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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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곡스님의 스님이야기]혜각스님
병풍 진 노스님 차로 모셨더니
차탄곳 되돌아가 다시 걸어와

오늘날 우리는 물질의 풍요 속에 살고 있다. 풍요로움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에게 가난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되었으며 갈수록 편리함만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풍요로움과 편리함에의 추구는 세속을 떠난 산속 수도자들의 세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깊은 산 속 암자에도 문명의 이기들은 어김없이 찾아와 깊숙이 들어앉아 있다. 물질의 풍요가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말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풍요로운 물질의 세계에 길들여지다 보면 예외 없이 맑고 투명해야 할 정신이 황폐해지기 마련이니 그것이 걱정이다.
며칠전 통도사 성전암에 살고 있는 도반을 찾아가 하루 머물다 왔다. 우리는 주로 가난했지만 마음은 오히려 넉넉했던 지난 시절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도반스님이 들려준 혜각 노스님에 대한 이야기다. 십여 년 전 어느 날, 도반스님은 부산에서 일을 보고 통도사로 돌아오는 길에 병풍을 지고 걸어서 귀사하시는 혜각 노스님을 만났다. 얼른 차를 세우고 병풍을 받아서 뒷좌석에 싣고 스님을 차에 태워드렸다. 절 가까이 이르렀을 때 노스님께서 “고맙소. 이제 다 왔으니 그만 내려주시오.” 하시길래 병풍을 내린 다음 인사를 드린 뒤 저녁공양을 마치고 산책을 나갔다. 그런데 저만치서 노스님께서 병풍을 지고 걸어오시는 것이 아닌가! 노스님께서는 차를 타고 왔던 삼십 리도 넘는 길을 되돌아가서 거기서부터 다시 걸어오신 것이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하고 박장대소하며 웃었다. 그러나 웃어버리고 말기에는 너무나 큰 무엇이 내 가슴에 남았다.
도반스님은 그 일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훗날에야 안 일이지만 그 병풍은 노스님께서 평소 존경하는 석정스님이 그려주신 것이었다. 노스님께서는 그림을 그려준 석정스님에 대한 존경심과 작품을 정성껏 대하는 마음으로 걸어 들어오는 길이었다. 편리함만을 좇아 그것을 자동차에 가볍게 싣고 오기에는 노스님의 마음이 허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동차를 태워드리겠다는 후학의 성의를 무시하고 싶지 않았기에 차를 탔다가 되돌아서 다시 걸어온 노스님의 이야기는, 정성은 생략된 채 편리함에만 길들여진 오늘날의 우리 출가자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혜각스님은 뛰어난 단청기능을 보유하신 스님이셨다. 통도사의 단청이 아름다운 것은 모두 혜각스님의 원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통도사 뿐 아니라 상당히 많은 사찰의 단청이 스님과 스님의 제자들에 의해 단장된 것이다.
다른 업자들이 천만원을 요구하는 일거리를 스님은 오 륙백만원이면 된다고 하셨고, 오백만원에 계약하면 육 칠백만원어치 일을 하셨다. 그리고는 다른 어떤 업자가 일한 것보다 더 정성스럽게 일을 처리했고 아름다운 단청을 만들어 내셨다. 그것은 스님께서 손수 버팀목을 메고, 높은 곳에까지 올라가 처마를 쳐다보며 일을 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혜각스님은 생전에 한번도 법상에 올라 설법하신 적이 없다. “스님께서는 어찌하여 법상에 올라 법문을 하시지 않는지요?” 여쭈면, “나는 법상에는 못 올라갑니다. 그러나 법상보다 더 높은 처마 끝에는 매일 올라갑니다”하며 웃곤 하셨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팔십이 넘도록 그림통을 메고 사다리에 올라 온종일 추녀끝에 매달려 단청 그리는 일에 몰두하시던 스님의 모습은 어느 큰스님의 법상보다도 장엄했고 아름다웠다.
스님은 일을 하시다가 떨어져 여러 번을 다치셨다. 다른 사람 같으면 죽거나 크게 다칠 높이에서 떨어졌지만 마치 신장님이 받아주시기라도 한 것처럼 많이 다치지 않으셨으니 스님의 정성과 신심이 지극하셨기 때문이리라.
일을 하시고 돈이 조금 생기면 반드시 서화나 골동품 같은 것을 사서 모으셨다. 그리고 그것을 조금도 아끼지 아니하고 통도사에 기증했으니, 오늘날 불교계 제일인 통도사박물관이 혜각스님의 기증품에서 그 기틀을 잡은 것이나 다름 없다.
오늘날 우리 승가엔 혜각 스님 같은 분이 없어 허전하다. 법문은 하지 않았지만 당신이 하는 일에 정성을 다했고, 존경하는 분의 그림을 병풍으로 만들어 수십 리 길을 지고갈 만큼 순수했던 진짜 스님은 없다. 배고프고 고달픈 일은 아무도 하려 들지 않는 풍토가 되어버린 지금, 어쩌면 혜각스님의 이러한 이야기는 고전으로나 남을 전설이 되어버렸는지 모르겠다.
가난한 수행자의 길에 자긍심을 가지고 살았던 저 푸르렀던 지난 시절이 그립고, 한평생 화려한 법상은 없었어도 부처님 일에 대한 지극한 정성과 간절한 신심을 지니고 살다 가셨던 혜각 노스님 같은 선지식이 그립다. 물질의 풍요가 수행자의 속살림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건만 어느덧 그것에 익숙해진 나 자신이 부끄럽기 때문이다. ■구미 영명사 주지
2002-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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