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도 안 거르고 은사 문안
즐기는 僧笑 “시간지났다”거절
홍법스님은 통도사 방장 월하스님의 제자이며 서울 구룡사 정우스님의 은사스님이다. 나에게는 사숙님이고 통도사 강원 스승이셨다. 내가 강원생활을 하던 60년대 후반은 모든 것이 모자라던 가난한 시절이었다. 그러나 홍법스님같은 진실한 수도자를 만날 수 있었고, 때묻지 않은 양심을 지녔던 스님들을 뵐 수 있었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큰 나무 밑에서는 큰 나무가 자랄 수 없지만, 큰 사람 밑에서는 큰 사람이 난다’는 말이 홍법스님과 정우스님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홍법스님의 어른 모시는 모습은 참으로 놀라웠다. 스님은 조석 예불을 마치고 나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반드시 당신의 스승이신 월하스님의 방으로 가서 문안을 드렸다. 우리 반에는 스님의 직계 상좌는 없었지만 조카 상좌들이 몇 있었는데, 스님은 우리들에게 “너희들도 어른들께 문안 좀 드리면서 살아라. 어찌하여 집안에 어른이 계시는데 문안을 그렇게 가지 않느냐?” 꾸중을 하셨지만, 우리들의 어른 문안은 길어야 며칠이었고, 일주일을 넘기지 못했다.
한 도량에서 하루 세끼 공양을 같이 하며 얼굴을 마주 보고 사는 은사스님에게 매일 문안을 드리고, 은사스님의 말씀이라면 무슨 일이든 받아들이고 따르던 스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스님은 키가 크셨고 눈이 커서 겁이 많아 보였다. 장삼을 입고 도량을 다닐 때는 뒤꿈치를 들고 소리나지 않게 다니셨다. 걸음걸이에서도 수행자의 기품이 배어 있었으니, 그분이 모든 것을 얼마나 인욕하고 하심하는지 알 수 있었다.
60년대 후반은 빨래할 때마다 다려 입어야 했던 광목이나 무명 베옷이 나일론에 밀려 버림받던 시절이었다. 어린 사미들은 손질하기 힘든 광목옷보다 물에 집어넣었다가 건져서 툴툴 털어 잠시 바람을 쏘이면 그대로 입을 수 있는 나일론 옷을 더 좋아했다. 그래서 백프로 나일론 옷인 다우다가 생기면 그렇게들 좋아하면서 서로 자랑하였고, 떨어지지도 않은 광목옷을 버리곤 했다.
스님께선 도량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버려진 무명옷들을 주워놓곤 하셨는데, 하루는 꽝꽝 얼어가는 겨울 계곡물에 혼자 빨래를 하고 계시길래 내가 해드리려고 다가갔더니 한숨을 쉬시며 그러셨다.
“그냥 두세요. 요즘 스님들은 시주 물건 무서운 줄 모릅니다. 보세요. 멀쩡한 옷을 이렇게 버리다니, 이렇게 중노릇해도 되는 것입니까? 정말 너무합니다.” 주워놓은 옷들을 차가운 계곡물에 하루종일 빨아서 풀먹이고 다려서 개어 두었다가 행자들이나 옷이 없는 객스님들에게 나누어 주셨던 것이다.
라면이 처음 나왔던 그 때, 라면 공양이 들어오면 그것은 특별 공양이었다. 우리는 저녁공양을 집단으로 거부(?)하고 빈 발우를 폈다가는 거두고 모두 급한 걸음으로 천자각(天子閣)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커다란 가마솥에 물을 끓이고 라면을 삶으면 그 냄새가 그렇게 구수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부엌은 홍법스님의 방과 붙어있어 냄새가 진동했으니 스님께서 모르실 리가 없었다.
“대중이 대중공양을 안하고 이렇게 별식을 만들어 먹으면 대중을 어떻게 통솔합니까? 그 삶는 것이 무엇입니까? 냄새가 너무나 역겹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렇게 구수한 냄새가 스님에게는 역겹다니…. 스님은 보통사람이 아닌가보다 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라면을 새로 개발된 국수라고 말씀드리면서, ‘국수는 스님들 모두 좋아하시니 스님께서도 좀 드시라’ 하면 방문을 닫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일 없습니다. 출가인이 이 시간에 라면을 먹으면 되나요? 저녁 공양 뒤에는 귀신들이 먹는 시간인데 수행자가 그 시간에 무엇을 먹으면 귀신이 좋아라 달라붙습니다.”
스님들은 대부분 국수를 좋아한다. 불가에서는 국수를 승소(僧笑)라고 하는 것도 스님들이 국수를 보면 웃음을 머금는다고 하여 생긴 이름인 듯하다.
홍법스님께서도 국수를 유난히 좋아하셨다. 그렇게 국수를 좋아하면서도 시간이 아니라 하여 드시지 않고 깨끗이 치우라고 당부하면서 방문을 닫으시던 스님께 얼마나 죄송스러웠는지….
어느 날 강의 시간에 색이 바랜 사진 한 장을 들고 오셨다. 지관스님, 월운스님, 각성스님 그리고 홍법스님께서 운허스님을 가운데 모시고 통도사 적멸보궁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거기에는 흰 글씨로 ‘강원대교 졸업기념’이라고 적혀 있었다. 위의 스님들은 통도사 강원에서 운허스님을 모시고 몇 년을 공부하여 졸업사진까지 찍었으나, 마침 운허스님께서 해인사로 가시는 바람에 졸업식을 해인사에 가서 하게 되었다. 그래서 해인사 강원 졸업 1기생이 통도사 강원 1기생인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계속)
■구미 영명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