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바드大서 비교종교학 공부
불교 발전에 이바지할 재목
“중이 글공부하면 신세 망치는 줄 알아라”
“중이 산속에 들어가 공부해야지 무슨 세속공부?”…
학문하는 스님치고 주위에서 이런 말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불가에서는 학문하는 자체를 달갑게 여기지 않거니와 승려가 학교에 적을 둔다는 것은 세속으로 나아가는 지름길로 치부돼 왔다. 요즘은 불교학에 대한 인식도 높아지고 스님들이 학문하는 것에 대해 이해도가 커졌지만, 아직도 곱지 않은 시선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색즉시공(色卽是空), 생사 즉 열반, 번뇌 즉 보리 등 세속과 불계의 이분법적 태도를 배제해야 하는 불이법(不二法)을 내세우면서도 이론만큼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선(禪)과 교(敎)를 병립하는 것이 완전한 수행이라 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하다 보니 자연히 선객들은 문자를 멀리하고, 학문하는 스님들은 도시생활 속에서 포교까지 겸하다보니 선교의 병립이 원만하지 못하다. ‘불립문자’는 부처님이 깨달으신 진리를 손바닥 위에 펴 보일 수도, 문자로 설명할 수도 없음을 말한다. 이에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처럼 달의 대변 역할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손가락이라는 매개체(방편)가 필요하다. 이 방편에 대한 체계를 이룩하는 일이 불교학이고 선학이다. 즉 이론은 현상을 통해 나타날 수 있듯, 부처님의 마음은 문자를 통해 중생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
미국인 현각스님이 쓴 <만행>이라는 책의 부제가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이다. 한국사회가 학벌 지향주의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이러한 제목을 붙인 것 같아 조금 씁쓸하기도 하다. 어쨌든 세계 일류석학들만이 모인다는 미국 하버드. 그 하버드대에서 공부하는 스님이 바로 비구 일미스님이다. 스님은 현재 하버드 대학원에서 비교종교학 분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다음 학기부터 박사과정에 들어간다.
요 근래 서양에서도 불교신자가 점점 늘고 있고, 참선수행을 하는 이들도 많이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여러 나라의 불교수행이 유입되어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불교 서적 발간도 급증하고 있다. 이런 서구인들의 관심에 부응하여 일미스님은 앞으로 “불교를 주축으로 타종교와 비교 연구를 통해 한국 불교를 세계에 알리고 뉴욕에 불교학연구소를 세워 수행전문기관인 젠(Zen)센터를 병행하고자 하는 서원을 세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스님은 최근 띄운 메일에서 “그간 너무 고생해서 머리 한가운데로 중부고속도로보다 더 큰 미끌미끌한 아스팔트 도로가 생겼고, 조금 있으면 해안도로가 생길지도… 스님들!!! 제발 비무장지대의 풀처럼 저에게도 풍성한 산림(山林)이 자리잡기를 각 시방세계 부처님께 기도 올려 주십시오. 각인 법사님처럼 사막에 풀 나듯한 머리는 싫거든요”했다. 상상이 갈 것이다. 30대 중반밖에 안된 스님 머리가 벌써 허허벌판이 되었다니… 웃어 넘길 말이지만, 일미스님의 공부에 대한 노력과 열정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학부 3학년 때, 나는 스님과 일본어 책자로 매일 2~3 페이지씩 스터디를 한 적이 있다. 매일 하다보니 쉽지는 않았다. 스님은 전날, 공부한 문장전체를 완전히 외웠다. 처음에는 별 차이가 없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는 능력이 감당이 안되었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일미스님의 끊임없는 노력탓인지 일본 용곡대학 교환학생으로 발탁되기도 하였고, 하버드에 입학하기 전, 토플도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또한 하버드에서 요하는 제2 외국어 연수를 위해 독일에서도 1년간 공부한 이력도 있으니 범어를 비롯 스님은 6~7개 국의 언어실력을 갖추었다.
불교학자로서 외국어의 능숙한 구사는 외국인들의 불교에 대한 관심에 부응할 뿐만 아니라, 불교학도 그 인접학문이나 응용불교 차원에서 외국어에 대한 소용가치는 절실히 필요하다. 한문권의 연구를 뛰어넘어 범어나 팔리어에 대한 불학연구 차원에서도 외국어는 절대적인데 수 개 국어를 능숙하게 하는 일미스님에게 불교학자로서 능력과 노력을 갖추었다고 여길 뿐이다.
공부에 치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기적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스님은 동대 스님들 모임인 석림회 부회장 소임까지 맡아 할 정도로 승려로서 자기 자신의 위치를 점검하고 분명히 찾아갈 줄 아는 책임감 있는 수행자다.
한국에서는 스님들뿐만 아니라 재가불자들도 불상 봉안이나 법당 건립 불사에는 적극적이다. 그러나 인재불사에는 조금 소극적인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미스님과 같은 불교학자를 제대로 키운다면 천불(千佛)을 봉안하고 대불(大佛)을 모신 만큼의 큰 불사가 이룩될 것이라 확신한다. 스님이 후에 이루어 낼 업적은 곧 불교의 발전을 의미하니까 말이다. ■서울 니련선하원 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