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1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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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선행 법사의 스님이야기] 홍도스님 (3)
日 ‘잇토엔’서 수행…깊은 인상 남겨
스님의 근면과 친절 지금도 ‘화제’

‘참회, 봉사‘를 기본 정신으로 불교의 대중화를 실천하며 공동체생활을 하는 ’잇토엔(一燈園)‘ 이라는 부처님마을이 일본 교오토(京都)에 있다.
‘잇토엔’에는 유치원부터 대학과 연구소도 있다. ‘잇토엔’은 매달 6~9일 3박4일간 정기적으로 수련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이 수련프로그램은 자아성찰프로그램으로, 수련을 받고나면 자부심을 갖게 되며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간으로서 새로운 자각을 하게된다.
홍도스님은 1974년, 그곳에서 1년간 수행한 적이 있는데 그 때 남겨놓은 깊은 인상 때문에 스님의 행적이 28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불자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선승(禪僧)인 니시다 덴코(西田天香)가 설립한 생활불교의 현장에서 새로운 포교 방법을 배우고자 건너간 스님은 언어와 풍습이 다른 그곳에서도, 몸에 밴 부지런함과 규율 잘 지키는 습성, 그리고 특유의 친절로 오래지 않아 그곳 모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신망을 얻게 되었다.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잇토엔에서 생활하게 된 홍도스님은 화장실 청소, 법당 청소, 식사 당번 등 어떤 것이든 솔선해 이행했다. 항상 만면에 웃음을 띠고 대화를 했기에 노인이나 어린이들에게 더 인기가 높았다. 얼마나 깊은 인상을 주었는지 지금도 그곳에 가면 ‘혼도스님 혼도스님(일본인들은 홍 자 발음이 잘 되지 않음)’ 이라고 외치며 이곳 언덕은 혼도스님이 삽으로 평평하게 고른 곳이라든지, 저곳은 늘 잡초를 뽑던 곳이라는 등 스님과 연관해 회상을 하곤한다.
그곳에서 하심을 체득케 하는 수행방법중 하나로, 한달에 한번씩 외지에 있는 개인 집을 찾아가서 화장실 청소를 해주는 것이 있다. 홍도스님은 언어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등에다 “잇토엔에서 나온 한국의 승려입니다. 댁의 화장실 청소를 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써 붙이고 다니셨다. 그리고는 온몸이 땀으로 젖는 줄도 모르고 정성껏 청소를 하고, 다음 집을 찾아 나서곤 하였는데 얼마나 스님의 행동이 빨랐는지 집주인이 스님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려고 차를 끓여 수행자에게 드리는 보시금이 든 봉투를 들고 나오면 이미 스님은 다음 집에 가서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봉투를 그 집에 맡기면, 그 집에서는 두개의 봉투와 차를 준비해서 나오게 되는데 그때도 스님은 어느 틈에 그 다음집에 가서 청소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스님이 청소하러 나오는 날에는 온 동네에서 ‘혼도스님 찾기’ 소동이 한바탕 벌어지곤 했다. 마지막 집에서 여러 개의 봉투를 들고 나와서 골목길 저편에서 잇토엔을 향해 걷고 있는, 물통과 걸레를 든 키가 작은 한국스님을 발견하게 되고 한사코 보시금 봉투 받기를 마다하는 스님에게 억지로 그 봉투들을 건네고 고마움에 가득한 인사를 하는 모습이 흔히 목격되곤 했다.
보시금 봉투를 받은 스님은 먼저 그 돈으로 노인들과 어린이들이 좋아할 과자와 장난감을 샀다. 그리고 잇토엔으로 돌아와서 언어가 통하지 않는 그들에게 과자와 장난감을 나눠주며 온몸으로 대화했다. 친구처럼 즐겁게 놀아주곤 하였기에 그들의 머릿속엔 한국에서 온 혼도스님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게된 것이다.
잇토엔에서 1년동안 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스님에게는 우리나라에 잇토엔과 같은 복지시설을 만드는 불사가 숙원사업이 되었다. 전국 방방곡곡으로 적당한 부지를 찾아 헤매고 불자들에게 잇토엔의 정신을 알리고 잇토엔 같은 시설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몇 년을 무리하시더니 그리도 애타게 염원하던 잇토엔 건설을 이루지도 못하고 젊은 나이에 열반에 든 것이다.
홍도스님이 입적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잇토엔 식구들 모두 어찌나 슬퍼했는지 스님의 49재엔 니시다 다케시 이사장이 그곳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 직접 한국으로 조문을 왔다. 그리고 스님의 화장 유골 일부를 잇토엔으로 옮겨 가서 그들과 영원히 함께 할 납골당에 안치했는데 스님께서 주석하던 보현정사의 신도 5명을 함께 초청하여 의식을 집전하였다. 스님의 유골을 안치하던 그날은 모든 업무를 쉬게 하고 잇토엔의 식구들이 한자리에서 추모하게 하였다. 그 현장에서 나는 그들이 진심으로 홍도스님을 그리워 하는 모습을 보았다. 따뜻함이 가득한 진정으로 대했고, 또 무엇이든지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홍도스님을 일본인들은 진심으로 좋아했다. 스님이야말로 한일 친선 우호에 큰 획을 그은 진정한 민간 외교관이었음을 확인하였다.
나는 일본에 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잇토엔에 있는 납골당에 들러 홍도스님 위패 앞에 분향하고 그곳에서 아직 스님을 기억하고 있는 분들과 스님께서 남겨놓은 잇토엔에 새겨진 스님의 이야기를 나누며 홍도스님을 추억하곤 한다.
■횡성 ‘마음의 쉼터’ 회주
2002-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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