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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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곡스님의 스님이야기]평곡스님
“평생 대장경 지키겠다” 서원
“열반당으로 옮겨 달라” 입적

내가 스님을 처음 뵌 것은 60년대 중반 스님께서 입적하기 한두 달 전이었다. 평곡스님은 통도사 스님이었다. 스님이 해인사에 언제 오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팔만대장경을 지키겠다는 원력을 세우고 평생 그 일을 하다가 돌아가신 분이다. 대중이 잠든 시간에 장경각 야경을 돌았기 때문에 스님을 ‘야경스님’이라고 불렀다.
당신의 임종이 가까워짐을 아신 스님은 돌아가시기 며칠 전 열반당(涅槃堂)으로 거처를 옮겨 달라고 부탁하셨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 당시 해인사에는 열반당이 있었다. 열반당은 성철스님이 계시던 퇴설당 선원 아래, 관음전을 한 면으로 하여 건물들이 ‘□’자 구조로 둘러선 곳 한 모퉁이에 있었다.
관음전은 강원의 윗반 스님들이 사용했고, 해인사에서 열렸던 종회에서 총무원장으로 선출된 영암스님의 방이 그 옆에 있었다. 그 곁에 지월, 자운, 홍교 스님, 그리고 평곡스님의 방이 차례로 있었다. 그 맞은 편에는 채공(菜供)들의 반찬 일을 도와주던 본연성 보살의 방이 있었고, 그 옆에 법정스님의 방이 있었다. 관음전의 뒤편 맞은 쪽으로 곡루(穀樓)가 있었고 법정스님의 방과 곡루 사이에 한 사람이 누울만한 방이 있었는데 그 방이 바로 열반당이다. 대중이 많이 모여사는 곳에 임종이 다가온 스님이 스스로 그 방에 들어가 조용히 임종을 맞도록 준비해 놓은 장소다. 그러므로 그 곳은 사찰에서 가장 한갓진 곳에 있었다.
일생을 수행 외길에서 오직 생사문제라는 대사를 해결하기 위해 살아온 수도자들이 자신의 임종을 눈앞에 두고 조용히 숨을 거두기 위해 들어가는 방이 열반당이다. 그곳은 한번 들어가면 다시 나오지 못하는 방이기도 하다. 그 방문이 이승에서 저승으로 연결되는 곳이라고 생각되던 어린 사미 시절, 도량을 뛰어다니다가도 그 방문 앞을 지날 때는 다소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괜히 걸음이 조용해지곤 하던 곳이었다.
세속인들에게 죽음은 모든 것의 끝남을 의미하지만, 수행자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다음 생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열반당에 들어온 사람이 있게 되면 왕생극락을 발원하는 대중들의 나무아미타불 소리가 끊어지지 않고, 누구나 평소보다 더욱 진지하게 자신의 삶과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임종을 맞이한 사람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당시 법정스님은 화엄경을 독경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나에게 유별나게 숭고해 보였던 것도 바로 그 옆방이 열반당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즘엔 수행자들도 임종이 다가오면 병원으로 가곤 한다. 평생을 생사문제 해결을 위해 공부한 수행자들에게 죽음이란 그다지 유별난 것이 아닐 법도 한데 병원으로 실려가는 것을 보면 나도 언젠가는 죽음을 맞아야 할 수행자로서 무언가 마음이 석연치 않다.
평곡스님은 평생을 이름없이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지키다가 가셨다. 그렇게 살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크나큰 원력이 아니면 어려운 일이다. 수행자로서 이름을 드날리려 했다거나 수행마저도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이었다면 그렇게 이름없이 자신을 버릴 수 없었을 것이다.
나의 은사스님이 통도사 스님이어서 본사가 같은 평곡스님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문안을 자주 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따라 갔었는데 한번은 성철 방장 스님께서 들르셨다.
“무섭능교? 무서울 것도 없데이. 죽는 기나 사는 기나 매 한가지 아잉교? 화두를 챙겨야 합니다. 다른 데 정신 쓰지 말고 우째든지 정신 바짝 차리고 화두를 챙겨 보이소. 화두 말고 딴 길은 없는 줄 알아야 합니다” 성철스님께서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마지막을 경책해 주셨다. 스님은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감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스님은 열반당으로 자신을 옮겨 달라고 거듭 부탁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종에 이르러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정신이 남아있다는 것은 그것만해도 대단한 정신력이다. 큰스님이라고 불리던 분들도 임종에 이르러 힘들어 하다 돌아가시는 경우가 있는데 비하여 이름 없이 한평생 장경각을 지키다 가신 스님의 모습에서 욕망 없이 살다 가는 수행자의 아름다운 임종을 보았다.
평곡스님은 조용하게 마지막을 맞았다. 자신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죽음의 방으로 들어가는 심정은 어떠했을까, 살아서는 다시 나올 수 없는 방문을 열고 들어갈 때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 시절 스님을 뵈며 그런 생각을 했었다.
요즈음 사찰에서 열반당을 보기 어려워 아쉽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에게 자신을 잘 챙기라고 조용한 장소를 마련하는 것은 깊은 의미가 있다. 죽음에 승속이 따로 없겠지만 목숨 걸고 수행해온 수도자라면 임종에 다다라 마지막 순간까지 놓치지 않고 자신을 관찰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구미 영명사 주지
2002-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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