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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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스님의 스님이야기]설송스님
‘늦깎이’지만 쉼없이 수행정진
현재 미얀마서 위빠사나 전념

황금과 백옥만이 귀한 줄을 알지 마소 / 가사 옷 얻어입기 무엇보다 어려워라 / 이 몸을 알고 보면 서천축 스님인데 / 무엇을 반연하여 제왕가(帝王家)에 떨어졌나 / 십팔년 지나간 일 자유라곤 없었도다 / 내 이제 손을 털고 산속으로 돌아가네

위 시는 순치황제 출가시의 일부다. 중국 명나라 말, 여진족의 누루하치가 청나라를 세우고 자신을 청태조라 칭했다. 삼대 왕 세조는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중국 전역을 통일했다. 이 세조(호순치)가 위의 출가시 주인공인데 재위기간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전쟁터에 살면서도 선(禪)에 관심이 깊었다. 결국 진리를 구하고자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였다. 나는 이 출가시를 불교대학 강의 때마다 수업시간 전 학생들과 함께 독송할 정도로 좋아한다. 이 시를 독송할 때마다 오버랩되는 스님이 있다.
비구 설송스님이다. 스님은 동국대에서는 1년 선배로 당시(91년) 재가불자였고 만학도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집안의 어려움으로 생활전선에서 일을 하다, 30이 훌쩍 넘어 검정고시, 고검·대검을 치른 뒤 34살에 대학에 입학하였다. 스님의 처음 인상은 참 힘들게 살아왔구나가 저절로 느껴질 정도로 역경의 세월이 얼굴에 드러나 있었다. 대학 4년을 올 장학금으로 졸업하는 동시에 출가를 했다. 출가후 은사스님의 배려로 대학원에 적을 두었는데, 학문에 대한 열정이 보통 아니었다. 스님은 어학실력을 갖춘 뒤 일본 용곡대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1년간 유학도 다녀왔다.
스님의 학문에 대한 지견을 알고 있던 터라, 언젠가 “스님은 敎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할 것”이라고 하니 스님은 “처음 출가는 敎로부터 발심하였으나 교는 이제 접어두고, 내 일생일대의 목숨을 걸어놓고 참선으로 재출가할 겁니다”하였다. 일반적으로 학승에게 문제점은 교에 대한 집착없이 수행으로 승화시키지 못하고, 교에 천착한다는 점이다. 스님의 확고한 참선정진에 대한 결심을 듣고도 설송스님이 ‘敎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할 것’이라는 고정된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스님은 대학원을 졸업한 뒤, 남방의 위빠사나선을 하겠다면서 석사논문도 ‘사마타-위빠사나(止觀)에 대한 연구’를 썼다. 그러던 스님이 마음이 변한 모양이었다. “한국스님으로서 현 한국선방에서 지향하는 간화선 수행을 해보지 않고 남방불교 수행을 한다면 뿌리를 잃어버린 것 같아 한국에서 몇 년 안거를 성만하고 남방선을 해야겠다”고 하였다. 그러더니 몇 년을 한번도 거르지 않고 안거에 들어갔다. 해제 때도 산철결제에 들어가 정진하는가 하면, 어느 산철에는 기도정진하기도 하였다. 안거 3철정도를 마쳤을 무렵 인사동에서 스님을 만났다. 스님은 너무도 행복해 보였다. 환희심으로 가득한 얼굴이었다.
스님은 “선방에서 정진하는 것보다 더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소? 조금만 더 일찍 불법을 만났더라면 좋았을 걸… 어쨌든 남들보다 늦게 출가했으니 배를 들여 수행해야 겠지요. 내가 무슨 복에 이렇게 수행할 수 있는지, 부처님 은덕이 참으로 지중합니다.” 스님의 이 말을 듣고 참으로 내 자신이 왜소함을 실감하였다. 나는 조금 이른 나이에 출가한 탓인지 초발심의 정진이 희석되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불가에서 늦은 나이에 출가하는 것을 ‘늦깎이’라 한다. 늦깎이란 말은 세속에서 살아온 습에 너무 푹 젖어 쉽게 중물이 들지않는 경우를 지칭하지만, 늦게 출가해 열심히 정진하는 스님도 많다. 구산스님, 효봉스님이 대표적인 경우다. 효봉스님은 38세 늦은 나이에 출가해 쉼없이 좌복에 앉아 정진했는데 어찌나 열심히 했는지 엉덩이가 짓물러 진물이 흐르는 것도 모르고 참선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설송스님은 출가도 늦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일념으로 정진하는 올곧은 수행자로서 저 앞서서 나아가고 있었다.
스님은 지금 미얀마에서 위빠사나 수행에 전념하고 있다.
승가의 살림살이가 비구스님들에게 기울어져 있는 종단 현실이고, 출가자나 재가자 모두 차별성을 인식하지만 균형을 찾기란 쉽지 않다. 나 또한 세속의 바람때문인지 페미니즘 사상이 강한 편이다. 출가년수가 높아질수록 ‘법랍’이라는 훈장을 가슴에 달고 출가승이라는 상(相)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이럴 때 출가본연의 자세로 되돌아가 일대사 인연(一大事 因緣)을 해결하겠다고 사기충천했던 출가했을 당시를 되새기는 떠올려 본다.
■서울 니련선하원 한주
2002-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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