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치 어긋남없는 여법함으로 일관
“순간순간 자신의 발 밑 살피라”
내가 살아 있는 동안 / 다 미칠 수 있는 일이란 / 이 세상에 없다.
진정코 이 세상이란 / 몇 천년이나 걸려야 / 집 한채 지을 수 있음이여
이 시는 고은선생의 ‘눈물을 위하여’이다. 한국이나 중국의 선사상이 한 생에 몰록 깨달을 수 있다는 돈오(頓悟)사상이라면 인도의 선사상은 자타카이야기를 비롯해 소승사과(小乘四果)의 수도론에서 윤회를 하는 삼계(三界)가 설정되어 있다. 그런 점으로 볼 때, 인도선사상은 한 생이 아니라 몇 생을 거듭난 수행을 통해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점수(漸修)사상이다.
이처럼 전세(前世)에 닦은 수행의 결정체로 지혜와 복덕을 그대로 드러내고 계신 스님이 계시다. 불가에서 회자되는 말 중 ‘지혜가 아무리 수승해도 복덕이 없으면 대중(학인)이 모이지 않는 법’이라 했다. 그 어른은 청도 운문승가대학장 명성스님인데, 내가 중노릇하는데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해주시는 선지식이기도 하다. 10년을 훌쩍 넘기고 그리고 3년, 저 시간의 강을 넘어 이 제자는 절집밥만 축내는 ‘밥충’으로 남아있건만, 스님께서는 30년 넘게 젊은 학인들을 보듬는 넉넉한 품의 호거산처럼 여여한 모습 그대로다.
만공스님으로부터 ‘본공(本空)’이라는 법호를 받은 비구니스님이 계셨다. 본공스님은 만공스님으로부터 인가를 받았을 만큼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고, 효봉·한암 등 선지식을 친견하며 평생을 제방에서 치열한 구법행각으로 일관한 수행자셨다. 1955년 본공스님께서 해인사 국일암에 머물던 시절, 손주상좌로 명성스님을 받아들였다. 이때 본공스님은 명성스님이 ‘훗날 대강백이 될 것’을 미리 관하셨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나는 스님을 생각할 때마다 근엄하고 엄격한 스승의 모습은 떠오르지 않는다. 스님을 모시고 오래 살지는 못했지만 학자의 모습으로 보다 인간적인 체취가 물씬 풍기는 어른으로 여전히 내 가슴에 남아있음이다.
운문사 도량에 가 본 사람이라면 옛 절 다운 풍모는 느끼지 못할 것이다. 명성스님께서 도량전체를 가꾸고 불사를 잘 하여서 운문사는 그 어느 곳보다도 질서정연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모습 뿐 아니라 운문사는 규칙이나 제도도 짜임새가 완벽하다. 나는 이러한 운문사의 풍모가 학장스님의 평소 수행관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운문도량의 질서처럼 스님께서는 수행자의 길을 벗어나 본 적이 없을 만큼 당신관리에 철저하고 한치 어긋남이 없는 엄격함으로 평생을 일관하셨다. 스님은 ‘미리미터’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한치 어긋남 없는 평소의 풍모에서 붙여진 별명이다.
보통 일반인들은 약수터나 수각에 바가지를 엎어둔다. 운문사 도량 수각에서는 바가지를 엎어두어서는 안 된다. 청소를 할 때도 의자 등을 책상 위에 엎어두거나 신발을 엎어두는 경우 스님께서 보시면 경책하신다. 스님께서는 “사람도 거꾸로 세워두면 온전한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느냐? 모든 우주 질서는 가지런해야 하고 바르게 서 있어야 한다. 상(上)을 향해 바르게 두는 것도 다 수행”이라고 하신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운문사에서 금강경을 공부할 때다. 스님께서 수업 전에 우연히 학인들 지대방에 들어오시게 되었다. 큰 방과 벽을 사이에 두고 있는 지대방은 학인들이 몸이 불편할 때 쉬기도 하고 자유로이 대화를 나누는, 휴게실이나 다름없는 장소이다보니 물건들이 어지럽게 놓여있다. 어지러운 모습을 보신 스님께서는 “어찌 수행하는 학인들이 정리정돈이 되어 있지 못하느냐, 마음을 이렇게 놓고 살아서야 되겠느냐” 걱정하셨다.
운문사에서는 예불 후 큰 방으로 돌아갈 때도 줄을 맞추어야 하고 가사를 수할 때도 바르게 해야 한다. 흩어진 가사를 추스리고 줄을 맞춤으로써 “수행자는 수시로 자세를 바르게 함으로써 끊임없이 자신의 경계를 늦추지 아니하며 순간 순간 자신의 발밑을 살피라(照顧脚下)”는 스님의 말씀을 늘 간직하고 살기 때문이다.
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라고 하지 않는가.나무를 심듯 학인을 지도하는 스승다운 사상으로 제자들에게 평생을 배부르게 살 수 있는 지혜를 일러주셔야 한다는 것이 당신의 지론이다. 최근 운문사를 졸업한 후배스님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스님께서는 운문사 불사를 할 때 학인들에게도 불사비를 내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학인이 무슨 돈이 있겠느냐마는 천원이라도 불사비를 내어, 지혜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수행자로서 보시를 행해 복덕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