주역이라는 점에서 미리 가꾸어야 할 중요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대다수 사찰에서는 청년법회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경제적으로 당장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돌보지 않는다면 내일의 우리 불교는 어디에 희망을 둘 것인가. 젊은이가 없는 집안은 대가 끊어지고 만다. 청년불교를 활성화시켜야 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경희스님께선 청년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여러 가지로 청년들을 도와주고 지원해 주기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청년회에서 법문을 할 때면 거의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해 내가 하는 말을 경청하셨다. 그리고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법문이 끝나면 내 설법이 부처님법에 어긋나지는 않았는지, 말이 너무 빠르거나 행동이 경솔하지는 않았는지, 어떤 점을 고쳐야 하는지 등등을 여쭙곤 했다. 그때마다 스님께선 어떤 점은 좋고 어떤 점은 어색하다고 자세하게 말씀해 주셨다. 스님의 그러한 성의있는 지적은 내가 설법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스님의 격려와 칭찬이 나로 하여금 더욱 성의있는 설법준비를 하게 했고, 해를 거듭할수록 설법도 깊이를 더해 갔다. 그 결과 그 청년회에서 많은 청년들이 출가해 비구, 비구니스님이 되었다. 10여 명도 넘는 그들은 지금 전국에서 정진하며 포교하고 있으니 모두 스님께서 청년회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베푸신 은덕이라고 생각한다.
나중에는 매월 신도법회에도 나를 청해 법문하게 하여 여러 해를 계속했다.
스님은 항상 말씀하셨다. “무엇이든 스님이 하겠다면 다 도와드리겠으니 말씀하십시오. 장가가는 일만 빼고 어떤 일이든 도와 드리겠습니다.”
그 말씀처럼 스님은 내가 어려울 때 여러모로 나를 도와주셨다. 내가 힘들어 할 때면 어느새 먼저 알고 불러서 정중하고 간절하게 중노릇 잘할 것을 신신당부하시곤 했다. “스님은 종단의 보배같은 사람입니다. 스님같은 사람이 설법을 잘 해서 부처님 은혜에 보답해야 합니다.”
몇 년을 두고 해마다 명절이면 내가 거주하는 절의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라고 명절 음식을 정성스레 보내주시곤 했다. 철이 바뀔 때면 장삼이나 옷을 준비하여 주곤 했는데, 그럴 때면 반드시 잊지 않고 중노릇 잘할 것을 간곡히 당부하셨다.
“출가 생활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구스님이 되려면 몇 생을 수도해야 합니다. 숙세(宿世)의 선근이 있어야 하지요. 더욱이 스님은 설법을 잘하니 선근이 있지 않으면 어려운 일입니다. 부디 공부 게을리하지 말고 열심히 수행해서 불조의 은혜에 보답해야 합니다.” 스님의 말씀이 얼마나 간절하던지, 그러한 간절한 당부가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기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경희스님은 전국에서 가장 먼저 창설된 대구불교사원주지연합회의 발기인이다.
“우리 스님네가 신도들에게 무엇인가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절마다 스님들이 각기 다르게 가르치니 신도들이 우왕좌왕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됩니다. 그러니 신도들을 한 곳에 모아서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라고 늘 말씀해 오늘의 대구불교사원주지연합회와 대구불교교육원이 있게된 것이다.
스님은 솔선수범하여 보시하고, 사심없는 결정으로 대구불교연합회를 운영함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대구에는 불교계에서 운영하는 양로원이 한 곳 있다. 화성양로원이다. 본래 대구의 몇몇 스님들이 정재(淨財)를 보시하여 건립한 것이지만, 운영 미숙으로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 버리고 만 것을 가슴아프게 생각하다가 스님께서 인수해 지금도 운영하고 있다.
칠팔십 명의 노인들을 돌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스님은 “노인들을 업신여기지 마라. 우리도 언젠가는 늙고 기운 없어지면 다 저렇게 된다. 자비심으로 잘 보살펴 드려야 한다”면서 자주 양로원에 들려 노인들의 손을 잡아주시곤 한다. 자신의 이익이나 명예만을 돌보며 사는 세상에 스님같이 살아가는 수행자는 많지 않다. 자신의 건강이나 안위를 돌아보지 않고 사회와 이웃에 따뜻한 마음을 베풀며 살아가는 스님은 우리 사회의 소금이며 목탁이다.
나는 은사나 스승에게도 못하는 말을 경희스님에게는 스스럼없이 하곤 한다. 스님은 내게 수행자로 살아온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게 하고 오늘 서있는 자리를 살펴보게 하는 선지식으로 남아 가장 진실한 말씀을 해주시기 때문이다.
■구미 영명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